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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가 제정구

서영남 2012. 07. 12
조회수 11836 추천수 7
7월 9일 저녁에 안나회장님과 함께 손인숙 수녀님께서 병문안을 오셨습니다.  베드로 학사님도 오시고...선미 샘도...아주 행복했습니다.  아프니까 이런 복도 누리는가 봅니다.  손인숙 수녀님께서 오래 전에 쓰신 글을 올려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 제 정구 
손인숙(성심수녀회 수녀)

제정구.JPG » 고 제정구 전 국회의원 13주기 추모제. 2012.2.11.내가 만난 제정구는 진정 내면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끊임없이 찾았으며 하느님과 일치하고 싶은 갈망이 큰 사람이었다.
 
제정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그가 뚝섬에서 정일우 신부님과 함께 살 때였다. 내가 그곳을 방문하던 날, 나는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정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그는 노동자인 동시에 학생운동가, 빈민 운동가였다. 신천리 주민들과의 의견 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그는 가난한 이들과 한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의견을 드러내며, 그들과 함께 흙먼지 속에서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의 현장은 그 당시 그분들이 어떻게 도시의 변두리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학생운동가, 빈민 운동가로서의 제 정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를 기억할 때 무엇보다 먼저 떠 올려지는 이미지는 명상가(瞑想家)의 모습이다. 그의 방에는 늘 명상하는 방석이 놓여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아무리 바쁜 상황에서도 방석에 앉으면, 그는 아이들이 그의 어깨 위에 올라가 무등을 타도 꼼짝도 하지 않고 바르게 앉아서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라즈니쉬 명상비법을 손에 늘 들고 다니면서 명상에 심취하였고, 노자의 사상에 젖어 자연을 따라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살고 있던 성심수녀회 수련원에 그를 초대했을 때, 그는 우리 수녀들에게 건강을 보살피도록 기(氣) 체조를 가르쳐 주었고, 자연식품을 이용한 건강기법 등을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운동가의 분위기보다는 토속적인 삶을 즐기며 땅에 발을 딛고 자연을 벗하고 빈민들과 함께 꾸밈없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여도 방석에 앉으면 명상에 잠기는 제정구, 스스로를 단련해 나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도사(?)로서의 제정구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목동 철거 사건, 상계동 철거 사건을 직면하게 되면서 나는 그에게 인생철학과 신념을 지닌 교육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상계동 성당에서 본당 및 지역 사목을 하던 중, 목동 철거 소식을 접하고 재개발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정부의 철거 정책을 바르게 대응하기 위한 ‘주민 교육’에 참여하여 제정구의 소신 있는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인간이 되자!” “인간답게 살자.”는 그의 부르짖음에 매력을 느껴 주민들을 이끌고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가곤 하였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빈민운동은 인간이 되는 운동!” 이라는 그의 가르침이다.
 
목동 철거 사건 이후 [천주교 도시빈민사목 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초대 회장을 제정구씨가 맡게 되었다. 그가 천도빈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교육을 할 때마다 그의 부인이 점심준비를 해 와서 교육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따뜻한 음식을 먹도록 배려하였던 모습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상계동 철거 사건이 있을 때에도 제정구의 ‘인간이 되자’는 부르짖음은 상계동 173번지 주민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준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빈민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그것은 “빈민운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남에게 야비한 인간이 되지 말자”는 그의 가르침이 “가난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상계동 주민들의 모토를 통해 열매맺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시대의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는 서강대 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성서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삶의 현장 안에서 그의 신념과 조화를 이루어나가면서 차츰 명상가로서의 삶보다는 진정 가난한 지역 공동체,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예언자적인 삶을 살게되었다고 보여진다.
 
한번은 한국 여자 수도 장상연합회에서 마련한 수도자들을 위한 강의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부분(창세기 3장)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마련해 주셨고, ‘선악과’ 만은 우리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다른 이의 몫이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했다. 그 강의에 참석하였던 우리 성심회 수녀 한 사람은 그의 말씀을 통해 수도자로서 자신이 청빈과 나눔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또한 그 강의에서 제정구는 각 교회에서 어떤 사업을 시작하고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운영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어린이집, 유치원, 피정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할 때 그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참여 할 수 있는 가격이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예수님의 선택과 배려가 사목적인 선택의 기준이 되게 하였다. 고한 탄광지역에서 유아원을 시작할 때나, 상계동에서 본당과 지역 일을 할 때, 그 어느 때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하든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참가비를 정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준비를 잘해도 참가비가 없어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주인이 되어야할 본당 밖으로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정구는 가난한 이들을 활동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정치가였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일하면서 인생을 배웠고 배운 바를 나누며 살았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삶 속에서 강렬한 생명의 질서를 발견해 나갔으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순간 순간 희망을 창출해 내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세상의 쓰레기를 정화시키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세를 배웠다. 또한 그는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통해서 민족의 장래가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지녔으며, 그들에게서 힘찬 희망을 보았다.
그러기에 제정구는 정직하게 자신을 직면하면서 빈민운동가, 재야인사, 나아가소 혼탁한 정치풍토에 뛰어들어 마지막 생을 보냈던 정치가로서의 옷을 하나씩 벗겨나가고,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해 나갔다. 그는 노동자로서 일했고 가난을 체험하였으나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의식을 직면했으며, 독재와 싸우면서 자신이 독재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정화를 바탕으로 악에 대항하면서 의연히 악에게 희생됨으로써 악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참된 운동이라는 것을 몸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그는 삶의 체험과 어우러진 운동만이 인간을 거듭나게 하고 참으로 인간답게, 아름답게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기에, 네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는 공동생존의 길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의 비젼임을 제시해 주었던 정치가였다.
 
제정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가기 전 내가 병상에 있는 그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손 수녀님, 제가 명상을 즐기면서 너무나 개인적인 성장과 마음의 평화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어쩌면 개인성장의 시기를 살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신학공부를 하면서 예언자적인 삶을 배우게 되었고 공동체를 위한 삶으로 새롭게 투신하며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이 들고 보니 다시 ‘내가 뭘 잘못 살았는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이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며 살아왔는데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지금 와서 하느님이 제게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도무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뜻을 찾고 구하여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정구는 평범한 속인으로서의 고투하는 삶 속에서 구도자로서의 길, 진정한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끝까지 선택하며 살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제 그를 다시 기억하며, 그가 현세에서 다 이루지 못한 여행길에 창조주 하느님께서 직접 동반하시어 창조물에 대한 그의 의문을 풀어 주시면서 그가 신나게 즐기며 여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믿는다. 이 나라의 혼탁한 정치 풍토 안에서 제정구와 같은 정치가가 늘어나기를 희망하며, 이를 하느님께 간구해 주도록 제정구에게 바라는 마음이다. 참으로 그는 구도자의 길을 걸은 그리스도인이며 진정 가난한 백성을 배려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음을 되새기며, 그에 대한 회고의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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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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