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팔아 자식 나눠주는건 최하책

법륜 스님 2012. 07. 16
조회수 11328 추천수 0

이사-.jpg

이사 / 사진 <한겨레> 자료


세 자녀를 둔 60대의 아버지입니다. 다 큰 아이들이 독립하지 못하고 저 또한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측은지심이 듭니다. 그래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여 각자 생활자금으로 분배하고. 저희 부부는 시골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방법이 해결책이라는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최선인 것 같고 어찌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네, 지금 생각하신 방법도 한 가지 방법에 속합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지만,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도망가는 것입니다. 36계 줄행랑이지요. 이것은 최고의 방법이지만 동시에 마지막 방법이기도 합니다. 도망간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얘기입니다. 온갖 방법을 썼는데도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남은 길은 죽는 것인데, 그래도 살아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은 마지막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인 것이지요. 무조건 처음부터 도망간다는 것은 아무 전략도 전술도 아닙니다. 그것은 맨 끝에 생각해야 할 방법이에요.


 어쨌든 그 방법도 한 가지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만 수행 차원의 방법은 아닙니다. 세상의 방법이에요. ‘이렇게 딱 터전을 없애 버리면, 아이들이 더 이상 손을 벌리지 못할 것이고 그럼 나도 괴롭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거든요. 그러면 수행은 무엇인가요? 수행은 아이들이 손을 벌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해탈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아이들하고 같이 살면서 손을 벌리든 말든 죽는다고 하든 말든 그저 무심해지는 연습을 자꾸 해 보세요. “오늘부터 각자 인생 살아라. 나는 너희들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해 놓고 못 지키면 체면이 서지 않으니까요. 지금부터 아이들이 뭐라 그러든 마음을 딱 잡아서 정진을 하는 겁니다. 그냥 모든 소리를 바람 소리처럼 듣는 거예요. 아이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냥 못 본 척하고, 마음이 흔들리면 절에 와서 하룻밤 자거나 여행을 가세요.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아버지가 변했다. 아버지한테 죽는다고 해도 안 통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번 해 보는 거예요. 자식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느냐 안 놓아지느냐를 수행의 과제로 삼으라는 말이에요.

 

  온갖 말과 경계에 내가 초연해질 수 있는지를 지켜보면 당연히 초연해지지 못해요. 이 때 안 되는 자신을 보라는 겁니다. ‘응, 내가 자식에게 집착하고 있구나, 이것은 내 업이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내가 문제지 경계를 일으킨 자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수행이 아니라 세상의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니까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예요. 공연히 집을 탓하는 거예요. 관점을 분명히 하고 난 후 집착을 끊으세요. 집은 집착을 끊고 난 뒤에 팔아도 됩니다.   


가장과 개-.jpg

독립하지 못한 자식에게 집팔아주고 집착하는 건 최하책/ 그림 <한겨레> 자료



 여러분들 부부간에 갈등이 심하면 상대방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으세요. 헤어지고 싶더라도 상대를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서 해 보다가, 남편이나 아내를 보는 것이 편안하게 되거든 그때 가서 이혼을 하세요. 그럼 이렇게 말하겠지요. “편안한데 무엇 때문에 이혼합니까?” 그러면 살면 되지요. 불편해서 이혼을 하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살아도 문제가 생기고, 둘이 살아도 또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집착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사가 반드시 그렇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요. 때로는 36계 줄행랑이 더 상책일 때도 있지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다 해 보시고 도저히 안 되면 그때 가서 집을 팔아치우든지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집을 팔아도 정진을 해서 굳은 마음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어요. 아니면 집 팔면 집만 날리고, 돈만 날리고, 또 나는 자식에게 매이고,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어요. 


지금은 돈이 있어 줄 수 있는 능력이나 있으면서 줄까 말까 괴로워하지만, 앞으로 줄 처지도 못 되는데 아이들이 달라고 하면 더 괴롭습니다. 주긴 줘야 되겠고 줄 것은 없고 이러면 더 괴로워져요. 그렇게 하지 마시고, 그냥 지금부터 딱 끊어 버리세요. 한집에 살면서 매일 눈으로 보면서 안 되는 것은 ‘내 탓이다. 내 공부다.’ 이렇게 생각하고 연습 삼아 한번 해 보세요. 한 육 개월 해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집을 팔아 버리세요. 36계 줄행랑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후의 선택입니다. 


“그래 맞다. 내가 집착을 놓지 못하는 거다. 이것이 다 내 바람이고 경계일 뿐이다.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겠다.” 이렇게 굳게 마음먹어도 실제로는 또 걸려 넘어집니다. 백이면 백 다 넘어져요. 그럴 때 넘어지면, ‘아, 넘어졌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알아차리고 또 일어나고……. 이렇게 수행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법륜 스님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하고, 정토회를 설립했다. 기아·질병·문맹퇴치운동과 인권·평화·통일·생태환경운동에 앞장서는 실천하는 보살로서 2000년 만해상을, 2002년에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2007년엔 민족화해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 book@jungto.org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멋대로 물건사고 낭비하는 아들의 버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멋대로 물건사고 낭비하는 아들의 버릇을...

    법륜 스님 | 2013. 05. 02

    욕하면서도 저지른 일 받아주면 버릇 나빠져태도 분명하게 정하고 단호하게 바로 잡아야[질문]고등학생인 둘째가 엄마 주민등록증을 몰래 훔쳐서 제멋대로 스마트폰을 샀습니다. 비싼 옷을 사서 몇 번 입다가 팔아버리고 다시 새 옷을 사는 일도 ...

  • '남따라 사니 목표를 모르겠습니다'"남따라 사니 목표를 모르겠습니다"

    법륜 스님 | 2013. 03. 11

    [질문]스물네 살 대학생입니다.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와 꿈이 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대학 가니까 따라가고 남들이 취업하니까 취업하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왜 이렇게 남들을 따라가야 되고 왜 이렇게 경쟁해야 되는 건지 의문이 듭...

  • '결혼 후 마음이 바뀔까 걱정입니다'"결혼 후 마음이 바뀔까 걱정입니다"

    법륜 스님 | 2013. 02. 24

    "결혼 후 마음이 바뀔까 걱정입니다"[질문]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연애하다 마음이 변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적령기에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결혼 뒤 마음이 변한다고 해서 그때마...

  • 성폭행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성폭행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

    법륜 스님 | 2013. 02. 07

    고흐의 그림 <슬픔>-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데, 제 우울증의 근본에는 가족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저를 성폭행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집안엔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어릴 땐 아버지만 미웠는데 아...

  • 점이나 사주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점이나 사주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법륜 스님 | 2013. 01. 08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작년에 건강 문제로 갑자기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어머니가 점을 봤더니 제가 그때쯤에 시험을 포기할 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껏 점 같은 데 의지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고 열심히 사는 만큼 보상이 따르는 게...

최근댓글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