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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절간에서도 바다가 그립다

원철 스님 2012.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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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산호나무/사진 원철스님



산호대(珊瑚臺)위로 장대비가 내리다


긴 가뭄 끝에 장대비가 세차게 내린다. 바닥을 드러낸  전국 수원지의 물 걱정도 한 시름 덜게 되었다. 어제 삼경엔 비소리와 함께 잠을 청했고 오늘새벽은 추녀의 낙숫물 소리에 잠을 깼다. 대낮까지 그칠줄 모르고 내리는 비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스스로 너무 쳐져버린 느낌이 싫어서 차상을 당기고는 물을 끓였다. 끓는 물은 올라가면서 소리를 내고 비는 내려오면서 소리를 낸다. 두 소리가 방문을 경계로  묘하게 어우러진다. 


고개를 돌려 건넛편 수정봉(水晶峰)을 쳐다보니 안개구름이 느슨하게 가로로 비스듬이 길게 걸려있다. 수정봉은 그 이름 만으로 이미 물기운을 가득 담았다. 거기에 더하여 산봉우리 정상에는 돌거북 형상을 한 바위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산이지만 물기둥이라고 여긴 까닭이다. 주로 목조건물로 이루어진 절집은 늘 화재방지를 위한 비책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래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비보(裨補)를 항상 주변에 만들었다. 수정봉을 떠받치면서 절마당 끝에 절벽처럼 서 있는 산호대(珊瑚臺)는 아예 바닷물을 빌어오는 역할까지 맡겼다. 불그스럼한 산호빛깔만으로는 정체성과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여겼는지‘산호대’라는 글씨를 손타지 않을 정도의 높이에, 눈에 거슬리지 않을만큼 정성껏 새겨 그 영험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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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서 보이는 수정봉/ 사진 원철 스님



산호는 산(山)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높은 곳인 하늘까지 올라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호나무(prijta)는 도리천(忉利天)에 있다. 물론 그 모양이 산호처럼 생겼던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붓타께서 하늘세상에 살고있는 이들을 위한 가르침을 펼 때 산호나무의 그늘자리를 주로 이용하셨다. 인간세계의 보리수 역할을 천상세계에서 산호수(珊瑚樹)가 대신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함경》에서 ‘산호수는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나무’라는 칭찬을 들었다.   


비로 인하여 온 도량에 물이 그득하다. 산에서도 잠시나마 바다의 잔영을 본다. 티벳사람들은 사막과 고산으로 둘러쌓인 해발 3000m 고원지대에 있는 그 호수를 ‘청해(淸海칭하이)'라고 불렀다. 달라이 라마 성하의 함자인 '달라이(Dalai)'도 대해(大海)라는 의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반도 영남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해인사(海印寺)는 아예 이름 첫 자에 ‘바다 해(海)’자를 붙여 놓았다. 이처럼 해수가  먼 지역도 바다 운운했던 것이다. 하지만 큰바다 역시 언제나 아득히 높은 산들을 그리워하고 있을게다. 어쨋거나 그 옛날  한 때 속리산도 바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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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대는 그 때를 추억하며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지독한 감기몸살을 한동안 앓고있던 제주도 출신 스님은 흰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퀭한 눈빛으로 “아! 갯것 냄새 맡으면 금방 일어날 것 같은데”라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던 그 심경을 알 것도 같다.   내릴 만큼 내렸는지 비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하지(夏至)가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이 길어 일몰시간임에도 숲 주위까지 훤하다. 산책삼아 동구 밖까지 물구경을 갔다. 해자(垓字)처럼 절을 감싸고 흐르는 계곡 한 켠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는 물속에 잠겨 이미 자기역할을 접었다. 큰물이 지나간 뒤 개울 안의  큰키 풀들은 그대로 드러누운 채 아예 일어날 생각조차 않고 있다. 씩씩해진 물길을 만끽하는 호사를 누린 덕분에 넉넉해진 마음으로 다시 본래자리로 돌아오니, 젖은 산호대 위로 별빛이 하나 둘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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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해인사로 출가했다. 오랫동안 한문 경전 및 선사들의 어록을 번역과 해설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서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했다. 또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메일 : munsu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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