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공자는 도덕군자, 수구보수? 공자는 유연하고 유쾌한 사람!
새로운 창조의 시작은 동료와의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영동에는 처음입니다. 오늘이 사회복지사협의회가 주최하는 강좌의 마지막 날이군요.
행정이나 회계와 같은 실무 분야와 함께 인문학 강좌를 포함시키고, 그 강의를 저에게 맡겨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강좌 자료에 실린 내용이 ‘논어’의 몇 구절인데, 어떻게 보면 논어를 제가 강의한다는게 민망하기 짝이 없게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60이 넘어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탐구하기 위해서 ‘논어’를 함께 강독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책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마치 논어 전문가처럼 알려지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논어를 감히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 자신이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공자에 대한 오해를 벗겨내고 싶은 것입니다.
재미없고 딱딱한 도덕군자, 수구보수주의의 원조와 같은 이미지로부터 공자를 해방하고 싶은 것입니다. 공자는 대단히 유연한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입니다. 적어도 사상의 영역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사람이지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바로 공자가 한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상적인 군주제를 요·순·우·탕·문·무·주공에서 찾은 복고주의의 모습을 띠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정치적 상상력의 한계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요.
두 번째는 사실 이것이 제가 논어를 이야기하는 주 목적 같은데요. 공자의 사상을 낡은 과거의 제도나 관습에서 해방한다면 현대의 산적한 문제를 푸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잘 들어주겠습니까?
그래도 2500년 동안 검증 받아온 공자의 말을 빌리면 좀 듣지 않겠습니까? 공자의 말을 빌려 사실 요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공자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웃음)
요즘 대선을 앞두고 좋은 말들이 무척 많이 나옵니다.
여야(與野)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 같습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경제민주화라는 말보다 ‘시장의 인간화’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재벌의 탐욕과 횡포에 대한 규제’ ‘중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보호’ ‘노동3권의 보장’ 같은 제도적 노력이 아마도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것이 베이스가 되겠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푸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의식의 진보와 생활양식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저는 이것을 포괄적으로 ‘시장의 인간화’라고 부릅니다.
‘복지’가 뜨거운 잇슈가 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서울 시장이 바뀌는 일이 생길 정도니까요.
무상복지라든가, 보편적 복지, 선택적 또는 맞춤형 복지 같은 말들이 무성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어려운 조건에서도 복지 분야에서 일해 온 수많은 단체들과 사람들이 있는데, 예컨대 자활센터 같은 곳은 300여개소의 전국적인 조직인데, 이런 곳에서 뭔가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복지에 대해 청사진 같은 것을 제시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과문(寡聞)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복지를 주제로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무상복지나 보편적 복지처럼 그 혜택의 수준이나 대상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 재정적 능력과 함께 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확대해 가는 것이 흐름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 내용이랄까 질이 업그레이드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복지의 목표가 ‘생존’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그 동안 온갖 어려움을 견뎌가며 해 오신 일들은 주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거나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분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것이 기본 베이스로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목표가 ‘행복’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보편적 복지가 운위되는 시대에 맞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번 강좌에 저 같은 사람을 불러 인문학 강좌를 맡긴 것에서 그런 지향을 느낍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가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쌀 밥에 고깃국’은 로망 중의 로망이었지요.
물질적 환경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절대빈곤의 문제가 없어지진 않았지만, 지금은 상대적 빈곤(양극화)이 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 일하시는 분야의 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행복 일반에 대한 새로운 시대의 관점을 공유하면서 그 분야의 특성에 맞게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해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뭔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신다면 무엇 때문이십니까?
(어느 분이 ‘돈’때문이라고 대답)
그렇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마 가장 일반적인 대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점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돈 즉 물질을 많이 생산하고 소유하는 것으로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나요?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물질적 생산력의 바탕에는 ‘경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을 결코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경쟁에서의 일시적 승자도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늘 긴장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쥐어 짜내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얼마전 사람들이 무척 취업하고 싶어하는 대기업의 중견 간부가 저희 동네에 온 적이 있습니다.
이미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귀농하려고 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회사의 동료들에게도 ‘귀농’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결단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까지 있더라는 것입니다.
‘높은 생산력’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생태계와도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각할 점이 많지만, 그러나 ‘적절한 생산력’은 확보하는 것은 행복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도 ‘경쟁’이 아닌 ‘자기실현의 즐거운 노동’에 의해서...
이것이 바탕이 될 때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저는 대단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이나 ‘마을공동체’가 실질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진보하는 것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료에 써 놓은 공자의 ‘서(恕)와 충(忠)’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를 주고 있습니다. 충(忠)은 어떤 일이나 대상에 자발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즐겁게 집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비교나 경쟁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서(恕)이지요.
이 충(忠)과 서(恕)를 과거의 낡은 이미지에서 해방하여 새로운 생산력의 바탕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요.
만일 자활 사업이나 사회적 기업 또 앞으로 만들어질 협동기업 같은 곳에서 그 과정도 그 결과도 행복으로 이어지는 모델들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 때 진정한 ‘인문학’이 요청되지 않을까요. 딱딱한 강의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 속에 녹아들어가는...
한 갖 꿈일까요?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삶 즐겨야
다음으로 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소유와 소비 위주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단순소박한 삶’을 살기로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근검절약하는 형태로만 보거나 내핍하는 부자유한 삶으로 보면 그것은 행복의 길과는 멀어집니다.
정신적, 예술적, 영적 욕구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삶을 즐기게 되겠지요.
사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이 스스로 준비해야할 것이 바로 이런 삶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 연금을 50만원 정도 받는데, 언젠가는 이 것으로 충족한 삶을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러면 더 내공을 길러야 할 것 같은데, 잘 될지... (웃음)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을 즐기는 것이 아니지요. 가난을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도(道)를 즐기는 것입니다. 즐길 도(道)가 없다면 가난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가 안회였는데, 안회를 칭찬하면서 ‘그는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不改其樂)’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일에서 이런 점을 어떻게 살려갈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에 이 도(道)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같이 탐구해 보면 좋겠습니다.
돈 말고 힘든 것이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라고 말함)
그렇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요즘 베스트셀러 작가의 가장 많은 공통된 직업이 무엇인지 아세요?
스님입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불행의 원인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용은 크게 보면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자신을 변화시키라는 것이지요.
스님들의 말씀은 상당히 먹히는데, 공자는 인기가 없습니다. (웃음)
그것은 공자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공자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왜곡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바르게 살자’는 딱딱한 도덕 교사가 아닙니다.
길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공자는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無知)’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의 지적 탐구의 출발입니다.
요즘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밝혀지고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각자의 감각기관을 통과한 상(像)을 각자의 뇌 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경험, 지식, 가치관 등으로 판단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이나 진실 그 자체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이것을 일상적으로 자각한다면 자기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恕)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같게 하려고 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며, 공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인간상 즉 군자(君子)의 특징인 것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와 사이 나빠지지 않으려 참는 것은 결코 행복의 길이 아닙니다.
그 뿌리 즉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일 뿐임’을 자각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는 별개다.’라는 자각을 일상화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힘 든 것은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누구 누구 대통령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 있나요? (웃음)
실제로는 배우자, 자식, 동료, 동지 사이에 불화가 있으면 제일 힘들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 동의)
가까운 사람들, 특히 배우자는 이것을 잘 연습할 수 있는 스파링 파트너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일에서도 그 일이 즐거우려면 사람들 사이의 인화(人和)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이 대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빈곤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가 중첩되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빈곤보다도 자존감의 회복이 더 큰 과제인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개별적인 상담도 중요하지만, 개별사업단위나 또는 몇 분야가 연합하여 인문적인 프로그램을 상설화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합니다.
우선 동료들끼리 서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연습하시면서, 서로 힘을 북돋아주는 사이로 되시면 사업에서도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다란 문명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참다운 ‘복지’란 무엇인가가 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가장 첨단에 서 계신 여러분들께 제 말씀이 다소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