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부리바를 찾아서
40년전 호기심으로 찾은 러시아의 ‘티벳’, 따따르족
소수민족으로 전락해…민족 흥망사, 참 인물에 있어
지난번 유럽 여행길은 의외로 신이 나기도 했다. 전혀 모르던 일에 새로운 산지식을 얻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의 역사적인 문제를 직접 현품대조하는 맛이라니. 고고학자들이 옛 유적을 발굴하면서 소중한 유물을 발굴이나 하듯이 말이다.
근 40여 년 전이다. 고골리의 소설 “대장 부리바”를 읽을 때, 마지막 주인공이 적군에 잡혀 처형 당 할 때의 상황 묘사가 얼마나 처절한 감동으로 가슴에 새겨졌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감수성이 강한 내 천성에 그냥 감동의 눈물로 책을 덮은 추억이 너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 소설 주인공의 부족인 이 용감무쌍한 따따르족이 어디에 살고 한번 그 부족들을 만나봐야지 하는 막연한 상상의 나래를 펴왔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길에 그 부족과 부리바 장군의 활약지를 다 답사할 수 있었으니 필자의 타고난 고집스런 선천성 문제를 스스로 풀었던 것이다.
자가 어디 낯선 곳의 여행을 나설 땐 먼저 상세한 지도를 구한다. 그리고는 몇날 며칠 어떤 식의 길을 따라 다닐지를 고민한다. 물론 무얼 보고 무얼 느끼고 또 만나고 등등 현지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을 총정리한 후에 최종 결정한다. 여행길을 나설 때 첫째 규정은 옛길을 절대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새로운 길, 또 이름 없는 숙소, 값이 싸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 등등 미리 철저한 검증을 한다. 역사적으로 따따르족이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을 조사해보니 바로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키스탄에 주로 거주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우크라이나. 유럽 많은 나라 중에서 제일 큰 영토의 나라이다. 1991년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을 한다. 수도는 키예프, 전 인구의 90% 이상이 러시아 정교도이다. 폴랜드에서 밤 버스로 제일 먼저 찾아간 도시가 르보브(Lviv)였다. 끝없는 대지의 평원들판의 모든 땅이란 게 다 검다. 그만큼 비옥하다는 거다. 왜 이리도 도시가 예쁘지, 유네스코 유적 보존 고을이다. 너무 아름답다. 따따르족은 무슬림 즉 회교도이다. 부리바 장군의 활약무대를 물어물어 찾으니 너무도 생소한 고을 이름 캄냐네츠 포딜스키(Kamnyanets Podilsky)로 가란다. 이튼 날 하루에 두 번 있다는 버스, 아침 첫 차로 시골길을 천천히 내리고 타고하면서 인도식 지방 버스처럼 근 하루가 걸려 고을에 도착하면서 야 정말 오기 잘했네를 연발했다.
천혜의 옛 도성이라니, 어찌 이리 자연적인 고을이 생겨났을까 할 정도의 기막힌 고을이다. 빙 둘러 동그랗게 강이 흐르며 천연 해자(垓字)가 만들어져 있고, 물에서 솟아난 듯 한천연의 수직 바위벽은 누가 감히 쳐들어갈 엄두도 못 낼 그런 모양새다. 부리바 장군이 여기를 무대로 천하를 정복했다고 한다. 말을 타고 휜 칼을 쥐어 잡은 긴 수염의 장군 동상이 그의 위엄을 말해준다. 안타깝게도 2차 세계 대전시 독일군의 군 기지로 쓰일 때 영국군의 공중포격으로 거의가 부서졌지만 아직도 남아난 그 옛날의 성곽 등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따따르족의 후예를 물으니 그 종족은 오래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여기는 유적뿐이란다. 후손들이 사는 곳이 흑해 바다의 북부, 바로 크리미아 반도에 모여 살고 있단다. 다시 멀고 먼 오데싸를 야간 버스 열다섯 시간으로 주파, 거기서 다시 묻고 물어 열두시간의 버스로 그 부족이 모여 사는 크리미아 반도 바흐체싸라이(Bakhchysaray)에 닿았을 땐 한밤중이었다.
드디어 따따르족의 마을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집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아, 내가 사학자나 인류학자도 아닌데 이게 뭐지? 고생 사서 여기까지 꼭 와야 하나를 스스로 묻기도 한다. 막상 그들을 만나 역사적인 민족의 수난사를 들으니 참 처량하기도 하다.
근래 역사로써는 1944년 5월 18일, 우선 스탈린의 무력 침공 공산 정권하에서 독일 나찌 정권에 우호적이었다는 빌미로 전 따따르족 주민을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로 강제유형을 보낸다. 이미 언어와 전통문화는 말살정책으로써 철저히 소개(疏開)시켜버렸다. 얘기를 들으면서 중국이 티벳을 무력 점령한 상황과 어찌 이리도 똑같은가를 느낀다. 강제 이동 기간에 전 민족의 46%가 죽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민족의 원래 고향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26만 명 정도, 지금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도 크리미아 반도를 자치구로 정하고 많은 혜택을 준다지만 인구의 열세로 그 옛날의 영화나 발전은 어렵다고 한다. 자치구 전 주민의 24%가 따따르족 일 뿐이란다. 대부분 가난하단다. 얘기를 나눈 나이가 지긋한 노인도 우크라이나에서 근 40년을 살다가 인생을 고향에서 마무리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왔다고 한다. 필자도 씁쓸한 마음이 저절로 인다. 요즘 새롭게 민족 고유의 따따르족 언어로 공부하는 학교와 전통 민예나 도자기 등등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학당이 세워지며 옛날의 전통을 이어보자는 노력이 많다고 한다.
이튿날 모든 주민이 회교 모스크에 간다니 필자도 따라가는 건 당연, 가보니 한 쌍 젊은이의 결혼식이 있다. 모스크는 역대 제왕인 칸(Khan)의 왕궁 옆에 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왕궁은 16세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노예들을 시켜 짖게 된 궁전이란다. 성직자 앞에서 서약 같은 예식을 마치고 친인척과 마을 주민에게 정식 부부 선언과 함께 회당 뜰에서 악대의 연주에 맞춰 전통 춤을 추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또 두 젊은 부부의 모습이 맑고 밝으니 예쁘기 짝이 없다.
다음날 일부러 얄타 해안 도시를 들렀다. 우리가 알다시피 1945년 한반도 운명의 신탁통치를 결정짓는 당시의 삼 개국 수뇌인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의 얄타 회담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도시가 참 수려하다. 때 이른 해수욕객이며 좀 놀자 판의 도시 같다. 광장엔 아직도 레닌 동상이 그대로다.
필자가 3년 전 구루지아(현 조오지아:Georgia)의 고리(Gori)라는 작은 마을을 찾았다. 스탈린이 태어난 고향이기에 일부러 생가에 갔었다. 참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보인다. 태어날 당시 조오지아는 쏘비에트 제국 연방의 일부 지방이었다. 생가 옆엔 엄청난 크기의 기념관이자 박물관이 있다. 안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게 이북에서 발행하여 보냈다는 책 “쑤탈린 평전”이다. 이 한 사람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힘들게 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역사를 다시 회고한다. 흔히 역사의 영웅이란 게 일단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한 둘을 죽이면 살인자요,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라니?
이렇게 생고생 해가며 40년 전부터 호기심과 열정으로 찾은 필자의 따따르족 후예 찾기는 서글픔과 안타까움으로 끝이 났다. 여행 후에 알고 보니 그 후예들이 중국의 신장에도 러시아 일부에도 조금씩 남아 있음을, 또 이 소설은 “대장 부리바(타라스 불바)”란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음도 알았다. 그렇다면 이미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이 따따르족이 길이 남을 것인가? 어렵겠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한 민족의 흥망사를 보면 우선 통치자, 나라에 민중으로부터 믿고 따르는 사랑받는 인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연장선상에서 과연 우리 조국 한국 땅에 지금 누구에게나 존경 받고 사랑 받는 나라의 어른, 스승이 있는가? 의문이 인다. 미래에 나라의 참 어른이라면 남북한의 평화적인 민족 통일을 일구는 인물이어야 한다. 마땅히 남북한 민족 통일문제를 우리 손으로 피 흘리지 않고 풀어가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런 민족의 참 인물이 나오기를 간절하게 염원한다.
2012년 여름 우기 철 천축에서, 비구 청전 두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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