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의 삼복더위

서영남 2012. 07. 27
조회수 4274 추천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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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입니다. 너무너무 덥습니다.그런데도 우리 손님들은 한 분도 덥다고 투정하질 않습니다.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손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물에서 금방 건진 옷처럼 젖었습니다. 왜 이렇게 땀을 흘리셨는지 물어봤습니다. 자유공원에서부터 걸어왔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선풍기 바람이 참 시원하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한 번도 켜지 못했습니다. 전기료가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에어컨을 틀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스밥솥에 밥을 하면 금새 찜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풍기 몇 대로 여름을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삼복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덥다고 투정하지 않는 우리 손님들입니다. 어느 곳을 가도 시원한 곳이 없기에 어서 빨리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제일 더운 곳은 주방입니다. 국을 끓이고 채소를 데치면 사우나보다도 더 덥습니다. 그런데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자원 봉사자 자매님들이 음식을 만드십니다. 천사같은 분들이십니다. 겨우 수박 한 쪽에 행복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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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할아버지가 오늘 오셔서 담으신 밥입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사십니다. 물론 노숙을 하고 계십니다. 하루 두 번은 오시라고 협박을 해도 웃기만 하고 꼭 한 번만 오십니다. 몇 달 전에 처음 오셔서 밥을 접시에 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다 드실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깨끗하게 다 드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끔하게 산더미 같은 밥을 다 드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처음처럼 드시질 않습니다. 거의 삼분의 일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드셔도 이제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합니다.
 
권여사님은 예순 넷입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행주 빠는 것을 도맡아 하실 정도로 빨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물포역 지하도에서 거의 십오 년을 노숙을 했습니다. 밤에 이불 뒤집어 쓰고 자려고 하면 지나가던 사람이 발로 느닺없이 차버리고 가버리고 해서 무서워 죽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수집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드렸습니다.  방이 대궐같다고 좋아했습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깨끗하게 청소하고 사는 것은 좋은데 수도물을 너무 많이 쓴다고 걱정합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살림살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기름보일러를 사용할 줄 모릅니다. 며칠만에 한겨울 동안 쓸 석유를 다 써버렸습니다. 그리곤 방이 덥다면서 옷을 다 벗고 창문 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여인숙 쪽방을 얻어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인숙에서 지내기가 너무 어렵답니다. 주인이 노인인데 목욕하고 있는데도 막 들어온답니다. 그리고 돈을 벌게 해 주겠다면서 손님을 받으라고 한답니다. 세상에!
연탄을 때는 방을 얻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연탄 난방을 하는 방을 얻었습니다. 주인 할머니께 수도를 좀 많이 쓰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했습니다. 이삿짐이 꽤 많습니다. 노숙할 때는 짐이 없었는데 어느새 작은 손수레 하나 채울 정도의 짐이 늘어나 있습니다. 선풍기도 하나 사 드렸습니다. 이불도 챙겨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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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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