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와 무기

2012.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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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전도사님께 

전도사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전도사님이 계신 그곳이 이런 인사가 어색한 곳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아직 첫인사를 대신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는 내내 숙제가 될 거 같습니다. 

편지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얼마 전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내게는 마치 기도를 드리는 것 같은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기도가 많이 어렵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도가 일상일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기도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이지요. 거짓에 싸인 저를 그 시간만큼은 여지없이 허물어야 하니까요. 전도사님께 부치는 편지이긴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저 스스로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펜을 들고 있는 순간은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저를 무너트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지 신변과 안부를 묻기보다 더 깊은 질문과 고민에 다가가는 시간이지요. 늦어진 시간만큼 질문에 닿기 위한 망설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있으면서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들어갈 때부터 기결수였고, 열흘도 되지 않아 출역을 나가야 했기에 처음에는 편지를 쓸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고단한 시간에 연필을 잡을 정신조차 없었지요. 답장을 쓸 여유가 없었는데도 편지는 계속 도착했습니다. 매일 저녁 6시쯤 취사장에서의 노동이 끝나고 제 사물함에 놓여 있는 편지를 확인할 때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피곤도 잊을 수 있었지요.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일이 끝나는 시간보다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이 더 기다려질 정도였으니까요. 

그것은 사람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었습니다. 혼자 이곳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그렇게 종이 위에 쓰인 얼마간의 글자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게지요. 제가 보내는 편지도 전도사님의 험난한 길에 작은 동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동원 형제가 강정에서 연행되었다는 소식과, 곧 구속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1) 아마 전도사님도 이 편지가 닿기 전에 동원 형제의 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 계시겠지요. 전도사님은 동원 형제와 함께 강정의 앞바다에서 보낸 고난의 시간만큼 그 먹먹한 가슴이 저보다 더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동원 형제를 제주에서 만났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가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제주 강정에서 주민들의 갈등과 눈물을 온몸으로 경험했을 청년의 삶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을 그 고민의 흔적과 여정을 머릿속에서 따라가 보았습니다. 

전도사님이 보내신 편지에서처럼 오늘날 더 이상 국가는 예배드리고 기도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여전히 이렇게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 두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막아서고자 했던 것은 공사장의 크레인과 트럭들이 아니라 강정마을의 갈등과 주민들의 눈물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왜 우리는 그 눈물을 모른 척 지나쳐 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과 양심이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담장을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가 감옥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에 동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향해 기도드릴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편지에서 허다한 청년들이 헌신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이유를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는 데 따르는 고난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지요. 전도사님의 말씀대로라면 저는 감옥에서 제법 고난의 경험을 연습하고 온 셈이 되겠네요. 그런데 정말 막막한 그 길을 지나고 나서 오히려 요즘 더 큰 자유를 깨달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저 역시 여전히 강정에서, 또 다른 현장에서 불의를 보면서도 늘 머뭇거리며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막상 감옥을 나오고 나니 돌아갈 길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친구는 그런 저를 보며 “앞으로 일방통행이겠구나”라고 말하더군요. 앞으로 저의 삶이 평화를 향한 일방통행이라면 나쁘지 않겠구나 생각도 듭니다. 오늘의 고난이 동원 형제에게도 마찬가지의 시간이 되겠지요. 그가 앞으로의 시련과 고난에서 신앙과 양심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경험했으면 합니다. 

전도사님, 사실 지난 한 달은 제게 끔찍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우리 정부가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통해 어느 정도 소식을 듣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협정 체결 한 시간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이를 연기했지만,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끔찍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우리가 점점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올해 1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적으로 ‘아시아로의 복귀’를 선언했지요. 지난 몇 년간 미군은 베트남전쟁 당시 사용했던 아시아 지역의 군사기지로 재배치되고 있습니다. 태국의 우타파오 공군기지, 필리핀의 수비크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 베트남의 깜라인만 해·공군기지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도 낮은 단계의 군사 교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호주와 싱가포르에는 새 기지 및 항구 이용권을 확보한 상태라고 하지요. 또 지난달에는 미 국방부장관이 2020년까지 해군 함정의 60%를 아시아 지역에 집중 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과 일본도 이런 미국의 흐름에 맞추어 군사 협력을 추진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상대로 신냉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해안 지역의 섬과 연안에 새로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수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전쟁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전쟁의 문제와 평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라크전쟁, 아니 정확히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거리로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지요. “사람을 죽이지 말라, 전쟁을 멈춰라!”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신문의 국제 면에서 이라크의 소식을 찾기 힘들어질 즈음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전쟁 중에는 전쟁에 반대하면 됐는데, 막상 전쟁 소식이 뜸해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과 폭격, 그리고 파병을 반대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십여만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전쟁을 막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만큼 우리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방아쇠를 떠난 총알처럼, 그리고 이미 떨어져 버린 미사일처럼 우리에게 전쟁은 되돌리기 힘든 경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우리는 평화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 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강정마을은 평화를 위한 ‘기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지라는 것이 전쟁을 준비하는 장소이니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우리에게 평화를 위한 장소, 평화를 준비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전도사님은 “제주가 그리고 강정마을이 그런 평화를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한다. 강정마을이 평화 공원, 평화의 학습장이 되어야 한다. 유엔 평화대학을 유치하자” 이야기하셨죠. 사실 그때 제 머릿속에는 강정마을이 처한 현실, 그러니까 해군기지 공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만 가득했습니다. 앞일을 내다볼 여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요즘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전도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전도사님의 꿈은 평화 학교를 짓는 것이었지요. ‘코메니우스학교’, 제가 처음 들었을 때는 과연 이런 학교가 생겨도 될까 싶었던 학교 말이에요. 평생 평화를 위해 헌신할 아이들을 받아들이겠다는 그 학교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개척자들과의 인연도 바로 평화를 위한 학교, 거기서부터였군요! 

오늘 서울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네요. 강정마을에도, 그리고 전도사님이 계신 교도소에도 시원한 화해와 평화의 비가 내리면 좋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7월이 가기 전에 다시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2. 7. 5. 
박정경수 드림 
(편집위원, 평화 활동가 
peacebaro@gmail.com)


1) 6월 30일 김동원은 해군과 시공사에 환경영향평가 부대사항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바지선 크레인에 올랐다. 8시간의 항의 끝에 체포 이후 구속 수감됐다. ‘강정 앞바다 준설공사 강행에 충돌 빚어져’ <제주도민일보> 2012.7.1 

20120814_6.JPG » 사진 <복음과 상황> 김은석.


경수 형제님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지난 월요일(9일)에 바다에서 불법 작업을 하던 준설선에 올라 항의했던 김동원 형제도 결국 이곳으로 이감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평화를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저도 교도관이 찾아와 명찰에 공범이라는 표시를 해서 그제야 그 청년이투옥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서로 만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없도록 격리 수용되어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얼굴 한 번 못 보고 목소리 한마디 들을 수가 없네요. 지난달에 입감된 김복철 씨까지 포함하면 현재 제주교도소에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가 세 사람이 수감되어 있습니다. 

강정의 상황은 점점 더 암울해지고 있습니다. 해군은 환경 파괴가 불 보듯 뻔한데도 원래 계획했던 환경 보전 방침을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이름뿐인 특별자치도입니다. 도정이 해군의 불법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해도 정부와 해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난 5일 대법원은 강정마을 주민 438명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서 해군의 공사 강행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매우 사려 깊은 반대 의견이 있었음에도 다수의 판사들은 다시 해군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다시 깊은 실망과 낙담을 겪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대법원 판사들도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 앞에서는 눈을 감아 버리네요. 강정마을의 평화 투쟁은 점점 더 깊은 질곡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어도 주변에 중국의 선박들이 출몰하고 있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센가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의 소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자주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200해리 영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동중국해가 한반도의 대륙붕 지역임을 내세워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긴장에 긴장을 더하고 있습니다. 국경 분쟁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누구나 조금이라도 자기 땅이 많아지기를 원하는 것처럼 국가들도 끝없는 욕심을 내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그런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입니다. 지금 동북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는 각국의 이익이 대립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군사적 해결이 고려되고 있어 문제입니다. 이 지역에는 국경 분쟁이 빈번한데 그 대부분은 그 경계가 모호한 바다의 섬들과 암초와 관련한 것입니다. 각국은 이 섬들을 자국의 영토에 편입하고 그 주변 해역을 차지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해군력을 확장하려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변국의 동태에 따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타당성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바다를 지키고 우리 배들의 자유로운 운항을 보장하기 위해서 강력한 해군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견 옳아 보입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군사력에 의한 평화 유지는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군사력을 대항해야 할 주변국은 그리 가벼운 상대가 아니라는 아닙니다.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모두 초강대국입니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10억이 넘는 인구에 10년 후에는 미국을 제치고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될 초강대국입니다.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결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도 더 큰 모험을 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대상국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중국을 잠재 적국으로 간주하며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중국인입니다. 이런 상황에 한미일은 중국의 코앞인 황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 고위 관리가 “한국은 중국을 통해 벌어먹으면서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우리는 중국과 군사력으로 싸워 이길 수도 없고 굳이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1만을 거느린 왕이 2만을 거느린 다른 왕과 맞서 싸워야 할 경우 당할 수 없으면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화친을 청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눅 14: 31~32) 중국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어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다툼에 앞장서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립적인 위치에서 동북아시아의 조정자나 중재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오랜 세월 힘 있는 나라에 빌붙어 국가 안보를 지켜오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민족의 자주적 정신이 많이 훼손된 듯합니다. 강대국에 예속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강대국의 불의한 전쟁에 용병으로 끌려가 피를 흘렸고, 이 땅의 어린 소녀들이 외국 군인의 위안부가 되었으며, 지금도 내 나라 내 땅에서 외국 군인이 우리 국민을 수갑에 채워 끌고 다녀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비굴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까지 잃어버린 채 강대국에 빌붙어 지키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그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땅에서 지켜야만 할 만큼의 부를 누리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평등한 나라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법이나 공권력을 통해 절대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형제님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자발적인 가난의 선택을 통해 함께 나누는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에 개척자들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군사력 증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변국들이 군비를 증강시켜 군사력을 강화하는데, 손 놓고 구경만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 구도를 평화의 관계로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자는 겁니다. 군사 강국이 아닌 외교 강국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자기 힘만 세다고 자랑하는 아이들보다 반의 모든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친구들과 갈등 없이 사이좋게 지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자기의 이익만 챙기려 드는 탐욕스런 나라는 주변 국가의 적이 됩니다. 그러나 서로 싸울 명분도 이유도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처럼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는 없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 스위스가 오늘날까지 평화로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스위스를 본부로 삼은 수많은 국제기관들과 그에 기초한 외교적 관계 때문이지요. 스위스나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외교 강국이 되는 것이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바른 길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나라는 바로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입니다. 이 나라는 <군대를 버린 나라>(검둥소)라는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안한 중남미의 한복판에서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평화를 만들어 가는 영구 비무장 중립국 코스타리카는 남북이 분단되어 아직까지도 냉전체제의 찌꺼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소중한 이정표입니다. 

우리나라는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북한의 남침 대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미지의 잠재적인 적을 대상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건설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이 기지 건설도 일조 원의 예산을 세우고 있지만 그를 크게 상회할 것이고 기지를 짓고 나면 6조 5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으로 구축함과 핵미사일을 탑재할 이지스함과 잠수함과 항공모함까지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정권 말기임에도 새로운 전투기를 구입하기 위해 8조 5000억 원을 미국 기업에 지불할 예정입니다. 올해도 우리나라는 국방예산으로 33조원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도, 아이들 보육 지원도, 장애인 복지도 예산이 없어서 제대로 못하는 나라가 10년, 20년만 지나면 고철 덩어리가 될 무기 구입을 이렇게 열성적으로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이익을 얻기 때문이지요. 군부, 은밀하게 무기 무역을 하는 재벌 기업 그리고 분단과 냉전 구도 속에서만 탄탄하게 권력 기반을 얻게 되는 보수적인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에게 권력과 부당한 이익을 챙겨주면서 수 조 원이 넘는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거머쥐는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바로 그들입니다. 

어떤 이는 제가 애국자가 아니라고 비난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 저는 애국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국가가 하라면 무조건 맹목적으로 열성을 다해 충성하는 애국자를 혐오합니다. 바로 그런 애국자들이 이 세상의 전쟁과 대량 학살에 공헌했으니까요. 만일 우리나라가 국방비의 10분의 1이라도 이웃 나라와의 친선 외교를 위해 쓴다면, 그 10배의 국방비로 얻을 수 있는 국가 안보보다 더 확실한 안전과 평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발상을 전환해 동북아시아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제주 해군기지를 포기해 그 건설과 무기 구입에 소요될 천문학적 비용으로 남북이 대치중인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제거하고, 그 위에 제네바나 뉴욕의 국제연합 본부와 같은 시설을 건설하여 동북아시아의 패권 다툼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미증유의 가공할 만한 전쟁 가능성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미리부터 제거하자는, 그런 혁신적인 제안을 왜 국제사회에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중재하며 화해와 평화를 만들기 위해 비어 있는 아름다운 마당)이 되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함께 적극적인 비무장 평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 상호 신뢰를 쌓아가며 군비를 축소하고 병력을 감축하는 단계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평화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국가는 군인을 만들기 위해 군사훈련을 합니다. 장교를 만들기 위해서 사관학교라는 엄격하고 체계적인 교육기관을 운영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기르기 위해서도 교육과 훈련이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교육과 훈련이 없다면 훈련받지 못한 군인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작게는 한 개인을 둘러싼 가족과 학교, 직장, 교회 안에서 개인적으로 만나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교육과 훈련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 지역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이나 직장의 노사문제처럼 사회적 단위 속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재개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빈민 지역의 교회는 재개발 과정에서 더 알짜배기 땅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세입자들의 집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조정자요 중재자로서의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지역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 사건·사고에 적극적으로 개입·관여해야 하는 존재임을 늘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예수전도단의 제주열방대학에서 많은 청년들이 선교 훈련을 받고 있지만, 바로 옆의 강정마을에서 주민들이 군사기지 건설로 고통을 당하고 평화활동가들이 구속 처벌을 당하는데 한 사람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기독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게는 복음주의도 보수주의도 진보주의도 모두 허울일뿐 입니다. 다 껍데기일 뿐이지요. 정의와 평화를 위한 고난의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 그들이 바로 이웃이고 친구들입니다. IVF의 일부 청년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님들과 소수의 예장통합 목사님들, 그리고 문정현 신부님과 과격한 예수회 신부님과 수사님, 종교적인 정체성을 밝히려 들지 않는 ‘전쟁없는세상’의 젊은이들과 소속도 없이 오직 개인의 양심에 따라 이 길을 함께 걷는 이름 없는 청년들이 그들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기독청년아카네미와 새벽이슬에서 청년들과 함께 강정을 방문한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통해서만 일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불신자나 타종교인까지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자신의 일을 시키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단이나 교파, 신앙이나 교리가 같다는 게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이런 변화를 이 땅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탐욕스럽고 고집스러운 인간이 그 악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인지 제게는 신비로울 뿐입니다. 

저는 정의와 평화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빛이 거기에서 비취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불의한 강자에게 억울하게 짓밟힌 약자들이나 불화와 갈등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가 있습니다. 이들이 딛고 있는 고통스런 대지에 하나님의 나라가 닿아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최우선적인 선교의 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런 현장에서 비로소 질문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도대체 매년 국방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얼마나 되지? 전투기 한 대가 얼마야? 왜 우리나라는 1950년에 시작된 전쟁을 아직도 끝났다고 선언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집속탄이나 잠수함의 해외 수출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과 여인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겪을 처참한 죽음과 그 가족들의 비애를 슬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예전에는 물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던 감추어졌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정은 평화를 배우는 학교가 되는 것이지요. 오키나와가 일본인들에게 평화의 학교이고, 하와이가 미국인들에게 그러하듯이요.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세우는 기지들로 인해 공동체와 자연이 파괴되는 현장 속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라납니다. 그래서 강정이 해군기지가 아닌 평화의 공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그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된다 하더라도 강정은 오키나와처럼 계속 평화의 학교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왜 독일에서 신학박사가 되어 돌아와 대학에서 후학을 길러내지 않냐고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조용히 웃습니다. 이미 학교는 열려있습니다. 강정에, 아프가니스탄에, 카슈미르에, 난사군도에, 디에고가르시아에 평화를 가르칠 학교들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르치십니다. 저는 젊은이들을 그 학교로 안내하는 길잡이일 뿐이지요. 몽학선생이라고나 할까요? 안쓰러워하는 분들의 얼굴을 내다보며 저는 대답을 삼킵니다. 

말씀을 드리다 보니 어두운 감옥에 앉아서도 제 마음 속에 눈 덮인 힌두쿠시 산맥의 영봉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인도양의 푸른 바다의 거친 파도가 출렁거리네요.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는 분쟁 지역마다 왜 그리도 자연은 빼어나게 아름다운지요! 세계가 학교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대한 학교이지요. 경수 형제님, 이제 끝을 맺어야겠네요. 오늘 재판을 받으러 법정으로 가며 길가의 나무들을 보니 나뭇잎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였습니다. 지루했던 장마전선도 잠시 지나간 듯하더니 태풍 소식이 있네요. 무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십시오. 

한라산 자락 검은 오름 아래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송강호 평화활동가 제주우체국 사서함 161호 제주교도소 611번)

201207156_2.JPG » 사진 <복음과 상황> 이종연.



송강호의 옥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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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 (주일) 구름 낌 

(상략) 잉게 숄이 쓴 실화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다시 읽었다. 나치 치하에서 저항했었던 뮌헨 대학생들의 가슴 저미는 슬픈 이야기다. 왠지 히틀러의 독일이 오늘날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비밀주의가 성행하는 우리나라의 이명박정권과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국의 위대성과 번영, 복지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빵과 직장을 약속했으며 국민 모두가 독립된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이 조국에서 영위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겠다고 공약했다." 이것은 히틀러의 약속이었다. 숄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등장으로 독일 국민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갈등과 고통을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전쟁이야, 평화스럽게 지내온 같은 민족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란다. 저항할 힘이 없는 개개인으로부터, 그들의 어린이들의 행복과 자유를 앗아가는 전쟁이란 말이다. 참으로 끔찍한 죄악이야." 

나는 이런 고백을 강정 주민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어왔다. “우리는 마치 언뜻 보기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집이지만, 꽉 닫힌 지하실 안에서는 무섭고 공포에 찬 기분 나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한스 숄의 느낌이 바로 우리의 기분이 아닌가? 4대강, 경인아라뱃길, 한강르네상스 등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이명박 정권의 치장들 배후에서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숱한 죽음들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이 젊은이들이 느꼈던 “종종 이 세상이 낯설고 고독하며, 신에게 버림받은 땅이라는 느낌”이 바로 우리의 경험과도 같았다. (후략) 

2012. 7. 6. (금) 맑은 후 구름 낌 

밤마다 돌풍이 불어 잠이 깬다. 창문 밖에 걸어 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아래층 땅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불현듯이 깨어 빨래들을 거둬들인다. 요즘 들어 거의 매일 밤바람 때문에 깨어난다. 감옥에서 지내며 고마운 선물 세 가지가 있다. 이 모두는 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들이다. 하나는 햇빛이다. 아침 새벽에는 동편에서 뜬 해가 남쪽 벽면에 붉게 햇살을 비춰주고 늦은 오후 해질녘에는 서편에서 지는 해가 북쪽 벽면으로 붉은 빛을 비춰준다. 어린 아이처럼 그 햇살을 고스란히 얼굴에 담으며 앉으면 손 뼘 하나만큼의 햇살 조각을 얼굴 위에 얹어준다. 그 빛이 따스한 선물이다. 두 번째 선물은 바람이다. 한라산 쪽으로부터 시원한 바람이 감옥 쇠창살을 넘어 들어와 우리 방을 휘돌아 서쪽 복도 쪽으로 힘겹게 빠져 나간다. 방안에 걸어 놓은 수건과 행주들을 흔들며 신선한 바람이 방안에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는 것이 고맙다. 세 번째 선물은 새벽 여명이 밝기도 전에 창 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다. 창 밖에서 “우리가 살고 있어요”라고 재잘거리는 새들의 목소리가 아침을 깨우며 간밤에도 우리가 살아있었음을 알려 준다. 사람들은 감옥 안에는 더럽고 탁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 말은 감옥 안에서 살아가는 재소자들이 뿜어내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 게다. 강도, 강간, 살인, 사기, 마약, 폭행 등 수백 수천 가지 악행들을 모의하고 저질러온 수감자들이 작고 어두운 방에 밀집해 있으니 어찌 깨끗한 정기가 방안에 담기겠는가마는 그래도 이 답답하고 무겁고 어두운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외부의 선물들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일깨우고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내가 처음에 감옥에서 살며 모든 것이 죽어있고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시계를 사서 그 초침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지 않았던가? 

그래도 나는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훨씬 덜 적적하게 지낸다. 거의 매일 아내와 동료들과 친구들이 접견을 오고 편지와 엽서들도 거의 매일 받게 되니 외롭지가 않다. 단 10분 접견이 하루 종일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게 만든다는 것도 감옥에서 매일 배운 인생 경험이다. 꼭 마약처럼 흥분된 상태가 하루를 간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도 놀랍다. 9일이 되면 수감된 지 100일이 된다. 아침저녁으로 달력을 유심히 쳐다보며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다. 자유롭고 싶다. 부당하게 내 자유를 뺏긴 것이 억울하다. 이런 억울한 감정들과 분노가 방안의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것일 게다. 감옥에서 모든 좋은 것들은 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앉아있기만 해도 후텁지근했던 하루가 지나가고 어두운 창밖으로부터 시원한 공기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감사하다.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복음과상황 http://www.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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