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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탯줄 잡고 엄마 찾아 삼만리

김인숙 수녀 2012. 08. 27
조회수 13798 추천수 1


끊어진 탯줄 잡고 엄마 찾아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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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해옥 수녀는 엘라가 <나자렛집>에 왔던 날 저녁식사 때를 기억하고 있다. 엘라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발육이 전혀 안된 아주 왜소한 몸과 작은 키의 소녀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얼른 개수대로 달려가 설거지를 했다. 


‘처음 온 아이가 저렇게 눈치 빠르게 행동하다니…….’ 엘라는 개수대가 자기 키보다 높아 꼽발을 딛고 있었다. 해옥 수녀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엘라를 불렀다. 


 “엘라야, 설거지 안 해도 돼. 여기 와서 앉아라.”   


그녀의 말에 엘라의 대답은 애어른이었다.   

 “아니에요. 여자는 엉덩이가 무거우면 안 된다고 했어요.” 


상위에는 몇 숟가락도 뜨지 못한 엘라 밥그릇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그날만이 아니라 엘라는 밥한 그릇을 제대로 비우지 못했다. 먹으면 토했다. 아빠와 단 둘이 여관, 여인숙, 컨테이너박스를 전전하며 끼니로는 자장면, 김밥, 아이스크림, 빵만 먹었다. 그녀는 이유식을 시작하듯 엘라에게 밥 먹는 훈련부터 시켜야 했다.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 엘라의 상상력은 국적을 뛰어 넘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요. 프랑스에 있는 일류호텔에서 결혼하고요. 첫날밤을 맞았는데 그때 나를 낳았어요.” 


기분 좋은 날이면 거울을 앞에 놓고 엘라는 혼자 거울과 말하며 놀았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뻐? 그럼 그렇지 엘라지? 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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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아니었다. 까만 피부에 주먹만 한 얼굴의 엘라는 질퍽한 삶이 담긴 한 알의 흑진주 같았다. 

하지만 엘라가 온 뒤부터 <나자렛집>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말 빠른 재담과 태생적 춤꾼인 엘라가 몰고 오는 바람은 꽃바람, 산들바람, 하늬바람, 솔솔부는 바람으로 즐거울 때도 있었으나, 모든 사랑, 관심, 칭찬을 혼자 독차지 하고자 하는 엘라가 판을 깨면 아이들과 수녀들은 눈도 못 뜨는 황사바람, 싹쓸바람을 맞고 동서남북으로 휘청거렸다. 


엘라는 해옥 수녀의 사랑에 늘 보챘다. 7-8명 아이들에게 고루 나눠주는 그녀의 사랑에 목이 탔다. 엘라는 목마른 갈증 해소를 밖에서 찾았다. 집밖에서 보내는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로 그 다음에는 한 달로 길어졌다. 엘라 얼굴은 이제 밖에서 찾기가 더 쉬웠다. 엘라 외의 아이들은 말썽없이 조신한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어느 정도 집에 붙어있으면서 속을 썩이는데, 그녀 눈에 보이지 않는 엘라의 경우는 나가서 어떻게 사는가가 늘 불안했다. 


도대체 집 밖의 그 곳이 어딜까? 어느 날 그녀는 여러 정보를 수집하여 그곳을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가장 하늘이 가까운 달동네에서 하차했다. 그녀는 빌딩처럼 높은 계단을 쉬면서 헉헉거리며 끝까지 올라갔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땅바닥이 휘청하여 한손으로 벽을 짚으며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났다. 더 이상 갈수 없는 골목과 바로 연결된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낮은 툇마루 옆구리에 부르스타, 냄비, 라면 껍질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은 미닫이를 사이로 하여 두 칸이었다. 집에 가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남녀 아이들이 여기서 머물렀다. 


 “전 여기가 편해요. 다 나와 같은 처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위로해 줘요.” 

  그러면서도 엘라는 그녀가 있는 나자렛집을 떠나지 않았다. 불현듯 새벽2시, 3시에 전화를 걸어 “수녀님, 힘들어요.” 하는 엘라의 하소연에 그녀는 늘 세 가지를 당부했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니 몸조심해라. 수녀님은 너를 믿는다. 우리 기도하자 라고. 엘라가 다시 집에 들어오겠다는 사인을 보내면 그녀는 지체 없이 차를 몰고 달렸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기에 엘라가 없는 밤이면 그녀는 수도복을 입고 자는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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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엘라로 인해 다른 수녀들과 갈등도 많았다. 또 엘라가 다른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참으로 컸다. 그러나 포기할수 없었다. 다수를 위해 엘라를 보낼 수 있는 게 우리들의 일반적 논리다. 하지만 때론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떠나는 마이너스 바보논리를 선택하는 것이 교육이며 또한 교육자의 자세다. 


엘라를 보내자는 그들을 설득하고 도움을 청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왔던 그녀에게는단 한 사람이라도 엄마처럼 관계를 맺으며 자기를 믿어주는 이가 있으면 엘라가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리라 믿었다. 그녀는 엘라에게 그 한 사람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엘라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연동에서 기장으로 전학을 해야 했다. 나자렛집이 이사를 한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엘라의 첫 번째 질문은 “오늘 뭐 먹어요.” 였다. 그런데 그날은 메뉴를 묻지 않고 해옥 수녀의 앞치마자락을 끌어 당겼다. 그녀의 몸은 엘라 손에 이끌려 주방에서 방으로 옮겨갔다. 엘라는 방문을 닫고 가만히 그녀의 두 손에 자신의 작은 손을 올리고선 두 눈을 맞추며 말했다. 


 “수녀님, 오늘만……. 오늘만……. 수녀님을 ‘엄마’라고 부르면 안돼요?” 


순간 그녀는 놀랐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엄마’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던 엘라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녀의 두 눈은 벌써 젖어 있었다.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는 부르짖었다. 처음으로 말문이 터진 갓난아이처럼 


“엄마엄마엄맘맘마~~~~~~~~. 엄마엄마엄맘맘마~~~~~~~~~~.”

그렇게 정말 그렇게 오래도록 엘라는 ‘엄마’를 부르며 그녀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는 엘라를 가슴에 안고 방 한 가운데 드러누웠다. 아이의 심장이 총 맞은 새 마냥 파닥거렸다. 그녀는 엘라의 등을 가만가만 두드려주었다. 어느 사이 엘라는 해옥 수녀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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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항상 엄마의 자궁 안 태아 모습을 하고 잠이 드는 엘라. 한 번도 몸을 펴고 자는 모습을 그녀는 보지 못했다. 안아 주면 온 몸이 순식간에 경직되던 엘라가 그날은 새털처럼 부드러운 몸으로 그녀의 품에서 색색거렸다. 잠든 엘라의 호주머니에서 액세서리가 흘러나온 것은 그녀가 엘라를 반듯하게 눕힐 때였다. 플라스틱으로 된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 파는 목걸이와 귀걸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겼다. 며칠 후 그녀는 엘라를 상담해주는 상담사로부터 엘라의 심리상태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도 새롭고 친구들도 낯설어서 아주 긴장된 상태에서 엄마를 찾고 있어요. 액세서리나 먹을 것을 훔치는 건, 아이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모든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마와 이어진 탯줄이 잘리는 순간, 아기는 울부짖는다. 엄마를 잃을까봐 서럽게 운다. 아기는 젖을 먹으며 자기 곁에 엄마가 있는가 확인하며 커간다. 어른이 되어도 죽을 때까지, 끊어진 탯줄을 잡고 엄마를 확인하며 산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아이도, 어른도 다르지 않다. 끊어진 탯줄을 잡고 계속 집을 나간다. 엄마를 찾아서다. 끊임없이 목마른 엄마의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엄마 찾아 떠나는 인생이 된다. 


해옥 수녀는 엘라의 가출을 그렇게 이해했다. 끊어진 탯줄을 잡고 엄마를 찾아 방황하다 다시 돌아와도 안길 수 있는 가슴으로 남고 싶었다. 


만국기가 휘날리는 가을 운동회 날이었다. 엘라와 같은 학년의 나자렛집 애진이는 해옥 수녀가 평소에 학교에 나타나는 것을 극구 싫어했다. 부모와 살지 않고 시설에서 산다는 것이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운동회 날 애진이는 그녀가 오길 바라고 반면 엘라는 오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점심을 맛있게 준비하여 학교에 갔다. 애진이는 얼른 점심만 먹고 모습을 숨겼으나 엘라는 끝까지 그녀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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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해옥 수녀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야 했다. 그녀의 오랜 질병인 허리디스크가 도져 입원이 불가피했다. 집을 나가 있던 엘라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왔을까. 그녀가 떠나기 하루 전, 엘라는 들어와 그 밤에 눈물로 쓴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또 다시 사라졌다. 하트로 수놓아진 분홍색 편지봉투에는 “사랑하는 내 두 번째 엄마께.” 라고 적혀 있었다. 해옥 수녀는 엘라의 편지를 눈물로 읽어 내렸다. 


<엄마, 저 엘라에요. 다시 돌아오실 거죠? 제가 수녀님께 할 말이 정말 많은데 다 듣고 가셔야죠. 수녀님께 했던 제 행동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후회스럽습니다. 지금 제가 말 할 수 있는 건,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 밖에 없어요. 모든 일, 그리고 스쳐지나갔던 시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거예요……. 수녀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거예요. 사랑해요. 엄마, 그리고 고마워요…….> 


그녀와 살던 6년 동안 3년은 밖에서 떠돌던 아이. 그래도 고검, 대검을 합격하여 기쁨을 준 아이.  해질녘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안의 모든 문과 가스불을 점검했던 아이.  동생들에게 쥐어박히고 몰래 섧게 울던 몸짓 작은 언니. 그리움을 말로 표현 못하고 그녀의 주의를 뱅뱅 돌던 아이.


그녀가 엘라를 다시 만난 것은 부산이 아닌 서울이었다. 날으는 손오공도 아닌 엘라가 서울에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상담사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웠다. 


 “서울이요? 세상에, 세상에……. 그 아이는 자기 주 무대인 부산 외에는 아무데도 가 본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어울리던 친구들과 떨어진다는 것은 생명이 끊어지는 거나 마찬가진데……. 엘라는 엄마를 찾아 간 거예요.”  


  엘라는 해옥 수녀가 입원한 서울 한복판 대학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넣고 고개는 푹 숙이고서 병원 창 밖에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돈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가정 안에서뿐만 아니라 청소년 교육에서도 어머니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돈보스코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애원합니다. 


“어머니, 저와 함께 발도코로 가시면 안 될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없습니다. 어머니,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세요.”   이리하여 말가리따는 58세의 나이에 고향 땅을 떠나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십니다.  


1856년 11월 25일 새벽. 발도코의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 말가리따가 돌아가신 날, 돈보스코는 생전에 어머니가 자주 다니시던 콘솔라타 성당을 찾아갑니다. 그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의 기도를 바칩니다. 


“성모님, 이제 저와 저의 아이들은 이 세상에 어머니가 없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돈보스코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부탁하듯 성모님께 애원합니다.  


 “성모님, 이제는 성모님께서 우리 가까이 오셔서 

가난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지금 이 시대 우리사회는 너무나 많은 청소년들이 끊어진 탯줄을 잡고 집을 나와 엄마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고 있습니다.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집을 나온 청소년들을 대신하여 이 땅의 엄마들에게 외칩니다. 

 “엄마, 어디 계세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먹고 싶어    요. 집으로 돌아와 주세요.”  

어엿한 숙녀가 된 엘라는 현재 서울에서 착실한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날은 ‘어버이 날’이라고 말하던 엘라는 변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싫지는 않아요. 나도 어버이날 감사할 엄마가 생겼잖아요.”

그리고 헤어질 때는 해옥수녀를 꼭 안아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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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살레시오 수녀이며 작가입니다. 지난 5월에 또 한 권의 책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를 냈습니다. 먼저 방황해본 10대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멘토링 책입니다.
이메일 : clara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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