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나를찾아떠나는休] 틱낫한의 걷기 명상

휴심정 2012. 08. 28
조회수 32492 추천수 1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_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각박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수도, 명상,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밖에서  만 갈구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깨닫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생활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휴심정을 찾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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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틱낫한의 걷기 명상

나는 도착했네, 여기가 고향이네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눈팔지 말고 마음을 호흡과 발밑에 집중하라.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 

온갖 생각과 함께 방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만 집중하라."




어디를 향해 걷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걷는다. 집으로, 학교로, 일터로……. 걸음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발걸음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늦게 출발한 자신에게 화가 나고, 목적지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헐떡이며 걷곤 한다.


프랑스 남부 보르도지방에서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수행공동체인 플럼빌리지의 걷기는 다르다. 걸음 자체가 목적이다. 단지 걷는다. 그래서 걷는 것만으로 평화롭다. 


평화를 이루는 불교적 깨달음은 수도자가 아닌 보통사람들에게 잡힐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틱 스님은 오직 들숨 날숨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걷는 것만으로도 그런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수행의 핵심인 마인드풀니스(깨어 있는 마음, 마음챙김, 마음집중)다. 생각을 따라 방황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러 숨을 쉴 때는 쉬는 줄을 알고, 걸을 때는 걷는 데만 집중하게 한다. 늘 ‘과거의 걱정‘이나 ‘미래의 계획‘, 생각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매사에 하는 일 자체에 집중해 기쁨과 평화를 만끽하도록 하는 것이다. 


플럼 빌리지는 틱 스님이 거주하는 윗마을(어퍼햄릿)과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서쪽마을(웨스턴햄릿), 10분 거리인 아랫마을(로워햄릿), 30분 거리인 뉴햄릿(새마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승려들의 수행처 내원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지난 여름수련회엔 47개 나라에서 2500여 명이 참가했다. 각 마을엔 부족한 방 대신 잔디밭에 친 텐트로 넘쳐났다.


수백 년 된 보리수와 곳곳에 그늘을 드리우는 대나무 숲. 스님들과 함께 탁구를 하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해먹에 누워 늘어지게 잠을 자는 수련생들. 조금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으며 엄격한 시간과 규율을 요구하는 한국의 수련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곳도 아침 6시에 일어나 법당에서 함께 30분 좌선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8시30분부터 12시까지 틱낫한 스님의 법문과 오후 4시 30분의 조별 모임에서 서로 깊이 경청하고, 마음을 터놓는 시간이 하루 일과의 뼈대다. 나머지 시간엔 그늘에서 노닥거리든 낮잠을 자든 자유다. 


틱 스님의 매일 오전 법회는 네 마을을 돌아가며 열리는데, 법당 밖에선 다리를 펴거나 누워서 스님의 법문을 듣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나쁜 습관이라고 화를 내지 마세요. 그 습관과 싸우지 말고 웃음을 머금으세요. 그렇게 할 때 서서히 변화될 수 있답니다.”


스님의 위로 섞인 법문에 자신에게조차 비폭력적이고 점차 평화로워지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실제 이곳 수행의 핵심은 보통 30분 정도에 한 번씩 울리는 종소리 명상이다. 종이 울릴 때마다 모든 동작을 중지하고 오직 숨만 지켜보며 깨어 있는 것이다. 


기계처럼 몸과 마음을 혹사하기에만 급급하며 한 번도 쉬어보지 못한 영혼들은 나무 밑 그늘과 해먹 위에서 몸은 완화되지만 의식은 깨어나는 체험을 한다. 


이런 쉼과 걷기, 명상을 통해 사람들은 차츰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놓여난다.


수련회 참석자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나를 찾는 여행’ 중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수행에서조차 ‘현재‘와 ‘과정‘보다는 ‘성공‘과 ‘결과‘를 중시한다. 틱 스님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으라고 이끌었지만 참가자들은 “이 수행으로 깨달을 수 있느냐“거나 “당신이 ‘살아 있는 부처‘냐“고 묻곤 했다. 


틱 스님은 “우리 모두의 안엔 불성이 있으며, ‘깨어 있는 명상’을 할 때마다 그 부처님이 빛을 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러분이 아는 달라이라마나 틱낫한은 이미지이지 실제가 아니다”라며 “밖에 있는 스승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줄 때 반드시 실망하기 때문에 내면의 부처에게 귀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수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틱 스님의 좌선과 걷기 명상은 우리나라에도 최근 많이 알려진 근본불교의 위파사나 가운데 기초적인 수행이다. 대부분의 불교 수행은 그 초기 수행인 위파사나의 변형과 발전으로 볼 수 있는데, 틱 스님의 수행도 위파사나를 현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파사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무상, 무아, 고, 열반 등 진리를 체득하게 한다. 관찰하는 대상의 변화(무상)를 적나라하게 통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게 한다. 하지만 틱 스님의 수행은 위파사나의 관찰처럼 세밀하지 않다. 그 대신 대상에 집중하는 ‘깨어 있는 마음’(팔정도의 정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15분마다 종을 울리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호흡을 관찰하게 한다. 매사에 정신없는 현대인들을 깨어 있게 하기 위함이다. 


위파사나나 화두선은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비타협적인 자세로 깨달음을 향해 가기에 ‘목적 지향적‘이다. 그래서 수행 분위기도 삭막한 느낌이다. 이에 반해 틱 스님의 수행은 일상의 삶에서 바로 이 순간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 과정이 고행이 아니라 평화롭고 아름다워 고행을 싫어하는 현대인들이 쉽게 다가서게 한다. 


또 위파사나나 화두선 등이 개인 수행에 치중하는 데 비해 그의 삶과 가르침은 늘 세상의 고통과 함께했다. 위파사나는 우리나라에선 ‘소승’ 수행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는 ‘나와 세상‘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가르치고,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반전 평화의 기운을 북돋우는 점에서 ‘대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달팽이처럼 느린 틱 스님의 걸음을 따라 참가자들도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걸음은 같은 걸음이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걸음이다. 


지금까지는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며 걸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놀았다. 그러나 여기선 마음을 온전히 발밑에 집중한다. 마치 발이 대지에 입 맞추는 것을 음미하듯이. 생각이 머리에서 발밑으로 내려가면서 온도계 눈금이 눈높이에서 발밑으로 내려간 것 같다. 머리에선 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드디어 굳어졌던 입과 눈초리가 풀어지고, 사람들의 얼굴에 평화로운 미소가 흐른다. 


“길에는 차가 많다.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언제든 차에 치일 수 있다. 아이를 보호하려면 아이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와 항상 함께하는 것이 수행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 ‘깨어 있는 마음‘이 바로 수호천사다.”


고요한 챈팅(찬불가와 염불) 뒤에 이어진 틱 스님의 법문은 아주 쉽게 ‘깨어 있음’으로 안내한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마음이 ‘깨어 있는 마음’이다.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눈을 팔지 않고, 마음을 호흡과 발밑에 집중하라.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 온갖 생각과 함께 방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만 집중하라. 그러면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들은 좌선, 걷기 명상을 하고, 법문을 들으며 자신으로 돌아오는 데 어떤 노력도, 시간도 들지 않는다는 데 놀란다. 

“지금 여기가 정토요 천국이다.” 


틱 스님의 안내대로 참가자들은 점차 앉아 있을 때는 숨에만, 걸을 때는 걸음에만, 밥을 먹을 때는 먹는 데만 집중한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동에 온전히 집중해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다. 


숙소나 식당에 갈 때도 숨을 들이쉬고 두 발걸음을 걸으며 “바로 지금, 바로 여기”라고 속으로 새기고, 숨을 내쉬고 두 발걸음을 걸으며 “나는 도착했네, 여기가 고향이네”를 되뇐다. 


망상 속에 방황하지 않고, 매순간 ‘지금 여기’에 온전히 도착함을 스스로 깨닫는다. 


한 40대 여성은 “이렇게 쉽게 깨어 있을 수 있느냐”며 감격했고, 50대 여성은 “수행을 힘들게만 생각했는데, 호흡과 걸음을 통해 아주 쉽게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걸음 자체가 목적이 된 이들의 발이 푸른 지구별과 입맞춤을 한다. 조급함과 분노와 욕망과 번뇌가 피어나던 발밑에서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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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수행법은 
고행 아닌 일상 속 평화…나와 세상의 합일 추구

틱낫한 스님의 좌선과 걷기 명상은 우리나라에도 최근 많이 알려진 근본불교의 위파사나(관찰) 가운데 기초적인 수행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수행으로 인도, 미얀마, 타이, 라오스 등 남방불교권에서 이어져온 위파사나는 불경인 〈대염처경〉에 따라 좌선과 행선(걷기)을 번갈아 하며 사염처(몸, 마음, 감각, 진리)에 집중하는 수행이다. 

대부분의 불교 수행은 그 초기 수행인 위파사나의 변형과 발전으로 볼 수 있는데, 틱 스님의 수행도 위파사나를 현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파사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무상, 무아, 고, 열반 등 진리를 체득하도록 한다. 관찰하는 대상의 변화(무상)를 적나라하게 통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게 한다. 하지만 틱 스님의 수행은 위파사나의 관찰처럼 세밀하지 않다. 그 대신 대상에 집중하는 ‘깨어 있는 마음’(팔정도의 정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15분마다 종을 울리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호흡을 관찰하게 한다. 매사에 정신없는 현대인들을 깨어 있게 하기 위함이다. 

위파사나나 화두선은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비타협적인 자세로 깨달음을 향해 가기에 ‘목적 지향적’이다. 그래서 수행 분위기도 삭막한 느낌이다. 이에 반해 틱 스님의 수행은 일상의 삶에서 바로 이 순간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 과정이 고행이 아니라 평화롭고 아름다워 고행을 싫어하는 현대인들이 쉽게 다가서게 한다. 

또 위파사나나 화두선 등이 개인 수행에 치중하는 데 비해 그의 삶과 가르침은 늘 세상의 고통과 함께했다. 위파사나는 우리나라에선 ‘소승’ 수행으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는 ‘나와 세상’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을 가르치고,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반전 평화의 기운을 북돋우는 점에서 ‘대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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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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