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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아픔 무관심해야 훌륭한 스님?

법인 스님 2012.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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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두켤레-.jpg

검정고무신 두켤레   사진 <한겨레> 자료



때로는 이웃의 시선에서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평소에 자각하지 못했던 내 모습과 감추고 싶은 내 얼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시선과 이웃의 시선을 열린 마음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게는 이웃의 눈에서 우리 승가의 모습을 새삼스레 보게 된 두 가지의 기억이 있다. 한번은, 몇 년 전 내소사에서 주한 외국인 30여 명을 대상으로 2박3일 템플스테이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사중 대중스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외국인들과 새벽예불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때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두가 더없이 아름다운 산중의 정취에 취하였고 일상의 수행에서도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복해했다.


그런데 마지막날, 좋은 소감말 가운데 단 하나의 아쉬움을 밝혔다. “스님들이 너무 럭셔리해요.” 아니! 내소사의 스님들이 사치스럽다니, 대체 외국인의 눈에 스님들이 가진 그 무엇이 그토록 눈에 거슬렸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절의 사무실과 모든 방에 있는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와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마침 그때 고맙게도 그 절에 고급차는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통역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대략 난감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조계종 지진 피해 탁발-.jpg

지난 2005년 동남아시아 지진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탁발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 승려들  

사진 <한겨레> 자료



그랬다. 그때까지 그들의 눈에 비친 불교의 수행자는 세상을 떠난 고행자였다. 철저하게 현대문명과 거리를 두고 은둔하는 명상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극단적인 무소유와 청빈 속에서 ‘명상’하는 ‘은둔’의 ‘고행자’을 보고자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외국인들과 같은 생각과 정서를 가진 이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과연 세속 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옳은 것일까? 이런 수행자상은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정신에 맞는 것이고, 출가수행자의 본분의 전부이며, 이웃대중에게도 유익한 것인가?


또 하나의 기억은 1970년대 송광사 구산 방장 스님의 수행과 덕화에 감응하여 구도의 길을 걸었던 외국인 출가수행자들을 통해서이다. 그들 대부분은 서구의 문화권에서 매우 높은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었으며, 자본과 성공의 세계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회의를 품어 진정한 인간의 길을 묻는 청년구도자였다.


얼마 전, 몇 년간 한국의 여러 절을 편력하면서 수행한 그들의 글을 우연히 접했다. 책장을 펼치기 전 많이 궁금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불교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한국의 스님들은 무엇보다도 일상이 가난했고 소박하다. 한 톨의 밥도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다. 사소한 물건에도 공사의 구분이 엄격하다. 그리고 심성은 매우 착하고 부드럽다. 때로는 상식을 벗어나 기행을 하는 수행자도 보게 되는데, 그들 역시 알고 보면 순진하기 그지없다. 겸손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맑고 단순하게 살아간다. 검정고무신에 누더기 옷을 입고 살아가지만 무엇보다도 여유롭고 당당하다. 마치 단아한 산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는 그들의 태도이다.(보살행의 구제대비심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의 대부분의 절은 시골에 있고, 그 절 아래에는 많은 마을이 있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매우 가난하다. 먹고사는 일에 매우 힘들어 한다. 많은 가정이 빚에 시달리고 있고,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높은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한국스님들은 이들에게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화제로 삼지도 않았다. 참 많이 의아했다. 검소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스님들이 힘겨운 마을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말이다.


지금 나는 외국인 수행자들의 정직한 시선에서 또 다른 우리들의 얼굴을 본다. 이웃에게 관심과 애정을 거두어버린 유아론적이고 소승적인 우리들의 얼굴을. 오늘 내 이웃에게 비친 ‘자족’과 ‘여유’에 갇혀 ‘방관자’로 남아 있는 한국불교의 오늘의 얼굴을.


다시, 청빈과 자족의 삶을 넘어 이웃을 향한 간절한 관심과 따뜻한 애정을 동시에 구족하고 실현해야 하는 지점에서, 문득 불교 너머 밖에 자꾸 시선이 간다. 보편의 진리가 불법이고 ‘나와 이웃’의 삶을 동시적으로 완성하는 사람이 보살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100년 전 이 땅에 온 엘리제 쉐핑(1880~1934)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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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선교사 서서평   사진 <한겨레> 자료




한국 이름이 서서평인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녀가 조선의 테레사라임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테레사 수녀(1910~97)보다 먼저 태어났고, 1930년 인도의 빈민가로 파견된 테레사보다 18년 앞선 1912년에 이 땅에 와서 사랑과 헌신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조선의 민중을 구원했으니 차라리 ‘조선의 엘리제 쉐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서서평은 독일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간호사로 지내던 중 개신교에 투신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산실인 부인조력회와 조선여성절제회, 조선간호부회, 여전도연합회 등의 창설과 함께 이 땅에 헌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서서평은 마음과 몸을 조선의 사람으로 살았다. 당시의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여기고 우월적이며 계몽적인 입장에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아간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몇 개의 호화 별장을 소유하고, 지리산 아래서 조선인들에게 등짐을 지워 물품을 남시루봉 정상부근에 지은 별장까지 나르게 하고, 그곳에서 호화 파티을 즐겼다. 그러나 서서평은 검정 남자 고무신을 신고, 옥양목 치마를 입고, 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으며 나환우와 걸인들과 함께 살았다.


서서평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헌신했다. 1930년 그곳은 45만 가구 220명 인구 가운데 88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렸고, 걸인은 1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1년에 100일 정도 나귀를 타고 병자와 여성을 돌보고 교육시켰다. 서서평의 일기에는 당시 조선의 참담한 삶이 역력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달간 500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굶주리거나 병들어 앓고 있거나 소박맞아 쫓겨나거나 다른 고통을 앓고 있었다.”


서서평은 당시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어멈’으로 불린 이름도 없는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며 인간의 자존감을 세워주었다. 그는 나환우의 아들을 비롯해 14명의 고아를 양아들·딸로 삼아 키웠으며, 소박맞고 쫓겨난 38명의 미망인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평등과 박애의 정신으로 사랑스럽지 못한 자를 사랑스런 존재로 만든 그는 1934년 자신의 주검마저 송두리째 병원에 기증하고 떠났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반쪽짜리 담요 한 장과 잡곡 한 바가지가 전부였다.


서서평, 그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결핍을 느끼지 않았다. 소유에서 자유로웠다. 나아가 그는 가난의 자족에도 매이지 않았다. 아픈 사람과 함께 살며 아픔을 어루만졌다. 『금강경』이 어디 장경각에만 있겠는가? “마땅히 그 무엇에 붙들리지 말고 자비심을 행하라”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가르침이 서서평의 일생에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을. 그는 성공이 아닌 섬김의 삶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비웠다. 비움 속에서 나누고 나눔 속에서 비웠다. 대승의 길이 어디 『대방광불화엄경』에만 있으랴. 세상이 환상인 줄 알지만 삶과 역사를 만들어가고, 나와 네가 본래 없는 줄 알지만 나와 이웃이 교감하고 감동하는 삶을 엮어가며, 고통이 본래 없는 줄 알지만 무지와 욕탐으로 생긴 고통을 소멸하고자 하는 보살행이 조선의 사람 서서평에게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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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들어가는 선승들   사진 <한겨레> 자료



『유마경』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은, 모든 것이 덧없는 줄 알지만 선행을 쌓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괴로움인 줄 알지만 기꺼이 생사 가운데 들어간다. 열반이 적정한 줄 알지만 짐짓 궁극의 적멸에 안주하지 않는다. 세상을 벗어난 한적함을 알지만 몸과 마음으로 늘 노력하고 실천한다. 사람들로 왁자지껄한 장소를 찾지만 정작 번뇌와 혼돈을 훌쩍 넘는다. 무아인 줄 잘 알지만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는다.”


‘우리들의 세계’에 안주하고 자족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당신들만의 세계’로 밀어낸다. 그리고 서로가 낯설어진다.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자신의 속내를 감춘다. 단절과 고독과 고립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산중 수행자의 검정고무신과 서서평의 검정고무신, 이 두 개의 검정 고무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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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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