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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과 호흡한다는 것은

2012. 11. 19
조회수 7397 추천수 0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 고진석 이사악 신부. 만 5년 된 <분도>지의 명실상부한 편집장이자 구미 가톨릭 근로자문화센터장,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생태분과 위원에 성소모임 지원까지. 눈코 뜰 새 없다. 최근에는 평화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복음을 주제로 젊은이들과 신나게 교감을 나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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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진석 이사악 신부는 연대와 만남이 필요한 이유는 서로가 바라보는 그 순간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그 많은 일들을 해나가면서도 점점 신명나 보이는 이유를 고진석 신부는 결코 혼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모든 일이 ‘관계’안에서 이뤄진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그 중심에 계신 하느님.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도움을 청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면서 충실히 좋은 인연을 맺는 것이 고진석 신부가 사는 방법이자 원리다.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익힌 자연의 원리를 명료하게 살아가는 고진석 신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진짜 농부
고향 제주의 자연 통해 얻은 생태적 감수성


“‘생태’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은 나중의 일이죠.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적 가치가 소중하다고 배운 것은 어린 시절이에요. 나는 전통적 환경에서 양육된 마지막 세대인 셈인데, 농사일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체험하고, 게임이 아닌 놀이를 통해 나름대로 공정한 규칙, 약자에 대한 배려를 배웠죠. 할머니로부터 들은 2차 대전과 4.3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했어요. 당시 4.3이야기는 금기였는데도, 유독 저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해주셨죠.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에 대해 알았고, 자연스럽게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고진석 신부는 서품 성구를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농부였기 때문”이라고 즉답한다. 농부였던 아버지의 일을 거들면서 자랐고 놀이터는 들과 바다였다. 어린 마음에도 바닷가에 쓰레기가 몰려오는 것이 안타까웠고, 점점 개발과 문명이라는 이유로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따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었고,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앙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순
당당하고 자유로운 삶 찾아 수도원으로


고진석 신부는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가 22살이었으니 다른 동기들보다 10년은 먼저 세상에 나온 셈이다. 당시 겪었던 사회생활에 대해 고 신부는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고 표현했다. 모태신앙에 교우촌 같은 곳에서 자란 그가 맞닥뜨린 세상은 참아내기 힘든 곳이었고, 신앙은 그것을 넘어서기에 너무 무력했다.


“어머니 말대로 착하게 살면 잘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이상했죠. 그리고 신앙인들은 신앙생활에 갇혀 자신들끼리만 행복해보였어요. 넘을 수 없는 양 벽 사이에서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를 찾고 싶었어요. 보다 신앙에 철저한 삶, 그래서 찾은 것이 수도자의 삶이었죠. 단순하고, 영적이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삶,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영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꿈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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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진석 이사악 신부. 그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내가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은 바로 관계, 인연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당시 돌파구로 다가온 곳은 수도회였다. 부산에서 가깝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이었다. 성소모임에 나간 지 2번 만에 입회원서를 건네받았지만, 1년을 더 다니고 난 후 입회했다. 고 신부는 “처음 경험한 수도원의 삶이란 사실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처럼 삶의 다양한 방식을 알았더라면 수도원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었고, 조금씩 자신만의 방법으로 처음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조선소 반대운동이 이끈 또 다른 세상
왜관 고엽제 사건으로 만난 새로운 인연, 정의평화위원회


언젠가는 자신이 꿈꾸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저 열심히 즐겁게 살던 중 고진석 신부에게 새로운 계기가 찾아왔다.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이 동참한 STX 조선소 건설 반대운동이었다. 원장 수녀가 지지를 구하는 메일을 항상 보내왔지만,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100주년 행사와 양성을 맡은 상황에서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2008년 2월, 마지막 통보와도 같은 메일이 도착했다. “이번이 마지막 집회가 될 것 같다. 이번에 끝내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으니, 최대한 많이 와서 힘을 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서 후배 신부 2명과 마산을 찾았죠. 갔더니 새로운 얼굴이 왔다면서 발언과 노래를 시켰어요. 그 자리에서 생태운동을 하고 있는 올리베따노회의 수녀님을 만났고, 수도원에서 4대강 반대 운동을 하고 있으니 범 베네딕도 차원의 활동을 하자고 제안하셨죠. 그때부터 수도원을 조직하고 낙동강 순례를 다녔어요. 그 일을 하면서 내 안의 무엇인가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진석 신부는 “그 이후로 고엽제 문제가 터졌고, 본격적으로 시민단체, 대구대교구 정평위와 연결됐다”고 하면서, “내가 무엇을 많이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트라피스트 수녀님들이 나의 막연한 죄책감을 벗게 해줬고, 실천의 빌미를 마련해 준 것에 감사 한다”고 말했다.


고진석 신부는 그 후로 정평위 생태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활동을 우려하는 이들에게는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하는 것이라고는 강정마을에 가끔 가는 것밖에는 없다고 하지만,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능한 자신의 도움을 전하기 위해 애쓴다.


매 순간 충실하게 이어가는 ‘관계’의 힘
그리고 최선을 다한 후에 내어맡기는 마지막 1%의 믿음


거침없고 유쾌했다. 수많은 일들이 쏟아지고 때론 마음을 상하는 일들도 목격할 텐데, 그런 에너지가 어디에서 솟는지 궁금했다. 고진석 신부는 “마치 마법처럼, 내 모든 꿈이 다 이뤄졌다. 그러나 그것은 운이 아니라 좋은 인연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실 어릴 때 치기어린 마음에 유학도 가보고 싶었어요. 뭔가 근사한 사람이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첫 서원이 끝나고 유학을 다녀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웬걸, 유학생활은 말할 수 없는 고생이었어요. 마치고 나니 두려운 것도 없어졌고, 나를 단련시켜 또 다른 창구를 마련해 준 계기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후에 맡게 된 <분도>지 편집, 최근의 근로자문화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해보고 싶던 일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고 신부에게 주어졌다. 글을 쓰고 편집하고 인터뷰를 다니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았지만, 그 중에 재능이나 즐거움 역시 찾아왔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빙자해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언젠가는 이주민들을 위한 공동체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발령을 내 주시잖아요. 한 번 쯤 생각했던 일들은 모두 해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를 위해 예비 된 길이 있다는 믿음, 시련마저도 다른 선물을 주시기 위해 마련하신다는 신호와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요.”


고진석 신부는 이 모든 마법 같은 일이 결국 운이 아니라 ‘관계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사람이든 일이든 만난 그 매 순간 마음을 다하다보니 좋은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연은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으로 돌아온다고 하면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내가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은 바로 관계, 인연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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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대구 왜관에서 주교회의 정평위가 주최한 천주교 정의평화환경 활동가 연수가 열렸다. 참가자들을 수도원으로 초대한 고 신부가 수도원 공간과 이뤄지는 일들을 소개하고 안내했다. ⓒ정현진 기자

고 신부는 또 하나의 힘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1%의 믿음이다. 그는 “99도의 물이 끓기 위해 마지막 1도가 필요하듯, 99%의 최선 후에 내어 맡기는 1%의 믿음이 그리스도인에게 100%의 힘이 된다”고 전했다.


고 신부는 “우리는 어느 정도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한 달 후의 일이 잘 될 것이고 예상하고, 한 달 후에 일이 꼬일 것 같다면 지금 내가 뭔가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러다 보니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길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겨 비록 어렵게 가더라도…. 그러니 편하게 사는 길이 쉽고 어떻게 갈지 알아도 그리로 갈 수 없다. 결국 생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로 분노와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느냐고,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물었다. 좋은 인연에서 비롯된 에너지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과 타자사이에 일치감을 느낄 때 나오는 에너지, 바로 그것이 성령이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같은 원의를 갖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 기억해야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수도원, 교회, 세상….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죠. 그것을 부정할 때 무력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냥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되죠.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는 성공한 일이 별로 없어요.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한 적이 없고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 세상에 나와 마음을 함께 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기억하는 거예요. 사실 <분도>지를 만들면서 그런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죠. 연대와 만남이 필요한 이유를 그렇게 깨달았어요. 만나고 연대할 때, 서로의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뭔가를 만들고 도모해서가 아니라 이미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공명이 느껴지는 것. 그와 더불어 깨어 기도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세상 속 공명의 힘, 움직이는 에너지. 그렇게 조짐과 징표를 보면, 길이 보여요.”


만나는 모든 것과 ‘좋은 인연’의 고리를 맺어가며 그 힘으로 살아간다는 고진석 신부. 어려서 익힌 자연의 순리를 온 삶에 담아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그를 보면서,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로 흐르는 계곡물이 생각났다. 고진석 신부는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마음조차 담아두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고 신부의 행복은 세상의 행복이 그대로 묻어난 때문일 테니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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