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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를 채우신 분

임락경 목사 2013.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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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23_01.jpg » 고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 한겨레 자료 사진.

원경선은 1914년에 태어나서 2013년에 돌아가셨다. 서양 나이로는 99세라 하겠으나, 우리 나이로는 100세다. 내가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그들이 나이를 이야기할 때 보면 그들은 꼭 한살을 줄여서 이야기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꼭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강요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한마을에서 같이 살면서 궁합부터 중매, 결혼식 진행, 임신, 출산, 문병, 처방, 침술, 부황, 단방약, 초상, 산소자리, 제사, 시세까지 모두가 하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고 궁합부터 시제까지다.” 뱃속에 있는 생명체가 사람이냐 아니냐 하고 물으면, 생명체가 맞다고 한다. 그렇다면 너희들 나이를 올려라 하고 기어이 그들의 나이를 올려놓고 떠나왔다. 

그래서 원경선 선생은 100세다. 내가 선생님을 뵌 지도 50년이 지났다. 동광원에 있을 때 수시로 오셨고, 소사 풀무원에 찾아가서 뵙기도 했다. 이현필 선생은 1913년생으로 두 분은 친구로 지내셨다. 원경선과 이현필의 만남은 원경선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광주 양림교회에 사경회 강사로 오셨을 때였다. 양림교회가 두 개로 나누어졌을 때 보수 쪽 교회인지 진보 쪽 교회인지는 잘 몰라도 강의 도중에 뒷자리서 질문을 한 이가 있었다. “선생은 왜 율법만 강요하고 행함은 무시하느냐.” “지금 교회가 나누어진 마당에 이곳에서 답변할 수가 없고, 끝나고 숙소로 오시오.” 숙소에서 만나고 보니 19세 때에 알던 사람 같았다. 알고 보니 서울 YMCA 영어반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교제가 시작되었고 이현필의 장례까지 해마다 갖는 추모예배까지 오셨다. 마지막 추모 예배 때가 2009년 3월 18일로 기억한다. 

1971년 내가 광주 진달래교회에 있을 때 전주시내에서 1주간 집회가 있었고 강사로 오셨다. 그 당시 집회는 1주일씩 새벽부터 밤늦도록 할 때였다. 끝나고 진달래 교회에 오셨다. 그 당시 나는 양계를 하고 있었고 선생님 역시 양계를 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2만 마리였고, 나는 2천 마리였다. 닭이 되기 위해서는 병아리부터 1kg 정도 되려면 10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배합사료가 잘 되어서 2개월이면 길러낸다. 그것은 배합사료에 성장촉진제가 들어가서 그렇다. 그런데 왜 사료허가를 내주느냐는 의문이 들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마지막 사료에 성장촉진제가 들어있지 않는 사료를 10일 정도 먹여야한다. 마지막 출하 전 10일간 이 배합사료를 먹이면 그때는 닭이 크지 않고 오히려 살이 빠진다. 이 마지막 사료를 10일간 먹여서 출하해야 성장촉진제 성분이 닭에서 빠져나와 인체에 피해가 적다. 이 규정을 지키려면 닭 값을 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값을 배를 주고 사가는 소비자가 없다. 그렇다면 양계장을 치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는 그대로 생업이었던 양계장을 정리하고 나니 빚이 2천만 원이었다. 1971년에 2천만 원은 큰돈이었다. 선생님은 1972년에 빚이 2억이셨다. 남대문 부근에서 미군들 상대로 닭 장사를 하시다 끝내 정리하셨다. 마지막 사료 10일만 지키지 않으면 선생님도 나도 빚진 자가 아니고 큰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그 다음, 정농회(正農會) 창립이다. 내가 경기도 동광원에 있을 때였다. 소사농장으로 교육이 있으니 오라는 것이다. 1975년이었다. 일본에서 오신 고다니 선생의 강의였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큰 죄를 지었으나, 사죄하는 뜻에서 한국을 위하는 길을 본인이 고심한 결과로, 일본처럼 하지 말고 한국은 유기농업을 하라는 강의 내용이었다. 화학비료와 농약, 특히 제초제 사용에 인류의 큰 재앙이 온다는 내용이었다. 그 첫 강의를 시작으로 1976년에 정농회가 창립되었고, 우리나라 환경농업의 역사를 이루어내게 되었다. 

그 첫 강의 때 통역을 정농회 초대회장이 되신 오재길 선생이 하셨다. 30년 전에 일본에서 B.H.C라는 토양살충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일본정부에서 생산을 중단시키고 없다. 그런데 30년 후에까지 농약성분이 검출된다고 통역을 하니 원선생께서 오재길 선생께 젊은 사람이 통역을 잘못한다고 지적했다. 강의의 내용인즉슨, 30년 전에 사용했던 B.H.C성분이 30년 후에 모유에서 검출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이 통역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꾸짖으신 것이다. 그 젊은 사람이 지금은 90세가 넘어 100세를 바라보고 계신다.

내 나이 57세 때 일이다. 부부간에 한 번도 공부를 2등을 안 해보고 1등만 했던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공부 잘한 덕으로 서울대 교수가 되었고 정치인들이 외국 나갈 때나 역대 대통령이 외국 갈 때 꼭 같이 나갔었고 부릴 수 있는 혜택은 다 누리고 세상을 좁게 살았다. 그러나 47세에 암 진단을 받고 보니 아무 소용없고 환갑 지난 분들은 무조건 존경해드려야 한다고 나를 찾아와 말했다. 그리고 나는 환갑 지나고 70세를 곧 바라보고 살고 있으니 존경 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원경선 선생님은 일백세를 사셨으니 경외를 드려야 한다. 본인이나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신 것은 물론이고 정농회를 창립하셨다. 

정농회는 사업은 실패했다. 장사를 잘 못한다. 그러나 우리 회원들은 바른 농사 짓느라 빚을 지고 있으나, 암환자들은 없다. 해마다 총회 때 정농회 회원들 중에 암으로 죽은 사람 있었느냐고 물으면 물론 없다. 물론 정농회 회원으로 암 진단 받으면 창피해서 살짝 죽은 이들은 있을 줄 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나타난 환자들은 없다. 이것이 정농회의 자랑거리다. 이 모든 일들이 원경선 선생님의 공적이었다.

선생님께서도 모르는 것도 있으셨다. 1990년쯤으로 생각한다. 내가 한동안 정농회 총회를 참석하지 못했다. 그것은 두 가지였다. 내가 13년 동안 전북에 있는 기독교농촌개발원 교육을 전담하고 있었을 때였다. 꼭 정농회 총회와 일정이 겹쳐서 그랬고, 참가비가 다른 교육에 비해서 비싸서 그랬다. 돈이 없어 참가비를 못 내서 참석하지 못했다. 그 나름대로 여유가 생겨 총회에 참석해보니 놀라운 광경이었다. 당시 회장인 오영환 회장은 중풍이 걸려있고, 김영원 이사는 파킨슨병으로 고생중이고, 원경선 선생님 내외분은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이었다. 그 길로 아침 일찍 안방까지 찾아들어갔다. ‘내가 선생님 덕으로 유기농을 했고 건강을 유지하게 되었는데, 선생님 내외분이 관절염이 걸리시면 무슨 망신입니까?’ ‘글쎄, 아무리 유기농을 해도 관절염이 안 고쳐지니 어떤 이유야?’ ‘잘못된 식용유 때문이에요!’ ‘그래? 나는 또 우리 풀무원에서 많이 먹으라고 했지.’ 그 길로 관절염은 없으셨다. 덧붙여 오영환 회장님도 1년 후 중풍에서 벗어나셨고, 김영원 장로님 역시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신 것은 아니다(여기서 오해하지 말 것은 그 당시 쓰고 있던 식용유가 불량회사 제품이었다. 시중의 모든 식용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선생님이 백수잔치를 하셨다. 백자가 일백 백(百)자가 아니고 일백 백자에서 한일(一 )자를 빼낸 흰백(白)자였다. 일백 백자 백수잔치를 하려고 기다렸다면 못하고 가셨을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백수나 진갑, 환갑, 생일은 당겨서 차리지 지내서 차리면 안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선생님은 수명을 다하고 가셨으나, 남은 업적들이 많아 지금부터 빛을 발할 교훈들을 찾아서 후진들이 이어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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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경 목사
개신교 목사.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이현필(1913~64)과 류영모의 제자인 영성 수도자이다. 30년째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가이자 유기농 농부 겸 민간요법계의 재야 의사. 군인으로 복무했던 강원도 화천에 터를 잡아 1980년부터 시골교회를 꾸려가면서 중증장애인 등 30여명을 돌 보는 한편 유기농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igolzz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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