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나그네에게 조용히 곁을 내주는 사람

조현 2011. 06. 14
조회수 8040 추천수 0

    일상의 순례자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점차 뿌리 뽑힌 존재로 변해간다. 마음의 정처가 없다는 말이다. 행복을 찾아 떠돌지만 마음 깊이 도사린 외로움은 가실 줄 모른다. 외로움은 자기와의 불화이고 온전한 삶으로부터의 소외이다. 하지만 외로움은 또한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부름이기도 하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향을 마음에 품은 이들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이러한 고향에서 인간은 들길 옆에 튼튼하게 자란 떡갈나무처럼 광활한 하늘에 자신을 열고 어두운 대지에 뿌리를 박고 산다.” 대지에 뿌리를 박고 하늘에 자신을 열고 살아갈 때 영혼은 아늑함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그늘과 기댈 언덕과 고향은 하나로 이어진다.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걸음 느린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가끔 멈추어 선다는 인디언들처럼, 경쟁과 효율과 승리의 염원이라는 염천을 피해 그늘에 들어설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는가? 세상에는 에셀나무 그늘처럼 나그네에게 조용히 곁을 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지만 그저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람, 축제의 함성을 지를 즐 알지만 숲 속의 빈 터처럼 늘 고요한 사람,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 주겠다고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는 사람, 시드럭부드럭 사위어가는 마음에 있음 자체만으로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 그들은 어떻게 서늘한 그늘이 되었을까?

 양파는 겨울 한파에 매운맛이 들고, 감은 여름 땡볕 제대로 견뎌야 단맛을 그득 품게 된다.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아픈 이의 마음을 헤아리겠으며, 외로워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외로운 이의 시린 마음을 덮어 줄 수 있겠으며,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넘어진 이를 일으켜 줄 수 있겠는가? 염천의 세월이든 북풍의 세월이든 오지게 견뎌내며 하늘의 뜻을 장히 품는 사람이라야 그늘도 되고 기댈 언덕도 되지 않겠는가?

 구름 대신 그악스러운 열기만 남은 하늘을 본다. 이제는 저 여름 땡볕이 무섭지 않다. 불편하지도 않다. 다만 고마움으로 저 여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갈 뿐이다.

 

 김기석 산문집 <일상순례자>(웅진 펴냄)에서

 

 김기석=서울 청파감리교회 목사이자 문학평론가. 양심적 젊은 목회자들이 멘토다.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삶이 메시지다> 등의 저서와 <예수 새로 보기>,<예수의 비유 새롭게 듣기>,<자비를 구하는 외침> 등의 번역서가 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행복에 이르는 길

    휴심정 | 2018. 02. 18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불평등의 기원

    휴심정 | 2018. 02. 09

    역사의 불균형은 현대 세계에까지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는가

    휴심정 | 2018. 01. 15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 인공 섬에 갇힌 인간

    휴심정 | 2018. 01. 15

    지표면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좁디좁은 지역이 이후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 발전과 편리함의 대가

    휴심정 | 2018. 01. 15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