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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

박기호 신부 2013. 06. 13
조회수 15276 추천수 1



손연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jpg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손연재 선수.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평화를 빕니다(마태 10,7~13).”


오래 전이지만 생수를 앞에 놓고 사랑의 말과 저주의 말을 할 때 물의 결정체가 달라진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저자가 일본인이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물을 떠놓고 ‘사랑해요, 축하해요, 기뻐요’ 하는 말이나 기도를 하게 되면 물의 결정이 6각수처럼 아름다운 결정을 이룬다고 합니다. 반면에 욕을 하거나 분노의 소리를 지르거나 하게 되면 물의 결정이 흉측한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현미경으로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물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비입니다. 물은 살아있는 생명체란 것입니다. 


과학적 검증은 제 판단의 몫이 아니니까 모르고, 우리가 평소에 말 한마디로 감정상하고 우울하거나 분노하고 싸우고 앙심을 지니게 되는가 하면,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고 힘이 나고 희망으로 충만하기도 하는 이유가 바로 물의 반응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우리 몸의 70%가 물이니까요.


말(언어)에는 축복과 저주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가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릴만 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떠드는 분위기가 되면 ‘미고안실!’ 을 몇 번이고 만트라처럼 외우게 해서 분위기를 정돈하시곤 했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합니다.‘ 의 약자인데 ’미고안실‘을 늘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요즘은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십시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는 인사들이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기업체나 관공서에서 안내하는 이들이 그렇게 인사하죠. ’사행건평, 사행건평!‘ 하고 외워볼까요? 물은 살아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몸이 육각형의 결정체로 반응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치유일런지 모르지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기사를 보고서 참여하는 ‘댓글’이란 것이 있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한 사람에게 따가운 질책을 보내고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참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가령 김연아나 손연재 연애인 등에게 저주의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어유 못생긴거 봐!” “겨우 그것밖에 못하니?” ‘돈 얼마 벌었냐?“ 등. 그런 댓글을 다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오염시킬 것 입니다. 


엄지손가락들-.jpg

                                                                 <한겨레> 자료



언어는 자신의 성장한 환경과 문화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고유성도 있지만 수준이란 것도 있습니다. 악의가 없고 욕설의 의미가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문화로 습관화된 언어의 감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놈’이란 말을 자주 써버릇 합니다. ‘고놈 참 재주 좋다! 아니, 이눔이!...’ 제 고향이 판소리 서편제로 유명하여 걸죽한 표현들이 많은 지방이라서 ‘놈(者)’이라는 지시대명사가 아주 자연스럽게 듣고 성장했었거등요. 반면에 ‘자식, 새끼’ 같은 말은 욕설로 들립니다. 


공동생횔에서는 내가 성장 과정의 습관으로 배인 언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감성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언어에 대한 예의와 조신(操身)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손윗사람이나 여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공동체의 예의가 필요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기품있는 언어를 사용해야겠는데 처음에는 습관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것도 수행으로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 어린 수하 형제나 아이들에게도 경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교육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공동생활에서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 형제의 격려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를 늘 경험하고 삽니다. 농업노동으로 힘들 때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어려울 때입니다. 자신도 지치고 피곤하지만 지친 형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우정과 사랑의 말은 정말이지 영양제와 같습니다. 


축복의 말에 축복의 능력이 있고 저주의 말에 저주가 있습니다. 축복의 말, 격려와 응원, 희망을 독려하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딱 한가지면 됩니다. 마음이죠.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는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축복을 나누게 됩니다. 


가족을 만날 때 마다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나 멘트를 나누는 것, 밝고 고운 표정으로 미소를 나누는 것, 평화의 인사로 축복하는 것은 서로의 우정을 깊게 하고 마을생활을 친교로 이끕니다. 물은 살아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전해 듣고 반응하는데,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한다면 당연히 살아계신 하느님의 마음을 울리지 않겠습니까? 


찬양의 언어는 정말 훌륭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말로 소통하고 살아왔지만 공동체로 살면서야 비로소 말이란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어린이로 돌아가 나의 언어 습관을 학습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평소에 말을 적게 하고 듣기를 좋아해서 내공을 쌓고, 남의 말에 잘못된 지식을 발견하여 끼어들어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자 애쓰지 말아야 하겠지요. 


가족의 누군가가 감정 있는 상태로 말을 걸어올 때 한 호흡의 숨을 죽인 후에 작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답하는 것, 자신의 언어생활에 대한 성찰과 정화의 노력은 교양과 인격의 성숙,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한 생활입니다.  


물도 살아있고 하느님도 나도 너도 모두 살아있어 서로의 영을 교류하니, 살아있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  생명으로 빛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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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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