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011.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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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책은 독자의 뇌를 흔들어 깨운다. 뉴런에 충격을 가해 깜짝 놀라게 한다. 새로운 생각이 담긴 훌륭한 책은 독자를 사유의 새 길로 이끈다. 책을 읽다가 독자는 문득 자기가 낯선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게 된다. 훌륭한 책은 문장들을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면 그 책은 틀림없이 훌륭한 책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책은 독자의 대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무모하다면 무모한 대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구, 맞붙어 겨루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들쑤신다면, 그 책이야말로 훌륭한 책이다. 고병권(‘수유너머 R’ 연구원, 사회학 박사)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런 책이다. 충격을 가하고, 흔들어 깨우고, 사유를 자극하고, 문장을 외우게 하고, 도전함으로써 더 많이 배우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의 머리말 첫 문장부터가 베껴 쓰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킨다.

 

 “책은 민주주의와 같다. 그것은 하나의 이견이다. 뭔가를 제안하든 반박하든 책은 차이를 표명한다. 따라서 책을 쓰는 일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한다.”(4쪽)

 

 고병권의 책은 관성에 저항하는 새로운 사유로, 새로운 사유를 껴안은 힘찬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병권은 민주주의가 동의를 조직하는 일이 아니라 이견을 제출하고 차이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이 상식과 통념에서 저만큼 벗어난 내용을 품고 있을 것임을 직감케 하는 언명이다. 140쪽이 채 안 되는 이 소책자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 길은 낯선 길이어서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민주주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의 민주주의가 펼쳐진다. 독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발상, 새로운 정의를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의 작동방식을 알려주는 단순한 개념 설명서가 아니라 근대정치의 핵심 원리를 뿌리에서부터 검토하여 민주주의 상을 재구축하는, 선도 높은 정치철학적 사유의 실험장이다.

 

 이 책은 세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글은 민주주의와 관련해 우리가 당연하게 수긍했던 전제들을 비판한다. 첫 번째 글에서 고병권은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오래된 통념을 문제 삼는다. 즉 민주주의란 ‘다수자의 지배’를 뜻한다는 그 통념이 의문의 대상이 된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 하면 우리는 국민투표와 다수결부터 떠올린다. 고병권은 민주주의의 발생지인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그 말의 뿌리를 더듬는다. 민주주의의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는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emos)와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다. 따라서 데모크라티아는 다수자의 지배․통치를 뜻하기 이전에 ‘데모스의 힘’을 뜻한다.

 

 그런데 민주주의에는 다른 정체들에서는 볼 수 없는 원리상의 난점들이 있다. “민주주의에서 데모스는 통치자이자 피치자이다. 즉 다스리는 사람들이 또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다. (……) 그들의 복종은 그들의 자유가 결정한 것이다. 지배자인 데모스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데모스 자신이다. 즉 민주주의는 통치자와 피치자, 자유와 복종, 주체와 객체가 한 존재에게 동시에 머무는 매우 역설적인 체제인 것이다.”(13쪽) 고병권은 민주주의 원리에 내재한 이런 곤란과 역설에서 민주주의를 긍정할 이유를 발견한다. 그가 여기서 검토하는 것이 플라톤의 ‘민주주의 조롱’이다. 그가 보기에 플라톤의 민주주의 조롱에는 민주주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담겨 있다. 따라서 그 조롱을 뒤집으면 민주주의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Politeia)에서 민주정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민주정체에서는 어떤 권위도 존중되지 않는다. 피통치자들이 통치자처럼 굴고,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노인들은 권위를 포기하고 젊은이들을 흉내 낸다. 스승들은 학생들에게 아첨하고 학생들은 스승들을 조롱한다. 외국인과 이방인이 자국 시민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심지어 동물들조차 길을 갈 때 자유롭고 당당하게 걷는 버릇이 들어 길을 비켜서지 않으면 들이받으려고 한다. 모든 게 이런 식으로 자유가 넘친다.”(15쪽)

 

 플라톤의 민주주의 조롱은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를 비하하는 사람들에게서 유사한 어투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누구나 제멋대로 자유를 누리는 민주주의를 ‘아르케가 없는 정체’라고 비판하는데, 여기서 아르케(arche)란 ‘지배(지배자)’ 또는 ‘근거(원리)’를 뜻하는 말이다. 고병권은 플라톤의 이 비판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지배 없음’ 그리고 ‘근거 없음’을 본질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끌어낸다. 이때 ‘지배 없음’이라는 의미에서 ‘아르케 없는 민주주의’는 ‘정체(polity) 없는, 정체 아닌 민주주의’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정체가 아닌 민주주의는 데모크라티아의 원뜻 그대로 ‘데모스의 힘’을 뜻한다. 어떤 정체가 됐든, 심지어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도 데모스의 힘이 작동할 때 거기에는 민주주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민주주의는 제도라기보다는 제도에 대응하는 힘의 표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고병권이 플라톤을 뒤집어 발견한 민주주의의 독특한 모습이다.

 

 고병권은 또 플라톤의 비난을 역으로 수용해 민주주의를 ‘근거 없음’의 정체라고 규정하는데, 여기서 근거는 어떤 자격이나 출신이나 바탕 같은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그런 근거를 거부하는 정체다. “거기서 모든 것들은 근거 없이 원초적으로 평등하며, 어떤 자격이나 조건 없이 서로 부딪치고 어울린다. 나는 여기서 민주주의를 발견한다. 민주주의에서는 지식도, 재산도, 혈통도, 성별도, 심지어 숫자도 다른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민주화 투쟁이란 그런 근거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임을 폭로하는 일이다.”(27쪽)

 

 요약하자면, 민주주의란 결국 아르케 없는 사람들, 곧 기반도 근거도 불분명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모여 데모스의 힘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고병권은 이 새로운 규정에 의거하여 민주주의를 ‘소수성의 정치’에 연결시킨다. 민주주의는 원리상 다수의 지배가 아니라 소수적 존재들의 힘을 가리킨다. 고병권은 수적인 ‘다수’로 모든 걸 결정하는 정체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민주주의 이념이란 기껏해야 한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 이상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통념에 맞선 소수의 투쟁이야말로 민주화 투쟁에 합당한 이름이지, 다수 의견을 이유로 그것을 제압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41쪽)

 

 

 


<녹색평론> 2011년 7~8월호(통권 119권)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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