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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점심을 못 산 이유

임락경 목사 2013. 08. 13
조회수 22493 추천수 0

[나를 울린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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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의 손.  사진 박승화 기자




임락경 목사-.jpg

화천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  사진 조현



25년 전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 설교하러 갔다. 환자들 중에 제일 중증환자 노인이 눈에 띈다. 눈도 보이지 않고 코도 없고 귀도 없고 손가락도 없다. 마나님께서 지팡이를 들고 앞서 걸어가고 뒤따라 가신다.


 설교를 끝내고 밖에 나왔더니 60대 할머니가 2만원을 건네주신다. 은혜받았으니 감사해서 준다는 것이다. 그때다. 중증환자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설교한 목사 어디 있어?” 

 “네. 여기 있어요.”

 “지금 내 앞에 있어?”

 “네.”

 “이 돈 받아!” 


 손마디가 다 떨어져 나가고 토막 난 손가락 사이로 여섯번이나 접어둔 1만원권 지폐 한장을 준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내 등을 만져본다.


 “등이 빳빳하구먼.”

 “네, 제가 좀 건방져서 등이 빳빳해요.”

 “됐어. 목사가 살찌면 설교 못해.”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등을 만져서 다행이지 배를 만졌으면 뺨 맞을 뻔했다. 일을 많이 해서 등은 굳어 있었으나 배는 나왔을 때였다.


 이 여천 한센병 환자들이 다닌 성산교회에서 내가 사는 시골교회공동체에 월 5만원씩 헌금을 보내줬다. 우리 시골집 장애인 시설에 보내준 후원금이었다. 


 그 돈을 받고 있는 동안 환자들이 눈에 밟혀 돈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가령 친구들을 만나 점심 먹고 내가 점심값을 낸다거나 술값을 기분 좋게 한번 낸다거나 시간이 급하다고 택시 타고 다닌다거나 국외여행을 간다거나 폼 잡는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선교헌금이 10여년간이나 왔다. 이제 그 헌금은 그쳐 시집살이는 끝났다. 이제는 점심도 살 수 있고 술값도 먼저 낼 수 있는 자격이 있으니 나더러 점심 사달라고 부탁해도 괜찮다. 목사니까 술값은 안 된다. 


 임락경(화천 시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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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경 목사
개신교 목사.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이현필(1913~64)과 류영모의 제자인 영성 수도자이다. 30년째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가이자 유기농 농부 겸 민간요법계의 재야 의사. 군인으로 복무했던 강원도 화천에 터를 잡아 1980년부터 시골교회를 꾸려가면서 중증장애인 등 30여명을 돌 보는 한편 유기농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igolzz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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