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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하느님이야"

고진하 2013. 09. 25
조회수 17384 추천수 0


 [나를 울린 이사람]


자네가 하느님이야


장일순 선생의 수묵화-.jpg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나 세상에서 깨진 놈들 속에 있노라'이란 글과 수묵화



장일순 밭에서 새싹-.jpg

텃밭에서 새싹과 마주한 장일순 선생.  사진  <한겨레> 자료.



장일순 선생-.jpg

원주의 장일순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30대 초반 무렵, 나는 어느 기독교 출판사에서 잡지 편집을 하다가 해직을 당했다. 뜻하지 않은 필화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난생처음 정보기관으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한 뒤 직장에서 쫓겨나 낙향하고 말았다. 입에 풀칠할 대책도 없이 좌절감에 젖어 막막하게 보내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나를 부르더니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께 데리고 갔다. ‘원주의 예수’로 알려진 장 선생님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 뵌 선생님의 눈길은 따스했다. 잠시 후 붓과 화선지를 꺼내 묵화 한 점을 쳐서 건네주시며 선생님은 뜻깊은 한마디를 던지셨다. 


 “이 사람아,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여!”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금세 알아듣지 못했다.

 “네?”


 선생님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다시 일갈하셨다.

 “자네,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란 말이여!”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깊은 뜻을 알아챈 뒤 가슴이 뜨거워지며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 내가 하느님이라니? 물론 선생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듣기 이전에도 성경에서 말하듯 모든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 또 동학에서 읽은 ‘인내천’ 사상 같은 것을 통해 내가 곧 하늘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그 신비한 지식을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나는 이제 가슴으로 그 궁극의 신비한 지식을 껴안을 수 있었다. 


 하여간 그날 이후 인간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의 신비로운 방향성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그 말씀이 곧 내가 일생을 바쳐 전할 ‘복음’의 정수라는 것도! 지금도 이따금 세상사에 지쳐 곁길을 기웃거리게 될 때, 인간과 세상에 대한 환멸로 절망하곤 할 때마다 천둥처럼 울려오는 선생님의 음성을 듣곤 한다. 


이 사람아, 자네가 바로 하느님이여! 


고진하 목사·시인


고진하 목사 시인-.jpg
필자인 고진하 목사 시인   사진 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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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자유혼 예수, 노자, 장자, 조르바를 영혼의 길동무 삼아 강원도 원주 근교의 산골짜기에서 산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쳤고, 대학, 도서관, 인문학카페, 교회 등에서 강의한다. <얼음수도원>, <수탉>, <거룩한 낭비> 등의 시집과 <이 아침 한 줌 보석을 너에게 주고 싶구나>, <목사 고진하의 몸 이야기>,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우파니샤드 기행> 등 책을 냈다.
이메일 : solss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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