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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 자유와 할 수 있는 자유

휴심정 2014.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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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 자유와 할 수 있는 자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1.9 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editor@ctholicnews.co.kr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목마름이 물을 찾습니다. 찻상에 놓인 감잎차를 끓여 고요한 가운데 차 한 잔을 마시고 몸을 씻습니다. 그리고 마련된 자리에 두 다리를 가부좌하고 몸을 꼿꼿이 세워 앞쪽으로 주의를 집중하고 앉습니다. 몸과 마음이 싱그럽게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낍니다.

매일 매일의 행복은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일어나서 방 치우고 세수하고 명상하고 기도합니다. 방을 치울 때는 방 치우는 일만 하고, 세수 할 때는 세수만 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으려 합니다. 치아를 닦는 일이 세수를 하는 일보다 덜 중요하지 않고, 밥을 먹는 일이 설거지를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를 닦으면서 어떻게 밥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밥을 먹으며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둘 필요도 없습니다.

밥을 먹는 일은 책상에 앉아 있는 일보다 사소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만큼 잠자는 일도 중요합니다.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더 소중합니다. 정성을 다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성스럽습니다. 천박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어떠한 성스러운 일도 하찮은 것이 되고 맙니다.

   

자유.jpg   
ⓒ박홍기


거룩한 성사생활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이 성사입니다. 곳곳이 나를 배움으로 인도하는 교과서요, 선생님이며, 학교입니다. 밥을 먹거나, 길을 걸어가는 것에서부터 잠을 자는 것에 이르기 까지 나의 스승 아닌 것이 없습니다. 꽃과 나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지금하고 있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순간순간 알 수 없는 기쁨에 젖어들곤 합니다. 그 기쁨 한 가운데 내가 있습니다. 내 몸의 모든 움직임에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몸과 마음은 자유를 얻습니다.

 

삶의 자유는 이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쉬고 싶을 때는 쉬고, 움직이고 싶을 때는 움직입니다.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을 때 글을 씁니다. 책을 읽고 싶어 질 때 책을 읽습니다. 자고 싶으면 잡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고 싶어질 때 까지 기다립니다.

 

마음을 바꾸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즉시 바꾸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바꾸어 하고 싶어지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옵니다. 그때가 되면 자명하고 찜찜하지 않습니다. 그 하는 일에 흥이 나고 재미가 있습니다. 나는 사제생활을 좋아합니다. 신부로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미사도 강론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함께 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

 

어제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개척공소 일을 함께하시던 선교사들입니다. 우리가 희생하여 만든 개척공소를 후임신부가 없애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하십니다. 이해가 갑니다. 나도 섭섭합니다. 함께 한 모두가 다 섭섭해 합니다. 섭섭한 마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명한 삶을 확인하고 싶어서 제안 하나를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희생이란 없습니다.’

 

전임 사목지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일, 작은 교회인 공소를 개척하는 일은 우리가 좋아서 했던 일입니다. 이것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동의하십니다. 한 마음으로 기쁘게 작은 교회를 개척했던 거라고 말입니다. 그 시작도 행복했고 그 과정도 재미있고 행복했으며 기뻤습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가 만들어 질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희생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좋아서 재미있어서 했던 일이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선교사님과 함께 우리 모두는 동의하셨습니다. 이미 소통이 되지 않는 전임지의 이야기는 내려놓기로 합니다. 이제 내 후임자가 그 일을 다르게 해석하고 정리하는 것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의 일이고 그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 일상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지 모릅니다. 너무 목표를 멀고도 거대하게 잡았기 때문입니다. 삶은 단순합니다. 단순한 삶속에 진실이 숨 쉬고 있습니다. 밥을 잘 먹는 것, 옷을 잘 입는 것, 잠을 잘 자는 것, 걷기를 잘하는 것,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할 것입니다.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일상을 즐기는 일들이 바로 인생을 자유롭게 사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두 수도승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한 수도승이 말합니다.
“우리 스승은 정말 도 통한 것이 틀림없어. 강 한쪽의 둑에 앉아 맞은편의 모래사장에 이름을 쓰실 수 있다고, 정말 대단한 스승이야.”
옆에 있던 수도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합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의 스승은 시장하면 잡수시고, 피곤하면 주무셔. 나는 그처럼 자유로운 분을 뵌 적이 없어.”
먼저 말한 수도승이 그 말에 무릎을 꿇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참 자유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평화롭게 하고 시끄러운 마음을 잦아들게 합니다. 유별나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몸을 통해 이룹니다.

 

내게 주어진 일상을 새로운 배움터로 받아들입니다. 그것만이 새로운 희망입니다. 일부러 건강을 찾을 것도 없습니다. 건강은 따로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몸 그 자체가 ‘건강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몸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그 부름에 따라 사는 순간, 삶 전체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질서는 내 영혼을 기쁘게 하는, 좀 더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꿈꾸게 합니다.

 

몸을 돌보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단식으로 경험합니다. 지금 숨 쉬고 있는 그 자리 그 보배로운 자리에 몰입하는 행복이 참 자유입니다. 나는 오늘도 하지 않을 자유와 할 수 있는 자유의 바다에 떠 있습니다.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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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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