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뺄셈의 삶

휴리 2015. 03. 18
조회수 12665 추천수 0


3.jpg

청소  사진 <한겨레> 자료



11.jpg

공주 한옥마을 객실  사진 <한겨레> 자료


 

 날씨가 따뜻해지니 겨우내 집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차례차례 대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벌써 바쁘다. 


 청소를 하기 전 먼저 시작하는 것은 물건정리다. 불필요한 물건들이야 말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집을 더럽히는, 정리하고 청소하는데 손을 많이 가게 해 노력과 시간을 잡아먹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버린다고 버리고, 가능한 적게 산다고 노력한 것 같은데 집안 곳곳엔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여있다. 


 중형 크기(40평대 후반)의 아파트에 살다가, 마당 포함한 면적이 살던 아파트의 반에 불과한 한옥(20평대 초반)으로 이사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당을 빼면 주거공간은 더 작기 때문에 갖고 있던 짐의 무려 90%를 버려야만 한옥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막상 살아보니 버린 90%의 짐 중에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 분은 그 후 고정된 형태로 된 물건은 추가로 집에 들이지 않기로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지인들이 집에 놀러올 때도 물건을 선물로 갖고 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선물로 허락된 품목은 단 하나였는데, 그건 바로 ‘먹어 없앨 수 있는’ 음식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조선의 아름다움’은 ‘빼고, 빼고, 빼고 나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묘사한 부분이 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예전에 봤던 한 전시가 떠올랐다. 조선시대 선비의 방과 당시 가구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전시였다. 선비의 방을 재현한 공간에는 몇 개의 가구와 붓글씨 도구 등 실용적인 물건들만 있고, 장식을 위한 장식품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네모반듯한 가구의 단순함과 벽에 걸린 붓들의 가지런한 모습, 창의 격자무늬 등이 그 자체로 정결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간을 꾸미는 것은 아름다운 장식품과 꽃을 놓거나, 그림을 걸어야 한다고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내게 그 공간은 충격이었다. 인위적인 장식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물건을 최소한으로 갖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아름다움이 생긴다는 것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로 나는 내가 쓰는 공간에 가능한 장식품을 두지 않는다. 있는 것은 없애고 새로 사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디자인 면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사려고 신경을 쓴다. 공간을 비워놓을수록 간결하고 시원한 여백의 미가 생기고 그로인해 정신도 맑아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좋고 아름다운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하고, 그 물건들을 쓰고 살 더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돼버린 ‘덧셈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덧셈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욕심은 채울수록 커지고, ‘백만장자는 백만 가지의 걱정이 있다’고 갖고 있는 게 많을수록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덧셈 대신 뺄셈의 생활을 해보면 어떨까.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까지 빼고 또 빼고. 뺄셈을 하다보면 그다지 필요도 없는 물건에 그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썼다는 생각에 덧셈에 대한 욕구가 뚝 떨어진다. 그 다음에 생기는 것은 물건이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다. 


 휴리(심플라이프 디자이너)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휴리 심플라이프 디자이너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자고 친구 만나고, 사랑하는 일상 속에서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이며 행복한 삶을 가꾸어가고 싶은 지구인.
이메일 : hooleetree@gmail.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요리를 통해 자유로워지기요리를 통해 자유로워지기

    휴리 | 2017. 03. 12

    창의요리.요리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요리를 못하더라도 위축되지 않는다. 널리 알려져있는 조리법을 굳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대로 만든다.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요리를 위해 재료를 사지 않고, 있는 재료에 맞춰 요...

  • 단순하게 살기 위한 몇 가지 기술단순하게 살기 위한 몇 가지 기술

    휴리 | 2017. 02. 09

    3년째 집안의 물건을 줄이고 있다. 버리고, 기증하고, 나눠주고.요즘 유행한다는 미니멀리즘,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려는 그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3년째인데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날 잡아서 마음먹고 안쓰는 물건 버리면 쉽게 미...

  • 키 콤플렉스, 하이힐이 몸과 마음 갉아먹다키 콤플렉스, 하이힐이 몸과 마음 갉아...

    휴리 | 2015. 12. 07

    빨간색 핸드백,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일상적으로 신는 운동화. 이 의류 잡화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전혀 걸칠 생각조차 안하던 것들이었다. 예전에 나는 항상 최소 7센티미터 이상의 하이힐 구두를 신고, 그 구두를 덮어줄 긴 길...

  • 얼굴을 고치고 고쳐 남은 것은?얼굴을 고치고 고쳐 남은 것은?

    휴리 | 2015. 10. 15

    ‘성형’한 개성파 조연배우가 대중 앞에서 사라지는 이유얼마 전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우연히 한 중년 여성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장기가 없는 민낯이었는데 피부가 깨끗하고 얼굴 표정도 맑아서 눈에 확 띄었다. 내 눈엔 화장 짙은...

  • 돈으로 행복을 사는 방법돈으로 행복을 사는 방법

    휴리 | 2015. 08. 20

    돈으로 행복을 사는 방법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중에서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과거에 전세사기를 당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부동산중개업자를 자칭한 사람이, 집주인한테는 월세를 낼 세입자를 구해주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