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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의 나, 꿈에 담긴 비밀

성해영 2011. 10. 10
조회수 26444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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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겨레> 자료

 

 

꿈(dream)의 미스테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은 1900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신분석학은 칼 융(Carl G. Jung)의 분석심리학과 더불어 대표적인 심층심리학으로 불린다. 그들에게 따르면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는 의식적 차원의 기저에는 훨씬 더 깊고 넓은 무의식의 층위가 자리한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많은 심리현상 중에서 왜 하필 꿈에 주목했을까? 이유인즉 그가 꿈이야말로 의식과 무의식의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 즉 인간 무의식이 자신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연구가 밝혀 낸 것처럼 수면 중 안구가 빨리 움직이는 렘수면(REM: rapid eye movement) 시기에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을 자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렘수면 시기에 깨우면 꿈을 기억할 확률이 현저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수면을 지속적으로 방해받아 꿈을 꾸지 못하게 되면 피험자가 높은 수준의 피로와 정신적 혼란을 보고한다는 연구결과는 꿈이 생리적인 차원에서조차 긴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꿈을 꾸며, 꿈을 꾸지 않으면 인간은 정상적인 생활을 꾸릴 수 없다.

 

한편 꿈은 우리의 합리적 이성을 시험하기도 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산삼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전조로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심지어 로또의 당첨 번호를 꿈에서 그대로 보았다는 사례마저도 등장한다. 그 밖에도 꿈에서 실제 사고를 미리 보았다거나, 꿈에서 부모나 친척을 보고 기분이 이상해 연락해 보니 꿈 꾼 시점에 실제로 세상을 떠났더라는 얘기 역시 아주 드물지는 않다. 꿈 연구의 개척자인 프로이트 역시 꿈의 이러한 기이한 측면을 잘 알고 있었으며, 텔레파시와 더불어 이런 종류의 꿈에 평생 큰 관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자신의 정신분석학이 현대적인 과학으로 뿌리내리는 데에, 이 관심이 큰 걸림돌이 되리라는 점을 잘 알았던 탓에 공공연한 언급을 최대한 삼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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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자료

 


 

꿈은 주어지는 것이자, 해석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무엇보다 꿈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돼지꿈을 꾸겠다고 마음먹어도 돼지를 꿈에서 곧장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간혹 꿈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가는 사람도 만나 보았지만, 대부분의 꿈은 주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꿈의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개꿈’이 아닌 의미심장한 꿈일수록 ‘주어짐’의 성격은 강해진다. 임신한 줄도 몰랐는데 ‘태몽’을 꾸고 난 후 비로소 임신 사실을 알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심지어 임신한 사람 대신에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태몽을 대신 꾸어준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동시에 꿈은 ‘해석’, 즉 해몽(解夢)을 필요로 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바로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꿈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적극적인 해석의 노력과 더불어 꿈의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하게 해석될 경우 꿈은 다양한 삶의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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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   사진 <한겨레> 자료 

 

 

특히 프로이트는 일상적 의식에 의해 억압당하는 내용들이 꿈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내담자가 억압하는 심리적 상처에 접근해 신경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분석가의 해석이 환자에게 매우 낯선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 환자가 그것에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다는 언급도 빼 놓지 않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여하튼 꿈에는 적절한 해몽이 필요하다. 이처럼 꿈과 해몽 사이에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 거리가 있고, 해몽이 쉽지는 않지만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인류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文姬)가 언니 보희(寶姬)의 꿈을 사고 후일 신라의 왕이 된 김춘추와 결혼했다는 매몽설화(賣夢說話)는 유명하다. 정작 꿈을 꾼 언니 보희는 그 꿈의 의미를 몰랐지만, 동생 문희는 그 의미를 알아챘다는 것이다. 문희가 해몽법을 배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꿈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지혜가 있었음에는 분명하다.

 

문희는 소변으로 경성(京城)을 가득 채우는 언니의 꿈이 ‘여성성’을 통해 영향력 있는 지위에 오르는 기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춘추를 집으로 데려온 오빠 김유신의 뜻에 부응해 그와 사귀고, 이후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덧붙여 ‘불장난’으로 임신시킨 후 결혼을 주저하는 김춘추를 압박하기 위해 문희를 ‘불로 태우겠다’ 김유신의 협박이 쉽사리 해결되리라는 사실은 꿈속의 ‘소변’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무릇 모든 ‘불장난’은 소변으로 마무리되는 게 아니던가. 이와 유사하게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몽하고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다는 구약의 다니엘 이야기 역시 꿈이 올바르게 해석되면 대단히 큰 통찰을 줄 수 있음을 증언한다.

 

삼국유사의 매몽설화와 구약의 다니엘 이야기는 꿈을 꾼 당사자 보다 타인이 그 꿈을 더 잘 해석할 수 있다는 상식과도 부합한다. 또 꿈의 해석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훈련을 통해 꿈의 해석에 능숙해 질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물론 프로이트가 강조했듯이 꿈의 해석이 판에 박은 듯 ‘기계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유신의 누이동생과 비슷하게 남산에 올라 서울을 소변으로 가득 채우는 꿈을 꾼 사람에게 무작정 대통령이나 영부인, 혹은 영부군(令夫君)이 될 거라고 단언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 역시 무모한 일이겠지만.이런 얘기들이 역사적 진실인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인류가 꿈과 꿈의 해석을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요컨대 꿈은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을 그 속에 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 엑스터시의 관점에서 보면 꿈이란 우물 속 개구리가 우물 밖의 세계를 잠시나마 힐끗 엿보는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여러 종류의 ‘개꿈’은 예외로 치자. 이 대목에서 내가 기억하는 내 첫 꿈을 얘기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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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 가운데 알파파는 심신이 이완되고 안정된 휴식상태,

베타파는 일을 하고 활동해 긴장해 있는 상태,

 세타파는 얕은 잠이 든 상태, 스핀들은 잠으로 빠져들거나

 깨어날 때의 몽롱한 상태, 델타파는 깊은 수면 상태.  그림 <한겨레> 자료

 

 

 

 

꿈과 엑스터시

내가 기억하는 첫 꿈은 여섯 살 즈음의 것이다. 아직도 내 기억에 너무도 생생한 그 꿈은 당시 나에게 자못 큰 충격이었다. (‘삼각자 에피소드’에 이어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점을 넓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내가 충격에 유난히 예민한 인간이거나, 충격적인 얘기로 조회수를 높여보려는 얄팍한 시도로 그러는 건 아니다. 자신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에 접하게 되는 엑스터시적 사건들 대부분은 기존의 세계관을 흔든다는 점에서 체험자에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물 밖으로 갑자기 뛰쳐나가게 된 개구리의 입장에 감정 이입해 주시길. 더불어 ‘충격’이라는 단어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아 거듭 양해를 구한다)

 

꿈에서 나는 커다랗고 하얀 구름 기둥을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까지 이어진 구름 기둥 속에는 나선형으로 꼬인, 끝도 모르게 길게 이어진 작은 돌계단이 있었다. 나는 땅도 아니고 하늘 끝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한창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올라가고 있는 구름 기둥 주변으로는 커다란 용(龍) 두 마리가 구름 기둥을 휘감고 교차하면서 위로 날아올랐다. 뭔가 범상치 않은 냄새가 물씬 나지 않는가. 용을 비롯해 구름 기둥, 돌계단을 보는 꿈은 그 이후로 다시는 없었기에 더더욱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이 꿈은 여러 가지 점에서 기묘했다. 엑스터시(ecstasy)를 ‘내가 내 밖에(eks) 서는(stasis) 경험’이라고 볼 때 이 꿈은 거기에 부합했다. 이상스럽게 들리겠지만 돌계단을 오르던 꿈속의 나는 여섯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참으로 결연한 태도로 그 구름 기둥을 올라가고 있었고, 동시에 이 계단을 끝까지 올라야 한다는 강력한 의무감 같은 걸 느꼈다. 두려움, 초조함, 공포 등의 감정은 없었고,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담담함과 강한 의지, 그리고 묘한 흥분이 가득했다. 구름 기둥을 감싸고 날아오르는 두 마리의 용 역시 전혀 이상하거나 무섭지 않았다. 용들도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잘 믿기지 않지만 꿈속에서 나는 여섯 살이 아닌 어른이었다. 나는 마치 어린아이라는 나를 벗어나(eks) 어른이 된 나로 우뚝 선(stasis) 것 같았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한참동안 충격에 빠졌다. 무엇보다 생전 본 적도 없는 구름 기둥과 용의 모습이 경이로웠고, 구름 기둥 속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나를 돌이켜 본다는 것 역시 참으로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꿈속의 나는 나인 것 같으면서도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꿈속의 나와 꿈을 기억하는 꿈밖의 나는 뭐가 다른 걸까? 잠에서 막 깨었을 때 나는 마치 꿈속에서 어른이 된 나와 어린 내가 겹쳐져,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혼동의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기묘하고 혼란스러운 감정 때문에 당시의 기억들이 대부분 사라졌어도, 이 꿈은 나의 가장 생생한 유년기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모자이크 맞추기

왜 그 꿈이 그 시점에 그렇게 갑작스럽게 주어졌고, 꿈의 숨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칼 융은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의 첫 문장에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고 선언한다. 그는 삶이 우리의 의지와 의도에 따라 통제되고 실현된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러면서 그는 꿈에 주목한다. 자서전 제목에 “꿈”이 들어가는 이유는 꿈을 통해 무의식이 의식적 자아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융의 통찰에 따르자면 우리 삶은 의식적 자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전모를 알지 못한 채 모자이크 퍼즐을 맞추는 것과도 같고, 꿈은 모자이크의 중요한 조각과 위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삶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데에 필수적이다.

 

내가 첫 꿈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차리게 된 것은 꿈을 꾼 지 무려 30여년이 지난 후다. 미국 유학 시절 나는 지도교수 덕분에 탄트라(tantra)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탄트라는 세간의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인간의 성(性) 에너지와 종교적 성(聖)스러움 사이의 근친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탄트라는 성적 에너지와 욕망의 부정을 종교성의 핵심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특히 탄트라의 여러 갈래 중 ‘쿤달리니(kundalini) 탄트라’ 전통에 따르면 우리 모두에게는 신이 심어준 쿤달리니 에너지가 성기와 항문 사이인 회음부에 자리한다. 이 에너지가 인간의 척추를 따라 위치한 차크라(chakra)를 차례로 각성시키고, 마지막으로 두정(頭頂)의 사하스라르(Sahasrar) 차크라에 이르게 되면 신과 인간의 재결합이 일어난다고 본다. 요컨대 신적 에너지는 성적 에너지이자 종교적 에너지이며, 우리 몸은 신적 에너지가 거하는, 즉 육화(肉化, embodiment)된 장소라는 게 탄트라의 주된 요지이다.

 

그런데 회음부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쿤달리니는 척추를 따라 펼쳐져 있는 슈슘나(Shusumna)와 이를 휘감고 있는 이다(Ida)와 핑갈라(Pingala)라는 세 통로를 통해 두정의 사하스라르 차크라로 상승한다. 나는 첫 꿈에서 보았던 하얀 기둥과 용 두 마리가 쿤달리니 에너지의 상승을 설명하는 도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걸 탄트라를 공부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계단을 오르는 나 자신은 쿤달리니 에너지에 다름 아니리라. 이 그림은 병원 구급차에 그려져 있는 헤르메스(Hermes)의 지팡이, 즉 두 마리의 뱀이 지팡이를 휘감고 올라가는 케뤼케리온(Kerikeion, 혹은 Caduceus)과도 유사하다. 다만 그 기둥을 내가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물론 내 꿈이 실제로 쿤달리니의 상승이나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의미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꿈이 어린 나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졌다는 사실과 한참이 지난 시점에야 비로소 그 꿈의 해석 가능성에 눈 뜨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 삶의 전모를 엿보게 하는 모자이크의 큰 조각 하나를 찾게 되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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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한겨레> 자료

 


내 속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

우리는 왜 밤마다 꿈을 꾸는지 아직 모른다.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억압된 욕망의 안전한 해소나 혹은 수면 활동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의 책략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일상생활로 지친 두뇌가 즐기는 유일한 여가 활동인지도 모른다. 혹은 장자(莊子)의 나비 꿈이 암시하듯 나비와 장자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차원에 드나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달나라까지 여행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서 밤마다 일어나는 꿈의 존재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큰 수수께끼이다.

 

여하튼 꿈은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심층심리학자들의 무의식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꿈을 통해 의식적 자아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이 우리 속에 있는 듯하다. 그 점에서 꿈이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가 나라는 존재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 줌으로써 나를 확장시키는 엑스터시적 사건이 아닐까. 견공(犬公)에게는 거듭 미안하지만, 개꿈은 빼 놓고.나의 첫 꿈은 결국 신비주의와 종교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낙착된 내 모습을 아주 오래 전에 미리 힐끗 보여준 듯싶다.

 

실제로 종교학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첫 꿈의 숨은 의미를 아직까지 모를 공산이 크다. 물론 내 꿈이 앞으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가능성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그 꿈이 예기치 않게 주어졌다는 사실과, 그 꿈의 경이로움과 이질적인 생경함은 앞으로도 나에게 변함이 없을 것이다. 개구리가 우물 밖의 그림을 일부를 슬며시 엿보게 되는 경험을 엑스터시라고 부른다면, 나의 첫 꿈은 분명 나에게 엑스터시이다.  

 

우리는 꿈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인간이 꿈의 신비와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는 시점이 도래할까. 알 수 없다. 다만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이 그러했고, 현대에 이르러 프로이트가 그러했듯이 꿈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통찰을 발견해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름 최선이 아닐까.

 

재미있는 꿈 얘기들을 댓글로 달아주시길. 자신의 얘기나 믿을만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면 더욱 좋겠다. 기꺼이 얘기 보따리들을 풀어놓으면, 이 코너가 훨씬 더 흥미로워 지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밤마다 꿈을 꾸지 않는가. 그 점에서 조현 기자의 꿈 댓글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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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영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문화관광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고교 때 체험한 신비체험을 규명하기 위해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서울대에서 종교학을,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를 공부한 뒤’로 서울대 HK(인문한국) 교수로 있다. 종교체험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 탐구중이다. 저서로 오강남 교수와 함께 나눈 얘기 모음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가 있다.
이메일 : lohe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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