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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두 장과 36년만에 만난 스님

청전 스님 2015. 06. 29
조회수 16275 추천수 0


김 두 장 


올 봄, 인도산 독감으로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별의별 생각이 일어났다. 이러다간 산행도 어려워질 게 아닌가? 이대로 늙은 골방 영감이 되는 게 아닌가? 몸을 추스르면서 한 달 정도의 산악 강행군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때 마침 군 전역을 하고 곧장 일본 시코쿠 섬 “88개 사찰 도보 순례”를 떠나겠다던 롭쌍군에게 연락이 와서 함께 길을 나서기로 했다.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 길”과 함께 세계적인 도보 종교순례 길로 이름나 있는 이 길은 일본 역사에 빛이 되는 홍법대사의 구도 고행 길로, 일본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지금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신청 중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부터 40일 정도의 걷기 훈련을 하여 몸을 만드는 목적이라서, 대중에게 알릴 일이 아닌지라 조용히 한국으로, 그리고 일단 부산에서 배편으로 후쿠오카까지 갔다. 대략 1250Km 의 일정을 따져보니 하루에 약 30Km 정도 걸으면 40 일 정도의 걸음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경비를 최대한 아끼려다 보니 짐이 보통이 아니었다. 배낭에 먹거리로 짬빠(미숫가루)부터 라닥산 살구와 건포도며 히말라야 꿀 등, 거기에 노숙도 한다며 매트리스와 옷가지 등을 챙기니 짐이 약 20Kg 정도나 되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난 ‘6학년’ 나이에 그 짐을 걷기에는 무리였던지, 8일째 오른쪽 발꿈치 힘줄이 땅겨 걸을 수가 없을 정도라 병원에 갔더니 무조건 좀 쉬란다. 그래도 쉬엄쉬엄 닷새를 더 걸으며 88개 사찰 중 26번인 금강정사까지 갔으니 보름 남짓 만에 순례를 포기한 셈이었다. 이건 내 산행 역사에 없는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중도 하차라니! 


* 순례 사흘째 부터 동행이 된 길동무: 교토에 산다는 유우끼와 프랑스 리용에 사는 삐에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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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 이치처럼,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을 수 없듯 예정보다 한 달 일찍 들어왔더니 남는 게 시간, ‘부처님 오신 날’까지 한국에서 지내다 인도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28년 만에 고국에서 보내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는 하나, 옛 도반이 터를 잡은 쥐붕알 만한 문경의 산중 한 암자에서 조용히 머물렀을 따름이었다. 어디 계시던 우리 부처님이 아니던가?    


  한국에서 지낼 때 거의 매 끼니마다에 밥상에는 김이 올라왔다. 요즘 참으로 흔하디흔한 게 김이라지만 예전에는 아끼고 아끼던 게 김이었다. 


 36년 전, 1979년 10월로 기억된다. 어찌된 인연으로 부안의 월명암에서 몇 스님들과 살게 되었다. 월인 노스님을 모시고 당시 선객으로 쟁쟁한 초삼스님, 종안스님, 원효스님과 함께 정진하였는데, 그 때는 풋중 시절, 초참납자라  당연히 밥 짓는 공양주 소임은 내 차지가 되었다. 


 먹을 게 귀한 때이기도 했지만 당시 암자 사정이 녹록치도 않아 아침은 언제나 멀건 죽이었다. 거기에 간장 한 종지와 김치 한 보시기, 그리고 생 김한 장이 전부였다. 이 김은 월인 노스님께서 손수 보관하시며 아침 공양 때만 한 장식 돌려가며 먹었는데 남은 김은 당신께서 따로 보관하셨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어느날 젊은 객승이 찾아 왔던 날도 마찬가지였는데 다음날 아침 공양 시간, 죽을 빙 돌리고는 김 한 장을 각자 죽 바릿대에 찢어 넣었다. 두어 숟갈이나 들었을까, 갑자기 월인 노스님께서 불호령을 내리셨다. 


 “아니, 저 놈 봐라! 저 놈! 대중이 한 장씩 먹는데 너만 왜 두 장이냐!” 


 영문도 모르고 노시님 존안만 처다 볼 수밖에. 알고 보니 어제 온 객승이 살며시 김 두 장을 자기 죽 발우에 찢어 넣는 것을 노스님이 알아차리신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죽에 넣어버린 걸 어떻게 하겠는가! 노스님께서 다시 김 다발을 돌리며 하시는 말씀이라니, 


“저 놈 복 감하지 않도록 우리도 오늘 아침엔 김 두 장이요, 혼자서만 대중 먹는 걸 더 먹는다면 수행자로써 얼마나 부끄럽고 복 감할 일인가. 자 한 장씩 더 찢어 넣읍시다.” 

 그 날 아침에는 김 두 장의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공양 지어 올리던 그 시절도 모두 짧은 꿈이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입적하신지 오래, 오직 한 스님만 살아 계시는데 바로 종안 노스님이다. 송광사에서 멀지 않은 태안사의 한 암자에서 일종식을 하시며 정진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러 찾아뵈었다.

 

*35년만에 만난 종안 노스님과 얘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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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 하나 굽지 않았으나 세수는 아흔 둘, 아직도 손수 끼니를 해 드시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이런 것이 청정 비구의 수행력 아닌가!  삼십오륙 년 전에 헤어졌는데 과연 날 알아나 보실까? 기우에 불과했다. 바로 알아보시며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외국 나가 공부한다더니 나를 찾아왔구먼유?” 

 "이 얼마만인가요!”


 말씀을 듣자하니 이제는 나이도 들고하여 지난 동안거를 마지막으로 죽음을 준비한다며 15일간 단식을 하셨는데 그래도 안 죽어 이리 또 하루 한 끼씩 챙겨 드시며 정진하신다고. 서둘러 가느라 까만 맹 김 한 톳도 챙기지 못한 채 빈손으로 갔지만 예전에 선방 해제 날, 당신이 좋아하시던 뭔가를 챙겨 들고 찾아 갔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공주가 고향이라 지금도 말투는 변함없는 충청도 사투리의 우리 종안 노스님, 스님의 건강을 불단 앞에 빌어봅니다. 아 무상한 세월, 내 또 다시 뵐 날이 올까?  먼 훗날 노스님께서 입적 하신 후, 당신 지리산 묘향대 토굴 7년째에 일어난 눈물로 가슴이 져미는 

사건(?)을 글로 써 볼까 한다.


 <<35년만에 만난 종안 노스님과 얘기가 많아졌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 땅에서는 귀하지 않게 된 김이라지만 인도에서는 금(金)이다. 무슨 좋은 인연을 맺었는지, 때 되면 여수에서 새 김을 꼭 챙겨 보내주는 분도 있으니, 이 또한 복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히말라야 설산 속의 아침 공양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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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광주 대건신학대에 다니다 송광사 방장 구산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88년 인도로 떠나 히말라야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매년 여름 히말라야 최고 오지인 라다크를 찾아 고립된 티베트 스님들과 오지 주민들에게 약과 생필품을 보시하고 있다. 어느 산악인보다 히말라야를 많이 누빈 히말라야 도인.
이메일 : cheongjeon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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