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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 대들 수 있는 유일한 제자

이인우 2015.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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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명장면] 자로, 용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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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路) 曰 今之成人者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 왈 금지성인자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 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자로가 말하였다.“지금 세상에 완성된 인간은 이익 앞에서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 속에서는 목숨 바칠 것을 각오합니다. 오래 전 약속도 평생 잊지 않으니 이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헌문> 13장
 
 
 1. 천축여(天祝予)! 
 이름이 중유(仲由)인 자로(子路)는 명실상부한 공자의 수제자였다. 공자보다 9살 아래인 그는 공문의 맏형격으로서 장차 공자 사단을 이끌어갈 인물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스승 공자가 죽기 전 해인 기원전 480년 63살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자로가 위나라에서 내란에 휘말려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끊는구나!(天祝予)”라며 절통해 하셨다. 자로의 시체가 젓으로 담겨졌다는 참담한 전언에 공자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시고 집안에 있는 모든 젓갈을 내다 버리도록 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숙제 하나를 남겼다. 혹자는 그의 죽음을 ‘진정한 의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용감한 죽음’이라고 칭송했고, 혹자는 ‘만용의 극치가 낳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평가절하하였다. 자로의 죽음이 어떠했길래 이런 상반된 평가가 후세에까지 이어진 것일까?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나, 이생은 ‘공문의 영원한 사형(師兄)’을 추모함에 앞서 그 진상을 먼저 세상에 전하여 진정한 용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자로의 최후①
 자로는 스승 공자를 노나라로 귀국 시킨 뒤 다시 위나라에 돌아와 위나라 집정대신인 공회의 가재(家宰)로 일하고 있었다. 위나라 공씨 집안은 나라 제일의 명문가로서 수장인 공회는 임금을 쥐락펴락하는 실질적인 집권자였다. 공자는 위나라에 있을 때 공회의 아버지 공어(공숙문자)와 친분을 맺었는데, 그 인연으로 자로가 이 집에 취직한 것이다. 자로가 공씨 집안에서 맡은 일은 외국 방문객들을 그 나라와 신분에 맞는 예법으로 응대하는 일이었다. 노나라가 최근 제나라와 강화조약을 맺고 상호 관계개선을 이루었는데, 국내에서는 염유와 자공이, 밖에서는 자로와 같은 공문의 사람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씨 사저에서 전령을 보내와 급보를 전했다.
 “나으리, 무장한 일단의 무리가 난입하여 집정대신을 납치하려 합니다!”
 변란의 전말은 이러했다.
 공회의 어머니 공백희(孔伯姬)는 위령공의 딸이다. 그녀의 남동생 괴외는 세자 시절 계모인 남자(南子) 세력과 권력투쟁을 벌이다 망명했다. 지금 위나라 임금인 출공 첩은 이 괴외의 아들이다. 괴외를 축출한 남자 세력은 위령공이 죽자 출공을 옹립했고, 이후 두 부자는 12년 이상을 임금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반목하는 사이가 되었다. 괴외의 누이이자 임금의 고모인 백희는 동생과 조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마침내 동생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 백희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백희는 남편 공어가 죽은 뒤 혼량부라는 이름의 젊고 잘 생긴 가복(家僕)과 은밀한 사이가 되었고, 이 가복에게 대부(大夫)의 신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임금 자리에 혈안이 되어있던 동생과 손잡기로 한 것이다. 기회를 엿보던 백희는 혼량부를 시켜 동생 괴외를 밀입국시켜놓았다가 바로 이날 밤 야음을 틈타 군사를 동원해 조카 출공을 내쫓고 동생 괴외를 등극시키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백희와 괴외는 정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정대신인 공회의 추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두 사람은 각자에게 아들이자 조카이기도한 공회를 인질로 잡기 위해 공회의 집에 난입했던 것이다.②
 전후 사정을 파악한 자로는 정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변 장소인 공회의 사저 안에 있는 대(臺)로 달려갔다. 이때 마침 나는 자공의 심부름으로 곡부에서 위나라 수도인 조가(朝歌)에 와 있었기에 자로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자로를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자로의 무모한 선택을 말리고 싶었다.
 “자로님, 사정을 들어보니 이것은 한갓 집안 싸움입니다. 가신들이 참견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개입하지 마소서!”
 그러나 자로는 말리는 나를 보고 한번 빙긋이 웃더니 “대인(大人)은 천하를 근심하고, 사(士)는 주군을 염려한다. 내가 몰랐으면 모르되, 알게 된 이상 어찌 집안일이라고 해서 주인을 위험 속에 방치하겠는가? 지금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우리 주군을 지키겠는가?”
 “하지만, 아비와 아들이 권력을 놓고 추하게 다투고 있고, 어미는 간부(奸夫)의 출세를 위해 아들을 겁박하고 있으니 패륜의 현장이지 공사(公事)가 아닙니다!”
 “저간의 사정은 주군이 직접 신하들에게 해명할 것이다. 그런데 그 주군이 지금 붙잡힌 채 목숨마저 위태롭다지 않은가!”
 공회의 집에 다다랐을 때, 어둠 저편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키가 작달막한 자고(子羔)였다. 이름이 고시(高柴)인 자고는 공문의 일원으로, 자로와는 형님, 아우 하는 막역한 사이였다. 
 “아이고, 중유 형님! 여긴 왜 오셨습니까? 안에는 지금 난리통이니 빨리 달아납시다!”
 “아니다. 나는 들어가서 주군이 잘 계신지 봐야겠다!”
 “무사들이 지키고 있어서 들어가셔도 별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저 환난에 뛰어드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격입니다. 게다가 우린 노나라 사람인데 위나라 사람들의 다툼에 끼어들 이유도 없고요!”
 자로가 횃불빛으로 하늘이 훤한 담 안쪽을 응시하며 차분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사람의 녹(祿)을 먹는 선비는 그 사람의 환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③
 자로가 자고의 만류를 뿌리치고 현장에 이르렀을 때 가신 공손감이 닫힌 문 저쪽에 있었다. 자로가 공손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자 공손감이 말했다.
 “그냥 돌아가십시오.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말라는 대부인의 명을 따라야 하니 중유께서는 그냥 돌아가십시오.”
 “그대는 명령을 받아서 지금 그 문을 지키고 있지만, 나는 어떤 명도 받은 바 없소이다. 나는 공씨의 녹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니 반드시 들어가야겠소!”
 이때 마침 궁성으로 가는 전령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어지러운 상황을 틈 타 자로는 재빨리 문안으로 들어갔다. 대 앞의 광장은 쿠데타 세력에게 소집된 가신들과 가복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고 겁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자로는 마당에 들어서자 내가 제지할 틈도 없이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공회가 인질로 잡혀있는 대를 향해 외쳤다.
 “태자께서는 무엇 때문에 조카이자 집정이신 분을 무기로 겁박하시는 겁니까?”
 그 소리가 자로의 목소리라는 걸 안 백희는 사람을 시켜 자로를 내쫓게 하였다.
 “이 보시게, 중유! 자네 미쳤나? 곧 사태가 끝날 테니 제발 좀 가만있게나!”
 팔을 잡아끄는 동료 가재를 밀쳐낸 자로가 또 외쳤다.
 “태자께서 주군을 죽이면 태자 또한 누군가에게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외치고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주인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그 녹을 먹은 자들이 가만히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숫자가 더 많으니 횃불을 빼앗아 불을 지르면 저들이 주군을 풀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자로가 마당의 군중들에게 불을 지를 것을 선동하자, 급해진 괴외는 호위 무사 2명에게 즉각 자로를 처단하라고 명령했다.
 자로는 두 명의 무사에 맞서 용감히 몇 합을 겨루었다. 그러나 상대는 젊고 강인한 2명의 전문 살수(殺手)들이고, 자로는 단신의 노인이었다. 2대1의 싸움에서 지친 자로의 무릎이 잠깐 흔들리는 틈을 노려 창이 자로의 얼굴을 스쳐갔다. 붉은 한줄기 선혈과 함께 관끈이 끊어져 쓰고 있던 관(冠)이 기울어졌다. 자로가 중심을 잡으려는 순간 또다른 무사의 칼이 자로의 한쪽 어깨를 베었다. 피가 하늘로 솟구치며 자로는 쓰러졌다. 고꾸라졌던 자로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칼을 땅에 꽂은 채 피묻은 손으로 갓끈을 겨우 고쳐 매며 말했다.
 “군자는 죽을 때도 관을 벗지 않는 법…”④
 무사들이 자로의 의연한 모습에 잠시 절명(絶命)을 망설일  때였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 “자로는 임금의 첩자다!”라고 외치며 뛰어나와 차고 있던 짧은 칼로 자로를 내리쳤다. 그것을 신호로 눈치를 살피고 있던 사람들이 앞다퉈 달려들어 자로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자로를 죽여라!”, “자로는 배신자다!”라고 외치는 광기 어린 소음 속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창칼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자로는 처참하게 죽어갔다.⑤
 그들은 용감한 자로가 주군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음을 잘 알면서도 자로가 쓰러지자 재빨리 승자의 편에 섰다. 광장은 자로의 처단에 가담해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의 핏빛 탐욕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3. 자로의 용(勇)
 자로는 본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로는 성정이 굳세고 때로는 거칠기도 하였으나(<선진> 12,17장), 그 마음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일러주면 오히려 기뻐하였고⑥,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행여 실천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생길까봐 추가로 또다른 좋은 말을 듣는 것을 사양하는 그런 위인(<공야장> 13장)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솔직담백했으며, 한번 결심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다. 길에서 가난한 병든 노인을 보고 고향에 두고온 부모 생각이 나자, 그 길로 바로 식량을 사서 백리길을 달려가 부모님에게 직접 밥을 지어드린 일이 있을 정도였다. 후배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수레와 말, 옷을 나누어 주어도 아까운 줄 몰랐고, 낡고 보잘 것 없는 옷을 입고 호화로운 사람들 속에 나란히 서 있어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공자는 그런 자로를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냄이 없으니 어찌 선하지 않으랴!-<자한> 26장)”라고 하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기개와 의리를 중시했으며, 신의를 지켜야 할 일에는 타협이 없었다. 그런 자로를 공자는 높이 평가했다. “한마디 말로서 옥사를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중유이다. 자로는 한번 승낙하면 이를 뒤로 미루는 법이 없다.”(<안연> 12장) 공자가 다른 학동들의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로 꾸중을 듣고 교정을 받는 어리숙한 역할을 자로에게 맡기는 바람에 어린 제자들의 놀림을 받았지만, 스승 공자에게 대놓고 따지고 심지어 불같이 화를 내며 대들 수 있는 유일한 제자이기도 했다.(<옹야> 26장) 사람들이 그런 자로를 무지무례한 사람으로 낮춰보는 경향이 있는 것을 안 공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자로는 입실(入室)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당(堂)에 올라 있는 사람이다. 그대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선진> 14장 
 그는 무엇보다 정의를 사랑했다.
 노나라에 이웃한 소주라는 나라에서 대부 한 사람이 땅을 바치고 노나라에 망명하고자 했다.
 그는 망명 허락의 조건으로 자로의 보증을 요구했다. 자로가 자기를 지켜준다고 하면 땅을 바치고 망명하겠노라고. 나라보다 자로의 말을 더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실권자인 계강자가 염유를 시켜 자로에게 그의 보증을 서주도록 했다. 그러나 자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계강자가 화를 냈다. “천승지국인 우리 노나라의 약속도 믿지 못하겠다면서 그대의 말만 믿으려는 사람도 있는데 자로는 도대체 뭐가 그리 못마땅하다는 것인가!” 
 자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혹여 언젠가 우리 노나라가 소주와 싸울 일이 생기면 저는 이유를 묻지 않고 출전해 싸우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 대부는 자기 나라를 배신한 불충한 자입니다. 내가 그런 자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내가 그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증하는 꼴입니다. 저는 차마 그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⑦
 자로는 노나라 변 땅 출신이다. 변 땅은 원주민인 야인 지역이다. 야인들은 문화가 낮은 대신 매우 용맹했다. 자로 이전에는 이 지방 출신으로 변장자라는 사람이 무용으로 유명했다. 야성(野性)의 기질을 물려받은 자로는 일찌기 집을 떠나 유협(游俠)이 되었다. 수탉의 깃을 꽂은 관을 쓰고 돼지가죽으로 싼 칼을 차고 저자거리의 무뢰한 노릇도 하였다.⑧ 공자는 자로의 용(勇)을 대견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유는 나보다 용감하지만, 지재(智材)가 부족하다”며 아쉬워하였다. 공자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자로가 진지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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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라면 용기를 으뜸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의를 으뜸으로 삼는다. 군자가 용맹하면서 의가 없으면 반도(叛徒)가 되기 쉽고,  소인이 용맹하면서 의가 없으면 도적이 되기 쉽다.
 유야. 내가 도를 찾아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려 한다면, 그런 나를 믿고 따라올 사람은 바로 너이다. -<공야장> 6장
 그러므로 유야, 너는 명심하거라.
 맨 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자와는 더불어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하려고 한다면 나는 반드시 매사에 신중하며, 한번 일을 도모하면 반드시 성공시키고자 하는 자와 더불어 할 것이다.-<술이> 10장
 
 그러나 자로는 다른 가르침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다만 스승이 멀리 떠나실 때 함께 할 사람으로 자신을 꼽았다는 사실만이 마냥 기쁘기만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4. 그대가 진정 정의를 원한다면
 공자는 위나라에 계실 때부터 골육상잔의 기운을 느끼고 위나라 공실의 내분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공자는 출공 첩이 애초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받지 않는 것이 순리였다는 입장이었다. 순리를 거스른 이상, 이 부자다툼에서 의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내란이 벌어지자, 공자는 임금 자리의 향배보다 자로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던 것이다.
 “고시는 아마 살아올 것이지만 자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⑨
 자로는 스승이 짐작한 대로 끝내 죽음을 피해가지 않았다. 역시 사람들의 말대로 자로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을까?
 자로를 죽게 한 태자 괴외(위장공)는 원하던 임금 자리를 얻었고, 공회의 어머니 백희는 젊은 애인이 귀족이 된다는 사실만이 기뻤고, 자로가 목숨 바쳐 구하고자 한 공회는 자로의 죽음을 일개 가신의 만용으로 치부한 채 여전히 집정 자리에 있었다. 세상이 바뀌긴 했으나, 바뀐 것은 임금의 얼굴뿐이었다. 자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던졌단 말인가?
 훗날 맹자는 “얼핏 생각하면 죽음을 불사해야 할 것 같지만, 깊이 살펴보면 결코 죽어서는 안될 일에 죽음을 바치는 것은 용기를 상하게(傷勇) 하는 것이다.”⑩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치 자로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처럼 들렸다. 차분히 시간을 갖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자로의 죽음은 ‘용기의 본질을 해쳤다’는 맹자의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는 당사자 자로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자로는 자신의 죽음이 만용의 극치라는 비난을 받을 줄 몰랐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 처참한 죽음의 현장에서 관을 고쳐쓴 뒤 한 손으로는 쏟아지는 어깨의 피를 막고, 한 손으로는 다시 싸우기 위해 칼을 짚고 분연히 일어서던 자로의 그 결연한 눈빛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자로님은 그 순간에도 확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정의는 그것이 위협받는 순간순간마다 실현되기를 갈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 갈구의 결과가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칼날이 무수히 쏟아지는 그 시간에 자로는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것은 저 유랑의 시절, 스승이 자신에게 시켜 은자들에게 전한 말씀이었다. 그 목소리에 실린 공자의 말은 마지막 불꽃처럼 아스라히 꺼져가는 자로의 생명 속에서 마침내 온전한 자로 자신의 말로 바뀌어 있었다.
 
 선비가 세상을 위해 출사하지 않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사람 사이의 예를 없앴을 수 없듯이, 군자와 나라 사이의 정의 또한 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선비가 일신의 도리만을 내세우는 것은 대륜(大倫)을 어지럽히는 짓이다.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는 것은 정의를 행하려 함일 뿐이지,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미자> 7장
 
 5. 제자(弟子)
  자로(子路)는 안연과 더불어 공자가 가장 믿고 사랑한 제자였다. 공자에게 서른 살 차이의 안연이 자식 같았다면, 아홉 살 아래의 자로는 형제와 같았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공자의 제(弟)와 자(子)였다. 제자는 인생의 동반이자 학문의 도반이었으니, 그 말의 본의는 어쩌면 이 두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여겨도 무방하리라.
 두 사람은 모두 공자보다 앞서 죽었다. 잇따른 두 사람의 죽음은 늙은 공자에게 하늘을 원망할 만큼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안연이 죽자,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天喪予)!’ 라며 통곡했고, 자로가 죽자, ‘아, 하늘이 나를 단절시키는구나(天祝予)!’ 라며 절통해 했다. 그리고 공자도 죽었다. 이 세 사람의 잇딴 죽음에는 무엇인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서수획린(西狩獲麟)
 
  기원전 481년 노애공 14년, 안연이 죽고 1년 뒤이며 자로가 죽기 1년 전인 그 해 노나라 곡부 서쪽 들판에서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 잡혀 죽었다. 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무척 애통해 했다는 기록이 사서에 남겨졌다. 그리고 그 2년 뒤에 공자도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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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서거에 앞선 안연과 자로의 죽음 사이에 기린이 잡혀 죽었다는 이 기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기린은 왕자(王者)의 출현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 후대 사람들은 《춘추》를 풀이하면서 기린의 출몰을 왕자의 출현이자 왕자의 사라짐을 하늘이 예고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것이 ‘소왕(素王)’ 공자의 출생과 서거를 의미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공자의 가장 어린 제자들 중 한 사람인 유약(有若)은 공자를 직접 보지 못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공자를 이렇게 묘사했다. 
 “땅위의 짐승 가운데는 기린(麒麟), 새의 무리 중에는 봉황(鳳凰), 구릉 가운데는 태산(泰山), 물 중에는 하해(河海). 사람 중에는 선생님이 이와 같으시다. 세상에 인류가 생겨난 이래 공자와 같이 성대한 분은 계시지 않다(自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⑪
 기린의 고사는 아마도 실제 사건이 아닐 것이다. 후대의 유가들이 지성 공자를 위해 지어바친 신극(神劇)의 복선이리라. 그럼에도 이들 사제(師弟)의 잇따른 죽음과 어울린 ‘서수획린’의 고사는 그 어떤 역사적 사실보다 큰 울림을 간직한 채 전승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공자라는 사람과 그 추종자들이 보여준 불가사의한 선의(善意)의 위대함이다.  
 어떤 사가(史家)는 이렇게 기록했다.
 
 애공 14년 노나라 곡부 서쪽 들판에서 기린이 잡혔다.
 공자가 말했다. "누구를 위하여 왔는가? 누가 되려 왔는가?"(孔子曰 孰爲爲來哉 孰爲來哉)
 소매를 돌려서 얼굴을 닦고 흐르는 눈물을 옷깃으로 닦았다.(反袂拭面 涕霑袍) 
 제자 안연이 죽자 선생님이 말했다. "아!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제자 자로가 죽자 선생님이 말했다. "아! 하늘이 나를 단절시키는구나!"(子路死 子曰 噫 天祝予)
 서쪽 사냥터에서 기린이 잡히자 공자가 말했다. "나의 도가 다했구나!"(西狩獲麟 孔子曰 吾道窮也)⑫ 

 

 안연과 자로의 죽음은 후세의 유가들에게 공문의 정신과 사단(社團)이 사실상 동시에 단절된 안타까운 사건으로 상징되었으니, 역사가는 기린의 죽음과 두 사람의 죽음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공자의 왕언(王言)이 세상에서 실현되지 못한 까닭을 비통한 마음으로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만들어진 사실(史實)은 다시 신화로 부활한다. 신극 속에서 기린과 안연과 자로와 공자의 죽음은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순장(殉葬)하는 형식으로 승화되고 있다. 서로를 감싸안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이 어지러운 세상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행진을 계속하는 선의(善意)의 사도(使徒)들은 그렇게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있게 된 것이다.
 
 6. 잃어버린 무덤
 자로가 죽은 뒤 반정 성공의 표징처럼 되어버린 그의 살점들은 논공행상을 기다리는 동안 썩어문드러지지 않도록 그것을 바친 사람의 이름이 적힌 목찰에 꿰어져 젓으로 담겨졌다. 나는 분노와 슬픔을 감추고 자로의 남은 유체만이라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자로를 흠모한 가신들의 도움을 받아 자로의 피묻은 관만은 몰래 빼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곧 발각되어 관련자들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나는 관을 가지고 노나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너무나 죄송했지만, 관을 가지고 있다가 들켜 관을 빼앗기고 노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 보다는 공자께 자로가 죽게 된 진상을 알리는 사명이 더욱 중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위나라 수도 조가의 성밖 어느 둔덕에 몰래 자로의 관을 묻었다. 관과 함께 의사지관(義士之冠)이라 쓴 목찰도 넣었고, 나중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지표도 남겼다. 자로의 ‘관묘’에 재배하면서 나는 반드시 돌아와 고향 변 땅에 다시 묻어주겠노라 굳게 맹세했다. 
 그러나 나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공자께서 돌아가시고 제자들의 3년 심상이 끝난 뒤 나는 조가의 언덕을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정변이 연속되면서 위나라 수도 조가 곳곳에는 새로운 성벽들이 들어서 있었다. 관묘도 표지도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해가 뉘엇뉘엇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갈 길을 가야만 했으나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부모가 죽고 없는 텅빈 집에 돌아온 고아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상실감에 휩싸인 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7. 부기(附記)
 자로의 피묻은 살점을 차지하기 위해 악귀가 된 인간들이 피투성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동안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 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자로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 조가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자로의 살점을 바쳐 얻은 포상을 자랑하는 사람 치고 끝이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먼 지방으로 가서 이름을 바꾸고 살았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포상금을 밑천삼아 성실하게 일하여 집안을 일으켰다.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알며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사람의 도리로써 자식을 가르쳤다. 그 후손 중에 공자의 도를 따르는 지조 높은 선비와 청렴한 관리들이 나왔다. 자로의 용기를 숭모하며 나라와 정의를 위해 헌신한 무사와 군인들이 배출되었다.
 
 
 
** 【이인우의 논어 명장면】은 제 36 회 <자로, 용기에 대하여>를 끝으로 일단 연재를 마칠까 합니다. 아직 쓸 이야기가 좀 더 남아 있으나, 재충전하여 저 자신이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중단합니다.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시기가 좀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쓰여진 이야기들은 조만간 책으로 엮어질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다시 읽어주신다면 또한 고맙겠습니다. 지난 3년간 애독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① 자로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 《좌전》 《사기》 등에 보이는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부 디테일한 묘사와 자로의 죽음 현장 및 이후 전개 등은 지은이의 각색이다.
   ②《좌전》 애공 15년
 ③ 食焉 不避其難, 상동
 ④ 君子死 冠不免, 상동
 ⑤ 일본 소설가 나카지마 아쓰시(1909~1941)는 《제자》에서 군중들이 자로를 죽이는데 합세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도 자로의 유체가 젓갈로 담겨진데서 착안했을 것이다.  우연인지 지은이도 같은 생각을 했다. 
 ⑥ 《맹자》 <공손추 상>
 ⑦ 《좌전》 애공 14년
 ⑧ 《사기》 <중니제자열전> 
 ⑨ 孔子聞衛亂 曰 柴也其來 由也死矣, 《좌전》 애공 15년 
 ⑩ 《맹자》 <이루 하>
 ⑪ 《맹자》 <공손추 상> 
 ⑫ 《공양전》 애공 14년
 
 
 <헌문> 13장
 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가 완성된 인간에 대해 물으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장무중의 지혜, 공작의 무욕, 변장자의 용기, 염구의 재예에를 겸비한데다가 예와 악으로 문채를 낸다면,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만하다.” 그러자 자로가 말하였다. “지금 세상에 완성된 인간은 그럴 수준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잇속 앞에서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 속에서는 목숨 바칠 것을 각오하며, 오래 전 약속도 평생 잊지 않고자 한다면 또한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sze-lu asked what constituted a COMPLETE man. The Master said, “Suppose a man with the knowledge of Tsang Wu-chung, the freedom from covetousness of Kung-ch‘o, the bravery of Chwang of Pien, and the varied talents of Zan Ch’iu; add to these the accomplishments of the rules of propriety and music:-- such a one might be reckoned a COMPLETE man.” He then added, “But what is the necessity for a complete man of the present day to have all these things? The man, who in the view of gain, thinks of righteousness; who in the view of danger is prepared to give up his life; and who does not forget an old agreement however far back it extends:-- such a man may be reckoned a COMPLETE man.”
 
 <선진> 12장
 閔子 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有 子貢 侃侃如也 子樂 若由也 不得其死然이로다
 민자건은 (선생님을) 곁에서 모실 때에 정중했고, 자로는 뻣뻣했고, 염유와 자공은 기분을 잘 맞추었으니, 선생님께서도 즐거워 하시며 말씀하셨다. “허허, 유(자로)와 같다면 어떻게 죽을지 모를 거야!”
 The disciple Min was standing by his side, looking bland and precise; Tsze-lu, looking bold and soldierly; Zan Yu and Tsze-kung, with a free and straightforward manner. The Master was pleased. He said, “Yu, there!-- he will not die a natural death.” 
 
 <선진> 17장 
 柴也 愚 參也 魯 師也 ? 由也 ? 
 자고는 어리숙하고, 증참은 노둔하고, 자장은 치우치고, 자로는 거칠다.
 Ch‘ai is simple. Shan is dull. Shih is specious. Yu is coarse. 
 
 <공야장> 13장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는 가르침을 미처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때, (좋은 가르침을) 더 듣게 될까봐 겁을 내었다.
 When Tsze-lu heard anything, if he had not yet succeeded in carrying it into practice, he was only afraid lest he should hear something else. 
 
 <자한> 26장
 子曰 衣?縕袍 與衣狐?者 立而不恥者 其由也與 不?不求 何用不藏 子路終身誦之 子曰 是道也 何足以藏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누더기 베옷을 입고 여우와 수달 가죽 옷을 입은 사람 옆에 서 있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사람이 바로 자로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탐내지 않고, 가지려고도 하지 않으니 어찌 착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자로가 (공자의 칭찬이 기뻐서) 이 시를 늘 읊고 다니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외는 것도 좋지만, 어찌 그것만으로 되는 일이겠느냐?”
 The Master said, “Dressed himself in a tattered robe quilted with hemp, yet standing by the side of men dressed in furs, and not ashamed;-- ah! it is Yu who is equal to this! ‘He dislikes none, he covets nothing;-- what can he do but what is good!’” Tsze-lu kept continually repeating these words of the ode, when the Master said, “Those things are by no means sufficient to constitute (perfect) excellence.” 
 
 <안연> 12장
 子曰 片言 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마디 말로 옥사를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유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하고 미루는 법이 없었다.
 The Master said, “Ah! it is Yu, who could with half a word settle litigations!” Tsze-lu never slept over a promise. 
 
 <옹야> 26장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선생님이 남자를 만나시자, 자로가 크게 화를 냈다. 선생님이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잘못한 바가 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늘 버리시리라!”
 The Master having visited Nan-tsze, Tsze-lu was displeased, on which the Master swore, saying, “Wherein I have done improperly, may Heaven reject me, may Heaven reject me!”
 
 <선진> 14장
 子曰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 不敬子路 子曰 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의 비파 소리를 어째서 내 집 문안에서 듣고 있을까?(자로의 비파 실력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문인들이 자로를 공경하지 않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당에 오른 사람이다.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다.”
 The Master said, “What has the lute of Yu to do in my door?” The other disciples began not to respect Tsze-lu. The Master said, “Yu has ascended to the hall, though he has not yet passed into the inner apartments.”
 
 <미자> 7장
 (…)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선비가 세상을 위해 출사하지 않는 것은 정의가 없는 것이다. 사람 사는 데서 장유의 예절을 없앨 수 없듯이 군자와 나라 사이의 의를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 선비가 일신의 도리만을 내세워 저만 깨끗하고자 대륜을 어지럽히는 짓이다.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그 정의를 행하려 함일 뿐, 정의가 실현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쯤은 이미 알고 있다.”
 “Not to take office is not righteous. If the relations between old and young may not be neglected, how is it that he sets aside the duties that should be observed between sovereign and minister? Wishing to maintain his personal purity, he allows that great relation to come to confusion. A superior man takes office, and performs the righteous duties belonging to it. As to the failure of right principles to make progress, he is aware of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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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
한겨레신문에서 20여년간 여러 부서를 돌며 기자 생활을 했으나 그리 유능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현재 한겨레라이프 편집장이다. 만 50살에 문고리 더듬듯 지천명의 뜻을 새기다가 내친 김에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공부도 일천하고 생각도 앝은데 마음만 앞서서 덜컥 소설이란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공자 이야기를 쓰게 됐다. 좋은 뜻으로 저지른 일이니 부족하더라도 너그러이 보아주시길.
이메일 :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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