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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종교도 기복신앙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이길우 2016. 09. 02
조회수 8317 추천수 0
티베트망명정부 현지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
“내가 비구라서 한국 못 가나요?” 정치적 현실 에둘러 농담
”하나님 사랑·연민 실천하듯 인과와 업 따라 바른 삶 살아야”

00503818_20160901.JPG »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29일 인도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서 열린 아시안 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이날 용수 보살의 ‘보만론’을 주제로 공성 보리심에 대해 설명했다.그의 첫마디는 놀라웠다. “내가 비구라서 못 가나요?” 다들 웃었다. 의아해하며 웃었다. 무슨 뜻인지 선뜻 와 닿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정신 지도자의 농담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라이 라마(81)는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현실을 역설적인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 중국의 압력과 한국 정부의 입국 불허로 한국을 찾지 못하는 현실을 농담으로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지난 30일 오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 궁’의 접견실에서 만난 달라이 라마는 “도대체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까?”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금도 오후불식(午後不食)의 소식(少食)과 하루 4시간 취침에 4시간 수행 원칙을 지키며 티베트 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하고 있다. 티베트 독립을 위한 비폭력 투쟁으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티베트 난민들뿐 아니라 전세계인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한국 불교계는 그의 방한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정부가 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아 아직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국가에 경제적 제재를 하는 등 압박을 가해왔다.

00503820_20160901.JPG » 달라이 라마가 지난 30일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 궁’ 접견실에서 방한추진위원회 관계자와 한국 기자단을 만나 환담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회견은 한국의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위원회’(공동대표 금강·진옥 스님)가 주선했다. 3년 전에 발족한 방한추진위는 그동안 승려와 불자, 일반시민 등 13만여명으로부터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찬성하는 서명을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은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방한추진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방한 가능성에 대해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기 전엔 어려울 듯하다”며 “내년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가게 되면 좋아하는 김치를 많이 먹고 싶다”면서도 “한국에 가고 못 가고는 정치적인 부분이고, 정치는 소수의 사람 손에 달려 있다”는 말로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중국과 한국 정부의 태도를 꼬집었다. 지난 2011년 몽골을 방문한 뒤 일본을 가려던 달라이 라마가 인천공항에 내려 환승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자, 아시아나항공사가 그의 표를 해약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한해 두차례씩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티베트의 법왕인 달라이 라마는 2001년 자신의 정치적 권한 가운데 절반을 이양해 투표로 총리를 선출하도록 했다. 2011년에는 정치적 권한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지금은 종교적인 업무만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입고 있는 가사는 2600년 전 부처가 입은 옷과 같으나, 나의 두뇌는 매우 젊은 마인드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는 ‘배움과 수행의 종교’로서의 불교를 강조하며, “불자 대부분이 전통에 따라 독송과 예불을 하고 있지만 배움과 수행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분석과 관찰을 통해 수행해야만 불교가 앞으로도 수천년을 이어갈 수 있다”며 “이제는 종교도 무조건적인 기복신앙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불경, 특히 반야심경의 공성(空性·내가 없음을 인식)과 보리심(菩提心·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은 스승을 통해 듣고, 사유가 깊어지면 수행해보길 바란다”며 “수행을 통해 경험, 체험이 깊어지면 확신이 생기고 삶 자체가 깊어지고 삶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00503819_20160901.JPG »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 궁’ 접견실에서 방한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인 금강(왼쪽)·진옥(가운데) 스님 등과 환담하고 있다.현실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을 향한 행복의 메시지도 주었다. “물질적 행복은 우리의 오감에 달렸고, 마음의 행복은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마음의 행불행은 육체의 행불행에 비해 크고 중요하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과 의지가 굳건하다면 이겨낼 수 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종교는 여전히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주가 있는 종교가 있다. 목적은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나? 사랑과 연민 때문이다. 하나님이 분노로 세상을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그분의 성품인 연민을 실천해야 한다. 불교는 창조주가 없는 종교이기에 스스로의 행동이 만든 인과와 업에 따라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날 방한추진위는 달라이 라마에게 방한 초청장을 전달하고, 팔만대장경 반야심경 목경판을 선물했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해인사를 방문해 팔만대장경에 참배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밝혔다.

한편 다람살라에서 30년째 수행하고 있는 청전 스님은 기자들과 만나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번번이 무산되는 이유는 조계종 지도자들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불교가 정치권에 휘둘려 교세가 크게 약화됐다”고 비판했다.

다람살라(인도)/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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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종교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이메일 :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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