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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 순간에도 신앙을 지킨 성녀

조현 2011. 12. 08
조회수 88863 추천수 1

[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
 1.버림: 탐욕의 전차에 맞선 자발적 가난
 2.공동체: 함께 먹고 기도하고 일한다
 3.순교: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믿음
 4.기적: 신앙의 불꽃을 피우는 신비
 5.순명: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체칠리아 성녀 석상과 신부-.jpg

로마 카타콤베에서 염동규 신부가 체칠리아 성녀의 석상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군중들의 함성에 둘러싸여 대결을 벌이던 검투사의 살기 띤 눈빛과 맹수의 포효, 그리고 굶주린 맹수에게 던져진 그리스도인들의 비명이 들리던 콜로세움(원형경기장). 이 콜로세움과 성베드로성당(바티칸 교황청)이 있는 로마 시내에서 성 밖을 벗어나야 ‘로마의 가톨릭 3대 순례지’ 가운데 나머지 하나인 갈리스도묘지가 나온다. 로마에 있는 51개의 카타콤베(지하 동굴 묘지)가운데서도 순례객이 가장 많은 곳이다.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들어간다. 통상 현재 건축물의 지하 1~2층 정도가 아니다. 지하 1층, 2층, 3층, 4층…. 미로처럼 사방으로 뚫려있는 길을 따라 길을 잃으면 미아가 될 수 있다. ‘10년 전에 들어간 일본인 신혼부부가 아직도 출구를 못찾아 못나오고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자칫 진담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무덤 속에 숨어 지내며 신앙을 지켜갔다. 그러다가 무덤 밖에서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주검으로 이곳으로 돌아왔다. 지금처럼 ‘명예가 권력’이 아닌 ‘고난과 순교’로 이어지던 당시 14명의 교황들도 이곳에 묻혀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희망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검을 아미천으로 사서 무덤 문을 돌로 막는 매장을 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노예들이거나 가난했기에 개인 무덤을 만들 수 없어서 땅 속 깊숙이 5~6층 정도의 통로를 뚫고 장사를 지냈다. 이로인해 로마 51곳엔 총 길이 900km의 카타콤베에 300년 동안 약 600만명이 매장됐다.


로마 성 밖 땅은 화산석 가운데 응애암으로, 돌인데도 손쉽게 파지면서도 공기 중에 노출되면 단단하게 굳어지고 습기와 냄새를 빨아들이는 지질적 특성으로 인해 무덤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적격이다. 당시 로마법은 모든 무덤은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지정되었기에,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도 무덤에서만은 자신들의 종교 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무덤 안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들의 피신처가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숨어든 지하동굴엔 이제 전등불빛이 어둠을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1700년 전 이 지하에 불빛이 있었을 리 없다. 만약 당장 수십미터 동굴 안에 전등이 꺼지고 불빛 하나 없는 깜깜 절벽으로 변하고, 주위엔 주검들이 즐비하다면 과연 어떨까.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그처럼 버리면서 고난의 사람을 자초했을까?  이 세상에 ‘현세의 삶’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커다란 물음은 깊은 지하 동굴 밑 같은 내면의 심층 안으로 파고든다.

 

성녀 체칠리아 임종 그림-.jpg

순교한 체칠리아 성녀의 모습 그림


얼마나 내려가고 전진했을까. 넓어진 동굴 광장 옆 벽에 한 여인의 주검이 놓여있다. 성녀 체칠리아의 석상이다.  체칠리아는 ‘천상의 백합’이란 뜻이다. 석상은 어원 그대로 한떨기 백합을 연상케 한다. 로마의 귀족 여인이었던 체칠리아는 이교도인 남편을 개종시켜 동정을 지키며 신앙 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뜨거운 목욕탕에 가둬두는 고문을 당했지만 신앙을 굽히지않아 결국 참수를 당했다.

 

그 뒤 이곳에 매장됐던 체칠리아의 관은 821년 교황 파스칼 1세의 명으로체칠리아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이 석상은 1599년 고나을 열었을 때 주검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현상을 목격한 스테파노 마데르노가 남긴 작품의 모조품이다. 칼을 맞고도 3일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체칠리아의 석상은 목에 칼 자국이 난 상태에서 오른손가락은 셋, 왼손가락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죽어가면서도 삼위일체인 하느님께 신앙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백합꽃처럼 연약하면서도 현세보다 영원한 세상을 철두철미하게 믿었던 강고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여인의 석상 앞에서 물음이 사라진다.


이 지하동굴은 19세기 4대 박해로 인해 무려 1만~2만명이 순교를 당한 ‘신앙의 조상들’을 둔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순례 성지 중 한 곳이다.

 

카타콤베-.jpg

카타콤베 갈리스도 묘지 내부


한국 가톨릭이 남다른 힘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순교정신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정권조차도 어느 종교인들보다 사제들을 쉽게 컨트롤 할 수 없는 데는 한국 가톨릭에도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 정신이 뿌리 박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한국인 순례객들 안내를 위해 이곳에 상주하는 살레시오수도회의 염동규(53)신부는 “로마 황제들은 원형경기장의 맹수에게 그리스도인들을 던져주어 잘못을 빌며 울고 살려줄 것을 애원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웃으며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죽어갔다”며 말했다.


긴긴 동굴 속을 빠져 나오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익투스(물고기 문양)과 ‘영원한 항구에 정박했다’는 닷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띈다. 이 카타콤베 옆엔 쿼바디스 성당이 있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네로황제의 혹독한 박해를 피해 로마를 탈출하던 베드로(1대 교황)가 자신과 반대로 로마를 향해 걸어들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물었다는 로마 성 밖 쿼바디스 성당.  이 때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들어가는 예수에게 물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즉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러 매달려 죽었다고 전한다. 자주 예수를 외면한 자로 그려지는 베드로는 이렇게 순교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반석이 되었다.
 
로마(이탈리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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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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