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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터 안아주세요

이승연 2017. 01. 20
조회수 4618 추천수 0


자기부터 먼저 ‘안아줘’


재독 이승연 심리치유사

“발 밑의 지반이 흔들리고

인생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자신을 위로하는 법 알아야”



제가 살고 있는 북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북해로 나가는 엘베강 하구에 있습니다. 바람이 쉬는 날이 거의 없어 변덕스러운 날씨와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 때문에 이곳 사람들에게 철저한 준비성이 생긴 듯합니다.

 새해의 첫주, 심한 폭풍이 방파제를 넘어 해안지방의 주택이나 시설물들은 많이 무너지고, 차량들은 서로 부딪히며 물살에 떠내려갔습니다. 이런 재난은 대부분 겨울에 생겨 더욱 참담한 심정인데, 그곳 주민들은 떠나지 않고 복구하고 더 잘 준비해서 계속 살아갑니다. 도대체 그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예기치 못한 폭퐁우가 몰아치곤 합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등 뒤에 비수가 꽂히는 듯, 목구멍에 무엇이 꽉 처박혀서 질식할 것만 같고, 온몸의 힘이 사지로 빠져나가는 듯한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의 재난 대책 같은 건 없을까요? 마음의 방파제는 얼마나 높이 쌓아야 해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발밑의 지반이 흔들려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 같을 때,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딸아이가 세살 정도 되었을 때 제가 그린 작은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는 뭔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봅니다. 세살짜리가 한 잘못이라는 게 엄마에게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 텐데, 스스로는 무척 속상했던 모양입니다. 엄마마저 자기에게 상냥하지 않고 멀어진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했나 봐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안아줘!”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내 마음이 아프니 그렇게 멀리 있지 말고 좀 위로해달라는 호소였어요. 자신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이 아이에게 저는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그렇게 표현해주는 게 너무나 고마웠어요.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크기변환_안아줘.jpg » 이승연 화백이 딸이 어렸을 때 그린 그림


 다음날 작업실로 달려가 아이의 그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이제 성년이 된 딸아이는 그 그림을 보며 자기의 아픔을 안아주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게 되었습니다.

 작건 크건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 자체가 ‘재난 대책’의 최우선입니다. 우리 내면의 기상청이라 할까요. 그다음엔 ‘안아줘’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안아달라는 사람은, 자신부터, 내치지 말고 안아주세요. 재난이 왔다고 고향을 떠나지 않듯, 폭풍과 해일에 생채기 난 자신이라면 안아주고 격려해주세요. 우선 나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성찰은 그다음입니다. 

 이승연(재독 심리치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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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어머니는 압록강가에서, 아버지는 동해바닷가 흥남에서, 이승연은 한강가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공업디자인과 도예를 전공하고 북독일 엘베강 하구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30여년 간 작가로 활동하다 2011년부터 심리치유사로 일한다. 독일인과 혼인해 성년이 된 딸이 하나 있다.
이메일 : myojilee@t-onlin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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