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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함 찾으러 한양도성길

원철 스님 2017. 03. 09
조회수 4996 추천수 0



한양도성길, 바쁨 속에서 느긋함을 찾아가다 


창의문숙정문.jpg

*한양도성길 창의문~숙정문 구간


오전 10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입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목적지 입구의 건널목에는 A군이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길 옆으로 커피숍이 있고 그 뒤편 언덕 위에는 만두집 간판도 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부록에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식당을 따로 모아놓은 ‘빕 구르망’에도 이름을 올렸다.    


성문의 현판글씨는 창의문(彰義門)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부른다. 딱딱한 그리고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의(義)자가 들어간 규격적인 이름은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성문 위에서 보랏빛까지 머금은 아름다운 저녁노을(紫霞)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았던 자리인지라 모두가 자하문으로 불렀다. 생각은 또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인사 일주문의 ‘홍하문(紅霞門)’편액도 떠오른다. 작은 세로글씨를 숨기듯이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붙여 놓았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빛(紅霞)을 감상하는 명당임을 알리는 가이드 노릇까지 맡겼다. 유가와 불가의 표면적인 엄격함 뒤로 항상 이런 감성적 언어가 같이 했다. 예(禮위계질서)가 있으면 악(樂함께 즐김)도 있고 긴(緊팽팽함)이 있으면 완(緩느슨함)도 함께 있어야 사람사는 곳인 까닭이다. 


동시에 세명도 모이기 어렵다는 20대가 10여명 모였다. 교통환승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미리 보낸 마지막 인물까지 도착했다. 덕분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도록 설계한다는 공학적 의도가 가미된 딱딱한 나무의자가 대부분인 커피숍에서 덤으로 젊은이들의 상큼한 수다를 듣는 기쁨을 쏠쏠하게 누렸다. 시험공부에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 사이에 또 짬을 내서‘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알기 위해’알바를 해야 한다면서 미간을 찌푸린다. ‘인류보존을 위해’데이트도 해야 한다면서 멋쩍게 웃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이들과 함께 나들이 목적지를 한양도성으로 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 시간이 없어서 멀리 못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시간 답사 후 점심먹고 2시쯤 헤어지는 스케줄로 짰다.


서울성곽은 오백년 동안 자기 몫을 충실히 다했다. 한양을 지켜준 울타리였다. 이 정도의 높이와 시설로 수도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시절도 있었다니. 호랑이 담배먹던 때도 아니고 불과 일백여년 전까지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성곽은 그대로 변함없는데 무기가 창칼에서 총과 대포로 바뀌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이 변해버린다면 나 역시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산성도 군사용에서 관광용으로 완전히 용도가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약 20km인 한양도성 전체를 봄 여름이면 무리를 지어 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했다고 유본예(1777~1842)는『한경지략』에서 기록했다. 이른 아침 첫걸음을 떼면 해질 무렵 출발지로 되돌아왔던 순성(巡城)길이다. 그 때도 살벌한 군사적 목적 외에 훈훈한 관광용을 겸했던 것이다. 산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바다도 그렇다. 군항인 동시에 크루즈선 정박을 겸하는 그런 항구는 더 친밀감을 줄 것 같다. 지방에 있는 공항들도 군용과 민간용을 겸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용도일 때 공간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지는 까닭이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이 좀 가파르긴 했지만 잘 닦여진 길도 “바빠서” 운동량이 부족한 탓인지 모두가 힘들어 한다. 산성따라 줄을 지어 걷는 이들은 대부분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층이었다. 익숙한 자세로 날렵한 걸음이다. 우리 팀이 제일 젊은 것 같은데 쉼터마다 쉬어야 했다.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바위에 도착한 후 삼청공원 방향으로 내려왔다. “바쁘다”는 B가 식당에 앉자마자 점심을 후다닥 먹고는 알바때문에 먼저 가야한다며 자리를 뜬다. 두 번째 답사일정은 동대문 근처 낙산공원에서 말바위 쪽으로 오는 한 시간짜리 길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12번은 와야 성곽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슬로우시티가 되는 것이다. 올가을의 취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룹스터디에 참여하느라 “바빠서” 두 번째 답사는 참석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C의 말도 얼마 전에 듣게 되었다.


그들도 여러가지 일로 바쁘지만 필자도 하는 일 없이 바쁜 사람이다. 게다가 우리가 서로 이해관계로 엮인 사이도 아니다. 그러하니 답사의 지속성도 쉽지는 않겠다. 그래도 인생선배로서 “바쁨” 못지않게 “휴(休쉼)”의 중요성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발동한다. 묘안을 짰다. 오프라인이 어려우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그래서 통으로 묶어 이른 바 ‘밴드’를 만들었다. 언제나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세대이니 만큼 사이버공간을 이용하여 대면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라고 옆에서 조언했기 때문이다. 조언자는 밴드관리까지 맡겠다고 나선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밴드 형식을 갖추어도 채울 내용은 더 문제다. 먹방처럼 부암동의 만두가 맛있다는 잡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모두를 묶을만한 공동관심사를 발굴해야 한다. 병역의무를 마친 예비역까지 있으니 나이편차도 있고 성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공도 다르고 출신지역도 각각이다. 궁리 끝에 보편적 공감대로써 ‘여행’을 설정했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 ‘여행’보다는 ‘답사’라는 단어가 더 좋아 보여 밴드이름을 “답사만리”라고 붙였다. 여행과 관련된 짧은 글을 퍼날랐다. 읽기만 하고 “조금 바빠서” 조용히 흔적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덜 바빠서” 더러 댓글도 붙는다. 댓글에 또 댓글을 또 달며 추임새를 넣어주며 머리를 식히는 ‘휴(休쉼)파’도 생겼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바쁘다. 바쁘니까 또 아프다.‘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해도 그 순간 뿐이다. 힐링을 위해 명상수행센터를 찾고 템플스테이와 함께 참선을 해도 잠시 그 때 뿐이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또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녹록치 않는 현실이 “아프게” 또 “바쁘게”기다리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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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해인사로 출가했다. 오랫동안 한문 경전 및 선사들의 어록을 번역과 해설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서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했다. 또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메일 : munsu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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