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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종교 그림들의 순례

양태자 2017. 05. 11
조회수 8730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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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술작품의수난사>, <프란츠1세 그림>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1959년 뒤셀도르프에서 출간된 책이다. 명화에 얽힌 뒷얘기를 1894년에 출생한 프랑크아르나가 집필한 책인데, 당시에 12개 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단다. 이렇게 오래된 책이니, 어쩜 그사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들이 이미 읽었다면 재미로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란다.

 

 먼저 곁가지로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에 관한 얘기다. 이 그림을 프란츠 1세(1494-1547)가 당시에 4000 Seudi(돈 단위)를 주고 구입했다. 우리는 당시의 돈 가치를 잘 모르기에 짐작하기 어렵지만, 다행히도 저자가 순은으로 그가치를 밝혀 주었는데, 순은 무게 12000kg에 해당된단다

 

 당시의 돈 단위인 독일 마르크로 표시하면 40만 마르크라는데, 지금의 유로로는 20만유로다. 얼마 전우리네 뉴스를 보니 한국의 1979년도의 6억이, 지금의 가치로는 300억이라던데, 그렇다면 위의 모나리자의 가격은 약 50년 전의 마르크(유로) 가치로도 엄청난 돈인데, 약 500년 전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임이 틀림없다

 

 그 반면에 생각지도 못하게 아주 낮은 가격으로 경매된 명화들도 있었다. 1766년 영국에서 예술품 경매 때, 그 유명한 스홀바인의 초상화가 단 4Pfund Sterling(돈 단위)에, 다비드테니어의 그림 하나는 고작 12Schilling(돈 단위)에 팔렸다고 한다. 

 

 당시의 도자기가 경매에 나오는 적어도 50년 전의 독일 마르크로 1000마르크(500유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런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그때는 정말 단순한 그림종이가 팔리듯 팔려나간 듯하다.

 당시 이런 그림들을 사들인 가문은, 자손들이 대대로 분명 부자로 살 것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그사이 이런 명화들을 엿으로 바꾸어먹지 않았다거나, 귀찮다고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않았더라면….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은 르네상스의 한 작품을 보면서 얘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코레끼오(Antonio da Correggio:1489-1534)다. 그의 작품 중에는 <Linda mitdem Schwan>(<Linda und Schwan>)인데, 번역하면 <오리와 함께 있는 린다> 아니면 그냥 <린다와 오리>라는 뜻이다. 


 암튼 의역을 좀하자면 <오리와 놀고 있는 린다>라고 보면 되겠다. 바로 아래의 작품이니, 그림을 한번 보고서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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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그림이 그려진 연도는 약 1530년경이다. 1603년 스페인의 루돌프 2세(Rudolf 2: 1552-1612) 황제가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1648년 다시 스톡홀롬으로 몰래 옮겨졌다고 한다. 누가? 무엇때문에? 라는설명이 없다. 글 맥락에서 사용한 단어로 보니 아마도 선물은 아닌 듯 하고, 누군가가 다른 물건 속에 은근 슬쩍 끼어서 가져간 듯 하다.

 

 하지만 후에 크리스티네여왕이 이 그림을 다시 로마로 보낸다. 이렇게 보내진 이 그림은 한 장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의 여러 귀족들의 손을 거쳤다 하니 이 집 저 집을 마치 발이 있는 듯이 많은 여행을 했다는거다. 

 

 영화에서 보면 귀족들의 저택 벽에는 명화들이 참 많이 걸려있다. 이 그림 역시 이런 저런 폼으로 여러 귀족들의 집에서 장식용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작품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 아니었고, 상황에 따라서 그림을 변형시키거나 손을 댔다는 사실이다. 

 그 예를 들어보자. 역사에서 ‘경건한’ 왕으로 잘 알려진 루드빅히의 손에 들어갔을 때다. 그는 이 그림을 보자 말자, 윤리도덕적인 이유를 들이대면서 자르기까지 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는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이 왕의 이름에 “경건한” 이라는 부수적인 것이 붙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부분인지는 우리가 짐작할 수는 있겠다. 바로 요염한 모습의 레나가 오리를 안고 있는 이 모습이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았겠는가? 

 

 그는 레나의 머리를 없애기까지 했단다. 너무나 가톨릭 종교의 경건함에 물들었던 그는 이런 그림을 외설로 보았던 것이 틀림없겠다. 다행하게도 후에 궁중화가인 ChaelesCoypel이 이 그림을 다시 짜맞추고 하면서 원형대로 복구했다고 한다.

 

 이런 수난을 당한(?) 그림을 프리드리히대제(1712-1786)가 다시 구입하였고, 1830년 이래로 이 작품은 베를린의 박물관에 안착해 잘 살고 있다. 아르나우는 자기 저서에서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위조품에 대해서다.

 

 사실 이 작품의 3분의 1가량은 몇 세기를 지나면서 다른 주인을 만날 때마다 이런 저런 핍박(?)을 당했으나, 이런 작품을 위조품이라는 단정은 못내리겠단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작가가 1530년경 그릴 때 의도했던 것과는 약간 달라진 모습일 거라는 거다

 

 그렇다! 이 그림은 도대체 몇 년간의 여행을 했던가? 1530년경에 태어나 1830년 베를린에 안착하기까지는 300년이 걸렸다.

 이 그림을 한번 소유해 본 이들은 이미 다 죽었지만, 그림은 남아서 동양인인 우리와도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있다.

  

 독일 살았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난 예전에 베를린의 미술관에서 어쩜 이 그림을 보고서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당시 미술관을 찾았을 때, 온통 나의 관심사는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이런 상황일때 대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류시화의 책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아!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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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자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으로 석사, 예나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천국과 지옥』 (독일인 교수들과의 공저), 『서구 기독교의 믿음체계와 전통 반투 아프리카에 나타난 종교 관계성 연구』, 『한국 기독교에 나타난 샤머니즘적인 요소들』 등의 연구 저서가 있다.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2015년, 이랑), 『중세의 뒷골목 풍경』(2011년, 이랑), 『중세의 뒷골목 사랑』(2012년), 영성 번역서 『파도가 바다다』(2013년)를 출간했으며,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글을 대중매체에 쓰고 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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