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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할머니 호위무사들

최철호 2017. 05. 26
조회수 3696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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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아빠, 전에 말한 거 아직 유효해요?” 기다리던 말씀이다. 할머니 집 위층으로 이사하면서, 부탁드렸었다. 나중에 할머니 집을 마을학교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음에 두셨다가 물으신 거다. 할머니는 오래 살아 정든 집을 떠나면서 시세보다 많이 낮은 가격에 주셨다. 애정이 담긴 집이 좋은 일에 쓰이는 게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마을에 특별한 애착이 있으셨다. 통반장 오래 하며 마을 수도, 전기 다 놓으셨다고 한다. 터줏대감 텃세가 꽤 있어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잘해주셨다. 산 아래 한적한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위해 이것저것 하는 걸 좋게 보셨다. 교통 불편하고, 초등학교도 멀고, 어린이집 하나 없는 곳이다. 신혼부부는 잠시 살다 아이 학교 보낼 때 되면 떠나는 마을이었다. 처음 그곳을 돌아보던 날, 부동산에서 큰길 주변 집 몇 개 보여주고는 돌아서는 우리 부부에게 큰 기대 없이 던지듯이 말씀하셨다. “저 오르막 위에 낡은 집 하나 있는데, 온 김에 보고나 갈래요?” 그 할머니 집이었다. 한눈에 여기에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밝은누리 인수마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을 어린이집 초기에 아이들 운동 수업을 맡았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운동하고 놀았다. 손녀 데리고 나오시는 한 할머니와 자주 마주쳤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셨다. 아빠들이 아이들 산책 데리고 나와 노는 모습이 좋아 보이셨단다. 몇 가정 어울려 공동육아 한다는 얘기도 흥미롭게 들으셨다. 얼마 뒤 손녀는 어린이집에 함께했다. 몇 년 지나 식당을 그만두신 할머니는 어린이집 밥상 선생님으로 오셔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하신다. 


 호랑이 눈빛 미륵보살 청룡빌딩 할머니. 주변 사람들과 골목 떠나갈 듯 싸우시는 걸 여러 번 보아왔다. 부동산에서도 그 건물 거래는 꺼렸다. 10년 넘게 그 건물에 세 들었던 우리에게, “할머니랑 안 싸워요?” 하고 물을 정도였다. 우리에게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잘 지냈다. 오히려 든든한 호위무사 역할을 해주셨다. 마을서원에서 새어나가는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고 이웃분이 지나치게 항의한 적이 있다. 사과도 통하지 않던 그때, 할머니가 나타나셔서 우렁차게 “아이들이 다 그렇게 노는 거지” 하며 물리치신 일은 아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쾌거(?)였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계셨다. 마을학교 아이들 산책 시간에 만나면, 무척 귀여워하신다. 아이들은 예뻐해주는 사람을 잘 알아본다. 하루 산책 선생님으로 와 주시길 부탁드린 적이 있다.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달리 머리도 하시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오셨다. 자식들에게 괜한 일 한다고 타박도 받고 도움 되는 얘기도 들으셨단다. 손가방은 사탕이 한가득이었다. 몹시 긴장하셨지만, 행복해 보이셨다. 나중에까지 그날 참 고마웠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돌아보니 밝은누리는 할머니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할머니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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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1991년 생명평화를 증언하는 삶을 살고자 ´밝은누리´ 공동체를 세웠다·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 마을공동체를 세워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삶을 산다· 남과 북이 더불어 사는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를 앞당겨 살며 기도한다· 청소년 청년 젊은 목사들을 교육하고 함께 동지로 세워져 가는 일을 즐기며 힘쓴다.
이메일 : suyu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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