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한센병자의 피고름을 먹은 붓다의 제자

재연스님 2017. 06. 08
조회수 4855 추천수 0


-탁발.jpg » 탁발그릇을 들고 탁발에 나선 남방불교의 비구승들. 비구라는 말은 걸식하는 사람, 걸인이라는 뜻이다. 붓다 당시 출가 승려들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않고 걸인처럼 빌어서 먹고 수행했다. 사진 픽사베이 제공


한적한 오후 횅한 절 마당에서 지긋한 연세의 노인 한 분이 녹음 짙어가는 산등성을 휘 둘러보고 있었다. 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잠시 말동무도 괜찮을 듯싶어 합장하고 눈인사를 건넸다. 노인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내 몰골을 훑어보았다. 아마도 말이 통할 만한 작자인지 간을 보시겠다는 거겠지! 그러고는 운을 뗐다. “아, 거시기 말이오, 쩌그 머시냐 도솔산 선운사라고 써놨던디, 도솔이 거 무신 뜻인지 당최….”


 내가 사는 이곳이 도솔산 선운사다. 이 아리송한 산 이름이 소싯적 글줄 좀 읽으신 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이럴 때 좀 난감해진다. 어학을 전공한 훈장 본색을 드러내어 “그러니까, 이게 좀 복잡한데요. ‘흡족하다, 만족시키다’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동사 ‘뚜샤띠’의 과거분사 ‘뚜쉬따’를 한자로 ‘도솔타’ 혹은 ‘도솔’이라고 썼답니다”라고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거나 노인 학대가 될 수도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적고 하찮은 것으로도 마음 편하고 느긋함을 뜻하는 ‘뚜쉬따’라는 인도 말을 음사한 거고요, 의역하면 지족이 된답니다. 그래 어르신은 평안하신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노인은 조금 못마땅한 낯빛으로 나를 슬쩍 흘겨보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지족이라, 지족, 안빈낙도라 그 말이여?” 마치 나도 그 정도는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도 안다. 지족,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흐른 세월에 씻고 닦아냈어야 할 온갖 때는 켜켜이 쌓이고 낯가죽은 더 두꺼워진 것을! 8세기 초, 인도 힌두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샹카라차리아가 탄식조로 읊었다. “주름투성이 얼굴에 서리 맞은 머리, 수족은 힘없이 흔들리는데, 부질없는 욕망은 더욱 젊어져!” 내가 무슨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재주를 가진 건 아니지만 속으로 두런거리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당신이나 나나 그저 그런 형님 동생 아니겠수?”


 부처님 십대 제자 가운데 가섭존자(Mahā Kassapa)는 최고의 두타(dhutaṅga) 수행자로 존숭되는 분이다. 존자께서 말씀하셨다. “숙소에서 나와 탁발을 하러 성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고 있는 한센병 환자 앞으로 다가가 말없이 섰다. 그가 피 묻은 손으로 밥 한 덩어리를 내 바리때에 넣어주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떨어져 함께 들어왔다. 담장 밑에 앉아 밥을 먹었다.”(<테라가타>(Theragāthā) 1057~1059)


 거기 더 이상 뒷이야기가 없어서 알 길이 없으나 피고름 비빔밥을 함께 나눈 그들은 그 담장 밑에서 필시 쓰디쓴 세상과 인생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냥 입에 붙은 얄팍한 지족 따위의 단어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기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전하고 알았을 것이다. “당신이나 나나 그저 그런 형님 동생 아니겠수?” 연꽃 향기가 먹먹하게 가슴을 채우는 도솔천이 그곳이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재연스님
인도 푸나대학에서 고타마붓다의 원음인 필리어경전을 공부했다. 실상사 주지와 화림원 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북 고창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에서 학승들에게 팔리어경전으로 콩이야 팥이야 따지고, 가르치며 산다. 경전 말씀을 늘 새롭고 놀랍게 해석하며 살아간다.
이메일 : shakra@hanmail.ne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잊지 말게, 자네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걸잊지 말게, 자네 생각도 틀릴 수 있다...

    재연스님 | 2017. 04. 28

    잊지 말게, 자네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이따금 생각한다.

  • 불경에서 찾는 선거철 지혜불경에서 찾는 선거철 지혜

    재연스님 | 2017. 03. 31

    그냥 법대로 하라고! 세상에는 수많은 겨루기가 있다. 꼬맹이들의 딱지치기로부터 동네 고샅에서 벌이는 닭싸움, 초등학교 운동회 마당의 청백전, 온갖 시합, 심지어 나라와 나라가 벌이는 전쟁까지. 우리는 이런 갖가지 형태의 겨루기에서 이해득실의...

  • 아름답다는 것은아름답다는 것은

    재연스님 | 2017. 03. 05

    그것이 그것답고 제값을 하면 아름답다 으레 입에 붙어 쓰는 말인데도 ‘이게 어떻게 생겨났고,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일까?’하고 어원을 따져보는 내 버릇은 아마...

  • 착취없는 세상의 행복한 젖소되리착취없는 세상의 행복한 젖소되리

    재연스님 | 2017. 02. 02

    제왕적 군주여, 어미 소의 모성을 쥐어짜지 마라 까마득히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 저자가 누구였던지 제목이 뭐였는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거기 쓰인 비유 한 대목은 너무 생생하고 선명해서 이따금 써먹곤 한다. 17세기 후반, 인도의 데칸...

  • 거울 속의 넌 누구냐거울 속의 넌 누구냐

    재연스님 | 2017. 01. 05

      언제부턴가 왼쪽 어깨가 뻐근하고 움직임이 영 신통치 않다. ‘육십견’이란 말도 쓰일까? 암튼, 컴퓨터 앞에서 오랫동안 자라처럼 목을 늘어 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