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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일반 조회수 858 추천수 0 2017.06.19 13:01:31

도올의 금강경 오해 14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번역하고 그 뜻을 밝히려는 것은 정확하게 羅什(구마라지시집)의 한역 [금강경]이라는 것이다. 즉 산스크리트 원본에 의한 의미규정이 先行되는 것이 아니라, 羅什의 한문 자체내에서 형성되어 1,600년 동안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 의하여 수용된 의미체계를 우선적으로 밝힌다는 것이다.(p151)

·····.

(2-1의)偏袒右肩(웃 옷을 한편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에 대해서는 역대 주석가들의 의미부여가 없다. ·····. 내가 생각키엔 존경하는 스승에게 내 몸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자기를 낮춤으로서 상대방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즉 자기를 비우는 표시인 것이다. 즉 알몸뚱이로 그대 앞에 배움을 청한다고 하는 “겸손”의 뜻인 것이다. 그것은 비움이요, “如來 즉 自然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p148)

2-2.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2-2.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하여 주십니다.

[강해]

·····.

“如來” 또한 十號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것은 불타시대에 자이나교 등 기타 종교에서도 뛰어난 종교인들에게 붙이는 일반칭호로서 통용되고 있었다. 그것을 초기승단에서 싣달타에게 사용한 것일 뿐이다.

·····. “如來”라는 한역술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後漢의 安世高다. 그뒤로 “如來”라고 하면 “如如 즉 진리의 자리로부터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왔다”고 하는 구제자적 성격(saviorism)을 명료히 띠면서 중국인들의 심상속에 자리잡은 것이다.’(p149~150)

도올은 如來라는 용어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 ‘自然’이랬다, 뛰어난 종교인들에게 붙이는 일반칭호랬다,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명료하게 ‘구제자적 성격(saviorism)’으로 자리잡았다라는 등, 다른 종교에서 규정한 의미만 말하지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표상한 말임을 분명하게 진술하지 않는 건 심히 의심스럽다.

如來란 말의 개념은 분명한 것이다.

‘사람의 여자가 낳은(來) 것은 사람이 듯, 진리의 진실이 낳은(來) 건 진실’이란 뜻이다. 이 말은 독립적 개체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이 독립적 개체의 성품의 삶으로 작동하는, 이 작동을 표상한 말이다. 이는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을 표상한 말이지 싶다.

필자는 한자·문의 음운학 등 문법에 대해선 완전 손방이다. 단지 한자를 뜻글자라고 배워 한자는 온통 뜻을 표상한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如來의 如자도 女子와 입은 생명을 생산하고 소멸시키는 끊임없는 작동을 의미하므로 이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을 표상한 말로 썼지 짐작할 뿐이다.

如라는 문자는 往(가다)이며 至(이르다)라는 서로 상반되는 작동을 동시에 의미하므로(국한홍자옥편 1962)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독립적 개체로써의 작동임을 표상한 반야바라밀과 통합적 전체세계로써 하나의 작동임을 표상한 보리살타를 아우른 의미의 말이지 싶을 뿐이다. 즉 이 말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 곧 모든 존재와 현상은 각각의 성품으로써의 삶이며, 동시에 하나의 세계성품으로써의 삶이라는 의미를 표상한 말로 이해해야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밝혀 증명한 말이 되기 때문이다.

도올은 이 如來란 말의 ‘산스크리트 원어 tathagata의 語源이나 原義는 사실 확정되어 있질 않다.····· 보통 존경스러운 사람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는 說이 가장 원의에 접근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 tathagata라는 말의 한역은 如來며 가끔 如去라고 번역되기도 했다(p150)고 한다.

도올이 산스크리트 원어의 의미를 소개한 말에 따르면 이 따타가타라는 말은 진리·연기의 如로부터 온(來) 진실·실상, 곧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뜻이다. 따타가타의 如來·如去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여 과거 현재 미래로 오고가는 소승적 동시작동을 표상한 말로써,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대승의 보리살타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말을 당시 인도인들이 ‘뛰어난 종교인들에게 붙이는 일반칭호’로 쓴 것일지는 몰라도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의 깨달음이 있는 이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을 호칭하는 말로만 쓴 것이 아니다.

따타가타의 如來·如去는 소승의 독립적 개체로써의 인과작동일 뿐만이 아니라 대승으로써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 곧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것까지를 아우르는, 이 모든 작동을 표상한 말이다.

사실 원어의 이해나 번역은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의 깨달음이 격발한 이에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아무리 엉터리 같은 번역일지라도 이 번역자체는 원어로부터 따타가타, 如來한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임을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tathagata라는 말을 自然이라고 번역하든 如來·如去라고 하든, 구원자라고 번역하든, 이는 분명 이 번역자와 저것의 인연이 인과로 작동한 如來의 이것으로써 연기의 실상인 것이다.

사실 알쏭달쏭하여 뭔 말인지 알 수 없이 말하는, 이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의 말은 1+1=2라는 이런 케케묵은 시시한 논리로 말해도 충분한 것을 애써 ‘e=mc자승이다(아인슈타인의 무슨 공식)’라고 보다 어렵고 까다로운 개념으로 말하는 것일 뿐이다.

석가여래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으로부터 석가라는 사람으로 온 진리의 진실인 것이지 “如如 즉 진리의 자리로부터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온 이가 아니다. 은근히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이미 오래전에 어긋난 기독교적 인식체계로 끌어들이려 하지 마시라.

도올은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를 ‘여래께서는 뭇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뭇 보살들을 잘 부촉하여 주십니다.’라고 해석하며 이렇게 강해한다.

‘여기 해석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보살의 의미이다. 왜 여기 보살이라는 말이 등장했는가? 바로 이 금강경의 기자는 방금 탄생한 대승보살의 혁명운동의 대변자로써 수보리를 내걸었다. 여기 수보리는 부처님께로부터 직접 확약을 보장받고 싶은 것이다. 수보리가 최초로 불타에게 던진 말은 대승보살운동에 대한 불타의 보호·지지·격려의 확약에 대한 인증이다.

“부처님! 부처님은 분명 지금 우리 보살대중혁명운동을 찬성하고 지지하고 격려하고 계시죠?”

그런 부처님께서 뭐라 말씀하시겠는가?

“그래! 나는 너희들의 운동을 지지하고 보호하고 격려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처님이 아무리 지지하고 보호하고 격려한다 해더래도, 바로 그 보호와 격려를 받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보살운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는가? 보살이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善男子 善女人들이다. 바로 보통사람들이다. 아라한이 아닌 有情(의식 있는)의 모든 사람들이다.

데모는 왜 하는가? 춘투는 왜 하는가? ·····. 그래! 나는 데모를 지지한다. 그러나 데모자들이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은 데모를 지지한다는 후원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덧없는 소리인 것이다. ·····. 데모 지지? 그거 다 헛소리인 것이다. 나는 데모를 왜 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보살운동을 하고 있는가? 과연 보살, 그것이 무엇인가? 보살! 보살! 보살은 무엇인가? 이 보살의 의미규정, 보살이 과연 어떠한 모습을 지닐 때 보살이 될 수 있는가? 보살이 과연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 보살의 의미규정의 핵심을 불타로부터 직접 듣고 싶은 것이다.

“부처님! 우리는 보살운동을 막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우리 운동을 지지해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막상 보살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 뭐가 보살입니까?”

여기 도올은 말한다: “우리는 지혜없이 자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참말로 기가 막힌 강해다. 여래를 다만 석가로, 뭘 깨달은 상위계급의 사람이라고나 알고 보살을 그 하위계급의 사람이라는 개념으로만 파악하고 있으니 善男子 善女人들은 여래가 아니고 단지 무슨 투쟁의식이나 있는 사람들로 말해, 데모하는 이들이나 의식이 있는 有情으로 혹세무민하는 외침은 참말 가관의 강해다. 대체 데모하는 이들이나 善男子 善女人이란 말인가? 우짰든지 이미 정치투쟁을 벌렸으면서 이제와서 정치가 뭐냐고 정치를 안 사람에게, 대체 정치개념으로써의 실체가 어딨다고, 정치의 개념을 묻는단 말인가? 이런 허접한 善男子 善女人이 있단 말인가? 이미 똥 싸놓고 똥이 꾸린 건지 달콤한 건지를 따질 텐가? 하긴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알도 못하면서 도올 같은 유명짜한 사람들이 한 말을 다만 자신의 지적역량으로 이해하여 행동하는 양심들이 허다한 세상이긴 하지!

석가여래가 사람들에게 말의 개념이나 가르쳐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말의 개념이 되게 하는 마술사 같은 사람이었던가? 수보리가 보살이라는 개념도 모르는 얼라였다는 말인가? 얼라가 엄마젖을 먹으며 엄마가 누구냐고, 젖이 뭐냐고 묻는 건 얼라니 마땅한 얼라짓이다. 그렇다고 얼라가 엄마 젖을 먹는 게 헛짓이라고, 엄마가 뭔지, 젖이 뭔지 그 규정된 의미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니 그 걸 알아 엄마와 젖은 내팽개치고 이 엄마와 젖이라는 규정된 의미가 되자고, 이 허접한 운동을 보호, 지지, 격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를 수락하는 메모가 이 금강경이란 말인가?

도올이 ‘보살의 의미규정, 보살이 과연 어떠한 모습을 지닐 때 보살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진술은 ‘보살은 무엇인가?’라는 구태여 불교가 있는 까닭을 넘어선 오버액션의 말이다.

나는, 우리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보살이라는 실재의 실체로써의 모습이 있어 그 보살이 되어야할 非보살로써의 성품의 삶이 아니다. 다만 내가, 우리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있어 이것이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까닭을 보살이라는 개념으로 다만,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예컨대 자동차라는 개념의 이 물건이, 나라는 개념의 이 몸과 맘이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개념을 통칭하여 자동차라고, 나라고 이름하여 이해하는 것과 같은 진리의 진실일 뿐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이미 보살로써의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금강임을 밝혀 증명한 것이 이 금강경 등 온갖 경율론의 팔만대장경이다.

도올이 구마라집의 한문 자체내에 형성되어 1,600년 동안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 의하여 수용된 의미체계를 우선적으로 밝힌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도올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 오해, 구태여 불교가 있는 까닭을 오해한 이것이 구마라집은 물론 한자문화권에서 1.600년이나 형성되어 있었고, 자신의 이런 저술의 오해가 미래로 전승될 것이니, 이는 참말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이 헤아릴 수 없는 시·공간으로 빛나는 수많은 인식의 별들 중에서 진리인식이라는 如來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의 별을 가려 먹구름의 어둠 세상이 도올에 의하여 如來할 걸 상상하면, 참말로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여래와 보살에 대한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으로써의 의미규정은 앞에서 누차에 걸쳐 밝혔다.

금강경을, 불교를 말함에 있어 언어문자에 대한 불교적 기초개념도 없이 함부로 우리말로 진술하는 건, 한역의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폐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惡반야바라밀이다.

如來·따타가타며 菩薩·보디삿뜨바란 말의 개념이 그 당시에 어떤 의미로 이미 규정되어 있었는지 필자는 모른다. 또 한문의 문법에 대해서도 완전 손방이다. 하지만 수보리가 서가세존에게 물은 이 말은 석가여래, 즉 깨달은 이가 善男子 善女人인 有情들을, 마치 저 하느님이 보호하듯 하는 것이니 자기의 이 자비사랑을 굳게 믿기를 당부하여 부탁하는 뜻의 말이 아니다.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은 ‘여래는 여래다운 意識으로 잘 보호된 모든 보살이며, 여래답게 부촉되는 작동의 모든 보살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여래·따타가타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총체적 인연·인과로써 이 인연·인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라는 생각의 선정으로 잘 보호되어 있는 보살이며, 이 여래·따타가타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총체적 인연·인과로써 이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에 잘 付囑되는 작동의 보살이다.’라고 수보리는 말하는 것이다. 이미 여래가 보살인 건 알겠다는 것이다. 이런 말의 뜻이며 이 뜻으로서의 실제는 다 밝혀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 뭘 묻는 것인가? 소위 선불교에서 말하는 ‘末後句’를 묻는 것이다.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묻는 것이다.

뭔가? 다음을 기대하시라.

도올이 보살을 ‘“부처님! 우리는 보살운동을 막 시작했습니다. 운운’하며 운동개념으로 이해하는 건, 좀 다행이긴 하다. 그러나 이 말을 수보리가, 인간이 윤리적 실천덕목으로써의 운동개념으로 이해하는 건,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오해의 보살님이다.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은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을 낱낱이 규명해야만 해결되는 까닭이 아니다. 한 생각, 한마디 말소리도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한 생각, 한마디에서 곧바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진리의 진실임을 깨닫는 기도가 불교다. 그러므로 여래면 여래, 보살이면 보살, 이 한마디가 구태여 불교가 선 까닭을 손가락질하는 진리의 진실임을 진술해야지, 이 말이며 이 말의 개념·호념이 한없이 펼쳐지는 부촉의 이 금강경 전체를 섭렵해야만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참말 아득한 연기의 실상이다.

그래도 “우리는 지혜없이 자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또 엉뚱하게 말하는 연기의 실상을 도올이 명료하게 보이니 좀 더 그의 말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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