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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21

- 도올이 본 석가의 我는 저 ‘책상’이나 ‘아름다운 꽃’처럼 ‘현상의 배후에 현상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자기동일체로서의 존재인’ 이 실체로써의 我이거나, 또는 단순히 我라는 형상의 시·공간적 영속성이 없어서이거나, 또는 오온의 가합으로써의 我인 것이어서 이런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어 無我라는 해괴한 我라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런 설명의 無我란 대도 무아라는 낱말의 뜻으로야 훌륭하게 정해진 의미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런 의미는 이미 석가가 如來하기 전에 정해진 무아라는 낱말의 뜻일지는 몰라도 석가여래가 사유하여 안 연기의 실상을 표상한 무아라는 말의 뜻은 아니다.

도올이 말한 뜻의 무아는 기존의 인도사회는 물론 동서를 막론하고 지금도 여전히 횡행하는 뜻일 테지만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을 표상한 無我라는 말의 뜻이기엔 2% 부족해 뭔가 찜찜하다. 겨우 이 정도의 인식이 ‘매우 철학적이고도 추상적인 불타의 논리적 깨달음’일 것인가?

석가여래가 본 아는 분명 ‘넓은 의미의 我’로써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이라는 我이며, 이 我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이 삼세로써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이므로 독립적 개체의 我로 작동하는 삶이며 동시에 통합적 전체의 我로 작동하는 삶으로써의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인 것이다. 이런 까닭의 我이므로 실재의 실체랄 我랄 게 없어 無我, ‘아랄 게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를 이렇게 바르게 알아보란 기도의 말이 이 3-3분임은 물론 구태여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이다. 마땅히 이것임을 모르고 도올은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는 앎에 사로잡혀 이렇게 말한다. -

‘그런데 여기 큰 문제가 발생한다. 諸法無我라고 한다면, 윤회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我가 없는데 윤회가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면 불교는 애초부터 윤회를 포기해야 하는가? 윤회설은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윤회는 모든 存在의 기반이다. 윤회를 전제로 하지 않는 存在를 생각할 수도 없고, 윤회의 전제가 없는 佛敎는 생각할 수도 없다. 사실 윤회는 이론이기 전에 하나의 사실이요, 구원이기 전에 하나의 현실이다. 윤회는 모든 생명의 生死의 법칙이요, 순환의 大勢다. 불교가 윤회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인도라는 문화환경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윤회의 설정이 없이는 인간삶의 도덕성이 不可能하기 때문이다. 善業에 대한 요구가 근원적으로 成立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윤회와 無我의 모순,” 이것은 불교사의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상황이었다. 윤회와 무아의 사이에 存하는 갈등과 긴장은 불교사의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

- 도올은 여기서 분명하게 불교가 輪廻며 業이며 無我로써의 인간의 윤리라고 말하고 있다. 無我의 我가 ‘넓은 의미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이르는 我라고 말하면서도, 이 我를 인간으로만 고집하여 인간인 나의 善業을 실천하는 윤회의 삶을 요구하는 게 불교가 있는 까닭이란 것이다.

앞서(p97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대승의 부처를 말하여 ‘날로날로 我相이 없어져 가는 문둥이’로서의 무아를 실천하는 이라고 말한 걸 보면 이 “윤회와 無我의 모순,”이란 논리는 당연한 것이긴 하다. 이는 도올이 앞에서 ‘非我’를 말하여 상대적 인식의 我라고 말했듯이 이 ‘無我’ 역시 有我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윤회는 모든 存在의 기반이다. 윤회를 전제로 하지 않는 存在를 생각할 수도 없고, 윤회의 전제가 없는 佛敎는 생각할 수도 없다. 사실 윤회는 이론이기 전에 하나의 사실이요, 구원이기 전에 하나의 현실이다.’라고 말하여 마치 윤회며 업이며 무아가 실재의 실체인 것으로 말하는 건 불교를 말하되 불교가 구태여 선 까닭관 아득한 말을 하는 것이다.

석가여랜 이렇게 알아 말한 것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윤회란다면, 업이란다면, 무아란다면, 이것은, 이 앎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에 의해 오직, 이 성품의 삶이 윤회며 업이며 무아라는 선정으로 작동한 지혜의 반야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니 이를 바르게 보라는 기도의 말인 것이다. 어떤 뜻의 윤회란 대도, 업이란 대도, 무아란 대도, 이는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이란 것이다. 도올의 무아에 대한 정의는 비록 석가여래가 말한 의미의 무아와 다르긴 하지만 진리의 진실이다.

이를 이렇게 바르게 알지 못하니 제법무아의 무아를 단지 몸뚱이가 날로날로 없어져 가다 마침내 없어져 버리는 문둥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만 알아 실재의 윤회며 업의 논리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큰일이라고, ‘불교사의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대체 어느 경전에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라고 했는가? 오직 ‘모든 존재는 실체랄 게 없다’고 했지.

이 3-3분은 물론 구태여 이 금강경이, 불교며 선이 있는 까닭은 이 바른 앎의 깨달음을 기도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도올은 예의 이 보살을 표상한 무아의 뜻은 보질 못하고 엉뚱한 사유의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론의 등장은, 아라한에게 파산을 선고하고 나온 새로운 대중운동의 출발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 금강경 본문에 “無餘涅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 이것은 소승 아라한들의 “滅絶에의 동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보살들에게는 바로 이 멸절에의 동경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生도 無我다. 死도 無我다. 生死에는 生死라고 하는 고유한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열반에도 열반이라고 하는 고유의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사의 윤회의 止滅이 곧 열반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윤회는 삶의 현실이다. 그 삶을 벗어나는 죽음이 그 삶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살들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인가? 윤회의 현실이 곧 열반이라고 하는 생각의 회전이다. 이 생각의 회전은 또 無我의 부정의 부정, 부정의 끊임없는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열반이 생사의 고리 밖에 자리잡을 실체적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生死가 곧 열반이다. 生死卽涅槃! 이 사상은 곧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고 하는 “煩惱卽菩提”의 과감한 생각으로 비약하게 되는 것이다. 번뇌 그 자체가 죄가 아니요, 번뇌 그 자체가 중생구원의 慈悲로 化하는 것이 곧 大乘이다!

인간 붓다는 선포한다. 붓다인 그대 보살들이여! 그대들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마음가짐을 지닐지라; “나는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고, 가없는 뭇 중생들을 구원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구원이란 근원적으로 그 뭇 중생들에게 存在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도 구원한 바가 없다. 나의 구원의 삶, 그 자체가 성립불가능한 것이었다.”’

- 구태여 ‘보살론’이란다면 이는 전시대의 뭔 아라한에게 파산을 선고한 후대 사람들의 논리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이 금강경을 바르게 보지 못한 것이다.

보디사트바(bodhisattva)·보리살타·보살이란 말을 석가여래가 창조한 말이라고 본 대도, 아니라고 본대도 이 보살이란 말의 뜻에 의하여 이렇게 보고, 또는 안 본 이 선정으로 작동한 지혜의 반야바라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이 말은 이 말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렇게 바르게 보지 못하고 저렇게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관 아득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건, 저 2-2분의 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咐囑諸菩薩이란 구절의 如來와 菩薩을 특정의 인칭으로만 보고 알아, 이 구절을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이 이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라는 이 관념으로, 이 부촉작동으로 잘 보호되어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바르게 보고 알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도올은 이 금강경 전체가 금강의 여래·보리살타로써 여래·보리살타를 밝혀 증명하는 책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금강경 전체뿐만 아니라 더 확장하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이 보리살타를 증명하고 있는 보리살타이긴 하지만 이 ‘대승정종분 제삼’은 세존의 입을 빌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이라고. 이 말은 곧 如來善護念諸菩薩 善咐囑諸菩薩이라는 無上正等의 깨달음의 맘이 일어난(發心) 것은 당연히 이 ‘깨달음의 맘’이라고 住한 如來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것이며, 이 연기의 실상인 이 ‘깨달음의 맘’으로 항복한 如來의 맘인 것이다.

도올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무아며 윤회며 업이며 生死卽涅槃이며 煩惱卽菩提 따위의 말들이며 그 뜻은 다 이 여래의 보리살타로써 여래의 보리살타를 스스로 설명하여 밝히는 증명의 언어문자이다. 도올은 이런저런 말을 끊임없이 해가며 자신을 밝혀 증명하는 삶으로서의 연기의 실상이듯,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이 성품의 삶으로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스스로 밝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은 이를 이렇게 보고 알아 깨닫는 깨달음이다.

이를 모르고 大乘이 불교사상 엄청난 혁명운동이라도 되는 줄 호들갑을 떠는 건, 몰라도 너무 모른,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관 아득한 진리의 진실이다.

‘大乘’은 소승의 상대적 언어로 쓴 것이 아니다. 大는 보리살타를 한역한 乘을 형용한 말이다. 마치 ‘하나님’할 때의 ‘님’을 보비한 형용이 ‘하나’이듯이, 太陽의 ‘太’이듯이, 乘 그 자체가 大인 것이다. 대승은 보리살타이다. 大는 보리로써의 선정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乘은 살타로써의 지혜작동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라는 성품의 삶을 각각 표상한 번역어이다.

“無餘涅槃”이란 말도 뭔 ‘소승 아라한들의 “滅絶(죽음?)에의 동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대승임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즉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남김없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대승적 삶의 지혜작동인 보리살타로써 오직, 이 존재와 현상의 선정으로 열반하는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보리살타의 我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이 역사의 자비며 사랑이며 구원의 삶으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다.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은 윤회의 이 현실이 곧 열반이라고 아는 따위의 이 ‘생각의 회전’에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윤회나 열반이나 업이나 무아나 대승 소승 부처 따위가 실재의 실체랄 게 있어 그런 것들로 되거나 작동하는 게 아니라, 다만 그런 것이 그런 것이며 그런 것으로 작동하는 삶이라고 아는 이 發心, 이 깨달음의 맘으로 회전한 생각이 보리살타임을 바르게 보라는 기도일 뿐이다.

이 ‘생각의 회전’을 또 다른 형상의 말로 말하는 성경을 엉뚱하게 사유하여 말하는 보리살타 도올을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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