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혜민 스님 2012. 02. 10
조회수 14735 추천수 1

대학원 생활하면서 죽이 맞아 동거하게 된 미국인 친구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다 헤어졌지만 ‘내 마음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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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봄을 맞이하는 설렘이 숨쉬는 공기에서 부터 느껴진다. 나는 1999년 3월 평생 처음으로 미국 동부 프린스톤 대학으로 향한 기차에 올라탔다. 박사 프로그램에 합격한 후 학교 탐방을 가는 길이라 새로 만나게 될 인연들에 대한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화사한 봄 날씨 만큼이나 내 마음 가득했다.

 

 프린스톤역에 기차가 도착한 후 플랫폼에 내려 마중 나오기로한 대학원 일년 선배 대니엘을 찾았다. 대니엘은 나와 비슷한 키에 비슷한 나이 또래로 처음보자 마자 나를 금방 알아봤고 서로 오랜동안 알기라도 한듯 쉽게 친근감이 들었다. 그도 나처럼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 때문이였는지 백인으로써는 보기 드물게 동양적 정서를 잘 이해했고 상당히 친절했으며 또한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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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탐방 2박 3일동안 나는 대니엘 기숙사 방에서 신세를 지면서 박사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 그의 덕에 이미 방문한 다른 대학원들보다 프린스톤으로 마음을 정하게 된다.

 

박사 프로그램이 시작되기전 대니엘이 다음 학년부터는 살던 기숙사에서 대학원생 아파트로 옮겨서 살 계획이라면서 혹시 룸에이트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 보았다. 모든 것이 낯선 대학원 생활을 혼자가 아닌 대니엘과 서로 도와가면서 시작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흔쾌히 승락하였다.

 

우리는 그래서 새 학기가 시작되기 몇주 전에 아파트로 이사를 해 같이 쓸 책장이며 주방에서 쓰는 식기 도구, 책상, 의자등을 차로 돌아다니면서 구입을 했다. 또 첫 달에는 음식도 종종 같이 만들어 먹었으며 학교 안에서 하는 무료 음악 공연도 보고 일요일에는 뉴욕 인근에 있는 내 은사 스님 절에 같이 가서 법회에도 참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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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과정 속에서 나는 대니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프린스톤 대학이 겉으로 보면 거의 모든 면이 완벽하게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대도시가 아닌 뉴저지의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학교 건물들이 유럽 중세 수도원 같은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사람들을 많이 외롭게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여자 친구가 없었던 대니엘도 그 느낌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

 

학기가 시작이 되면서 둘은 점점 바빠졌는데 나는 중국어와 더불어 일본어를 공부하였고 대니엘은 작년부터 공부해 오던 중국어를 그만두고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다는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대니엘을 통해 일본에 대해, 대니엘은 나를 통해 한국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들을 차차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가끔가다 한일간의 민감한 이슈가 등장하면 밤 늦게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그는 주로 일본을 대변했고 나는 한국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별일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약이라고 서로에게 며칠 간의 심리적 여유를 주고 나면 원상복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니엘과 나는 같은 아파트에 둘만 같이 사는 상황이다보니 심리적 휴식기간을 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아파트에서 학교 캠퍼스까지 걸어가면 삼십 분이 넘는 거리이기 때문에 주로 대니엘 차를 얻어타고 이동을 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 어색함은 상당히 오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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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같이 살아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공간을 나누어 쓰는 동거인과의 관계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짓 잘못하면 어긋날 수 있다. 그냥 친구 관계이었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이 같이 살다보면 은근한 스트레스로 작용할수 있는 일들이 생긴다. 예를 들면 부엌 설거지나 집안 청소 스타일, 잠 드는 시간이나 주로 듣는 음악의 장르나 볼륨, 세탁물을 말리는 형태나 잠을 잘 때 코를 고는지 않고는지 등이 모두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이 점은 같이 살아 보기 전에는 아무리 관계가 둘도 없는 친구 혹은 출가자들 사이라도 어떤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차라리 아예 여러 대중들이 모여 살거나 둘이 살더라도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면 상대방의 삶에 되도록 침범하지 않는 예의와 적당한 무관심으로 일관할수 있겠지만 잘 아는 사람과의 관계는 또 그럴수도 없다.

우습게도 나와 대니엘과의 미묘한 갈등은 정말로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일어났다. 나는 밥을 한 번 할 때마다 전기 밥솥의 보온 기능을 활용해 이틀치 저녁 혹은 삼일치 아침까지 먹을 밥을 넉넉하게 해놓는 편이다. 그런데 대니엘은 하루 이상된 음식은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강한 관념이 있어서 절대로 하루 이상된 밥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대니엘은 본인만의 전기 밥솥을 따로 사서 밥을 해 먹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그와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서로 얼굴을 보고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게 되었다. 가을 학기가 끝나고 두번째 봄학기가 시작될 무렵 대니엘과 나는 크게 한번 언성을 높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다름이 아닌 그가 며칠 전에 새로 산 카메라 사용 설명서를 내가 쓰레기인줄 알고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승려라서 그런지 체질상 널려져 있는 것을 보면 버리는 것을 좋아했고 대니엘은 잘 모으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날 이후 그와 나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고 몇 주 후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을 때는 서로에게 너무 많이 어색해져 버린 상태였다.

 

크리슈나무르티가 한말 가운데 진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지니는 내용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또한 오쇼 라즈니쉬에 따르면 성숙해 진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욱 상처받기 쉽고 더욱 부드럽고 더욱 단순하게 만드는 영적 현상이라고 정의를 했다.

 

 나는 대니엘이라는 관계의 거울을 통해서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의 이기적이고 소심한 부분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고 그런 성숙의 과정을 통해 많이 아파하고 많이 아쉬워하고 왜 그러지 못했을까하는 기나긴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대니엘과 처음 만난지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나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다음 학년 사는 곳을 아파트가 아닌 기숙사로 바꾸어 신청을 했다. 우정이 뜻하지 않게 변해버린 이십대 후반의 봄날은 이렇게 무상하게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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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조계종 승려이자 미국 메사추세츠주 햄프셔대 종교학과 교수. 미국 UC버클리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방향을 바꿔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를 받고 출가했으며,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를 받았다. 종교계 최고 트위터리언이자 아픈 청춘들을 위로하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메일 : monkhaemin@naver.com       트위터 : @haeminsunim      
블로그 : http://blog.naver.com/monkha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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