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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36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6-5. 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亦無非法相.

6-5. 어째서 그러한가? 이 뭇 중생들은 다시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을 것이며, 법의 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의 상이 없다는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강해] 無法相은 실체의 부정이다. 無非法相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無我,” 그것이 실체화 되어 또 하나의 我를 형성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 처음 도올이 오해한 금강경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을 때는 금강경의 대의에 대한 오해를 말하려 했는데 어느새 문자의 해석을 짚어보게 되었다. 이는 금강경의 대의가 금강경 문자의 해석에서 오는 연기의 실상이므로 이를 짚지 않는다면, 도올의 오해는 근거없는 나만의 독백에 그칠 것이 뻔해, 한문해석에 자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석가여래에게 입은 가피를 믿고 디리대 보는 것이다. 거기다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진리인식은 불입문자라고 할 만큼 문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현상이 안팎으로 온통 이 깨달음인 것이어서, 이거라고 말하면 저건 빠진 것 같고, 저거라고 말하면 이건 아닌 것으로 되는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인 금강이니, 이 금강경의 해석문이 거칠고 문맥이 난마 같을 것임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도올은 분명 이 금강을 가르키는 금강경을 오해하여 이 오해의 강해를 한 것이니 이를 듣고 보는 이들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을 도올의 말을 다라 오해하여 그나마도 석가여래의 깨달음이 희미해 사라지기 직전인데, 이런 큰 어른이 이마져 아작 내 엉뚱한 금강의 부처가 세워져 역대불조들의 일이 허사가 될까, 아니다. 아녀! 이런대도, 오해의 강해란 대도, 이는 분명 진리의 진실임이니, 이에서조차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아는 이 진리인식의 깨달음은 마땅히 격발하는 것이니 근심할 일은 아니다. 다만 쪼무래기 같은 내 말에서 제발 도올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이 금강의 진리인식이 격발해 그 유려한 문장력으로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밝힌 正解의 금강경을 다시 한 번 강해하여 이 땅에 완전한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의 젖이 강물로 흐르게 하길 기도할 뿐이다.

금강경에 가장 흔하게 나오는 문자 중에 하나가 是자일 것이다. 이 是자는 대개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함의한 문자인 보리살타를 지칭하는 것이다. 문자라니까 단순한 문자만이 아니라 그 보리살타란 말에 함의된 실제까지를 가르키는 말임은 두 말할 것이 없다.

본 분절의 是諸衆生의 是도 如來로서의 보리살타를 지시하는 대명사다. 곧 ‘여래로써의, 또는 여래에 의한 모든 중생’이란 뜻이다. 도올처럼 ‘이 뭇 중생’이란다고 해서 이 ‘이’가 이 뜻이 아니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어진 뒤 문장의 해석을 보면 여래로써의 모든 중생이 이 중생으로써의 작동, 곧 삶으로써의 지혜를 말한 게 아니어서, 이는 석가여래의 깨달음과는 아득한 이해의 말이랄 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올의 이 말이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이 아닌 건 아니다. 왜냐면 모든 말의 언어문자는 이 언어문자의 형상이며 그 뜻의 안팎이 온통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이므로 어떤 말이든, 어떤 문자이든 온통 진리의 진실인 때문이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에 얼마나 많은 위경이 있는 지는 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석가여랜 이 여래인 悉知悉見으로서의 모든 중생, 곧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 모든 성품의 삶이 독립적 개체로써의 소승이며 동시에 통합적 전체로써의 대승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이며 동시에 이 대·소승적 不動의 작동태로써 하나의 보리살타인 여래임을, 부처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은 애초에 석가여래의 인식범위를 인간의 윤리적 문제에 국한해 놓고 있으므로 이 금강경도 사람의 살림살이를 말한 것 정도로 알아 강해하니, 이 석가여래의 금강이 금강답지 못해 못내 아쉽기 짝이 없다.

본 분절은 이렇게 이해한 해석이어야 한다.

‘왜냐면, 여래로써의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는 여래로서의 총체적 인연·인과의 복덕으로 작동하는 지혜이므로,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라는 四相으로써의 대·소승적 존재와 현상으로 실재하는 실체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상으로써의 법이랄 것도, 사상으로써의 법이 아니랄 것도 없는 오직 이 사상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여래, 곧 보리살타인 것이다.’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뭇 중생들이 ‘다시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을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사람들이 하도 이렇게만 해석해 이에 인이 배겨 그냥 이것인 줄로만 알고 의심하지 않지만(부처님 말씀이라고 무조건 믿는 것인가?), 잘 보면 의심 덩어리다. 대체 어째서 중생들이 이 四相이 없을 것이란 것인가? 앞 분절에서는 ‘중생이 뭔 복덕을 한량없이 얻는다.’는 걸, 뭔 여래는 다 알고 본단다고 해 놓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아, 이 四相으로써의 대·소승적 삶의 복덕이 아니라 뭔 다른, 혹 의·식·주가 강물로 넘치는 복덕이란 말인가? 다행히 이 뒤에 오는 말, 無法相을 ‘법의 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고 해석하고는, 이는 ‘실체의 부정’이라고 말해, 이 분절이 중생으로써의 사람살림만을 말한 것이란 대도, 이 중생이 여래로써의 작동성이라는 인식의 빛을 설핏 비치기는 했지만, 곧바로 無非法相이란 말을 ‘법의 상이 없다는 생각조차 없다.’라고 풀고 이를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고 이해하여 말하는 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중생이 대·소승적 法相으로써의 四相으로 작동하는 시·공간적 실제를 부정하고, 다만 이런 생각 따위 관념이나 사람이 버려야 한다고 하는 건, 여전히 석가여래의 깨달음, 곧 이 금강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이 이 말의 뜻이 ‘“無我,” 그것이 실체화 되어 또 하나의 我를 형성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까지 하고 있지만, 이조차 내가 나를 실재의 실체라고 아는 것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실재의 실체랄 게 없는 나라고 해서 無我란다고 하는 또 다른 실재의 실체를 만든다면, 이 또한 곤란한 거란다고 말하는 것은, 일응 그럴 듯한 말이긴 하다.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이 사람 삶으로써의 뭘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인식이라는 한 생각을 만드는 일이고 보면 도올의 이 말이 그럴듯하긴 하지만, 그럼 대체 뭘 어떤 앎을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큰 어른들이 노상 이렇게만 말하니 후인들이 하는 행실을 보시라. 이런 고귀한 사람성품의 생각의 능력이나 없애는 걸 만든다고 쭈구리고 앉아 새파란 청춘을 허망으로 불태워 버리고 있잖은가? 자기를 없애는 거라고, 찌까다비 문둥이를 실천하는 것이 부처를 만드는 거라고, 대승보살이라고.

석가여랜 지금 여래로써의 중생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500년, 오온으로써의 空이며, 空으로서의 시·공간적 중중무진의 작동이므로 無我인 보리살타임을 설명하여 이를 아는 깨달음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6-6.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則爲著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 卽著我人衆生壽者.

6-6. 어째서 그러한가? 이 무릇 중생들이 만약 그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다. 만약 법의 상을 취해도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강해] 若心取相은 “그 마음에 존재의 상을 갖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마음의 상을 바로 밖에 있는 대상의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 若取法相은 中村元가 마치 “若法取相”인것 처럼, 若心取相과 대비하여 번역했는데(따라서 이기영도 오독), 若取法相은 “법에 상을 취한다”가 아니고 “법의 상을 취한다”이다. 이것은 說一切有部의 “我空法有論”과 같은 것이다. 즉 法의 실체성(객관적 존재성)을 직접 인정하는 것이다. 첫 번째 문장은 마음의 법에 관한 것이요, 둘째번 문장은 대상의 법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개 모두가 결국 아·인·중생·수자상의 오류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앞의 주절에서는 “則爲著···”라 했고, 뒤의 주절에서는 “卽著···”이라 했다. 양자에 미묘한 뉴앙스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 이 분절 역시 도올처럼 해석하여 강해를 해선 문법적·문맥적 해석의 강해로는 맞는지 몰라도 도무지 지혜의 작동이며 동시에 부동의 선정으로써의 여래, 곧 보리살타의 불성이며 부처로써의 중생을 말하는 석가여래는 보이지 않아 아득하기만 하다.

이 분절의 해석은 ‘여래로써의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는 이 여래로써의 지혜작동인 이 맘으로 취해지는 상이므로, 이 맘의 법칙으로 사로잡히게 되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인 것이며, 이 맘의 지혜작동으로 취해진 이 법칙이라는 상으로 즉해 사로잡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인 것이다.’

여기서의 若心이란 말은 ‘가정으로써의 사람생각’이 아니다. 이 말은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함의한 여래로써의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 곧 지혜작동이란 말을 격의한 말이다. 저 원효가 말한 “일체유심조”라 할 때의 心은 이것인 것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문장’은 여래로써의 중생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총체적 인연·인과의 四相으로 작동하는 지혜로써의 작동성인 불성이며(若心取相, 則爲著我人衆生壽者), ‘둘째번 문장’은 동시에 이 불성으로써의 작동성에 의한 선정으로써의 작동태(若取法相, 卽著我人衆生壽者)인 부처로써의 보리살타를 말해 이를 아는 진리인식의 한 생각을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첫 번째 문장’은 중생으로서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보리살타의 여래로서의 작동성인 지혜를 표상한 이 맘에 잡혀 취해지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을 말한 것이고, ‘둘째번 문장’은 이 지혜작동의 맘에 잡혀 취해지는 이 법칙으로써의 상으로 사로잡힌 이 작동태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인 이 四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여래의 중생은 이런 사상 따위로 사로잡히는 작동으로써의 지혜인 작동성이라는 법상이며, 이 법상으로 사로잡힌 不動의 작동태임을 석가여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태며 동시에 그 작동성으로써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임을, 500년으로서의 空, 無我인 연기의 실상임을 말해 이를 아는 깨달음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은 이를 말하지 않고 중생인 사람이 맘속으로 뭔 상을 취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고, 또 뭔 ‘법의 상을 취해도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해, 대체 그런 생각의 맘을 쓰지도 말고, 그런 맘의 생각 따위도 없애버리라고 대책없이 말하는 건, 너무도 분명한 이 금강경의 금강을 강해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올이 [강해]에서 ‘若取法相은 “법에 상을 취한다”가 아니고 “법의 상을 취한다”이다.’라며 이것은 ‘法의 실체성(객관적 존재성)을 직접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말은 ‘앞의 주절에서는 “則爲著···”라 했고, 뒤의 주절에서는 “卽著···”이라 했다. 양자에 미묘한 뉴앙스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한 말과 꼭 같은 이 금강경을 오해한 이해의 말이다.

若取法相의 정확한 문법적 해석이 어떤 건지는 이 쪽 전문가가 아니므로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도올이나 中村元 간에도 서로 달리 해석하는 걸 보면 똑 떨어지는 해석은 없는 것이지 싶다. 어떻게 해석하든 모든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런 해석이 진리의 진실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는 진리의 진실을 말한 건 아니다. 이 금강경은 진리의 진실을 말한 것이므로 이를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올이 이 금강경을 강해하며, 설령 法이라할지라도, ‘法의 실체성(객관적 존재성)을 직접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말을 함부로 하는 건, 어떤 法이든 法이 진리의 진실임을 말한 것이 아니다.

또 “則爲著···”과 “卽著···”이라는 말이 ‘미묘한 뉴앙스의 차이’가 있단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애매한 말은 너무도 분명한 금강을 말하는 태도가 아니다. “則爲著···”, 이는 보리살타인 여래로써의 맘으로 비쳐져 사로잡히는 이 법칙작동으로써의 무엇, 일테면 四相 따위로써의 작동성을 표현한 말이며, “卽著···”은 이 법칙작동에 의해 사로잡힌 작동태를 표현한 말이다. 著라는 문자는 삼마지, 삼매를 표상한 말로써 이 말들은 여래로써의 중생이라는 이 ‘삼매’며, 그 작동의 삶인 ‘삼매작동 중’임을 표현한 말이다.

석가여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서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는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는 작동성이며 동시에 그 작동태로써의 선정인 맘·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아는 이 진리인식의 깨달음을 오직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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