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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거리감을 허용하세요

박미라 2017. 12. 06
조회수 1987 추천수 0

사진6-.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결혼 16년 차, 중3 아들과 초6 딸을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작년에 ‘중2병’ 걸린 아들 때문에 고생했지만 그래도 남자아이는 어찌어찌 잘 넘긴 거 같아요. 문제는 올해 초6인 딸내미입니다. 우리 딸을 설명하자면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의욕 넘치고 전교 1등 놓치지 않고 사교육 없이 대학 부설 과학영재원에 입학했으며, 피아노는 대학교수님이 전공을 적극 추천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한마디로 팔방미인이랍니다. 문제는 얼마 전부터 생리를 시작했고 말수가 적어졌으며, 사자소학을 저와 함께 공부한 아이라 예의 바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던 아이였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요즘 그런 제 딸을 보면서 제 가슴에 불덩어리를 넣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 딸의 하교 시간에 잠깐 회사에서 나와 맛있는 간식 좀 사주려고 학교 앞에 가서 연락했더니 싫다더군요. 한마디로 딱 잘라서…. 눈물을 흘리며 운전하고 가는데 너무 비참하더라구요. 엄마의 뜻을 저버린 딸의 마음은 어떤 심정일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저는 자꾸 사랑한다고 얘기합니다. 너무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구요. 밉지만 딸의 얼굴을 보면 다 사랑스러워요. 눈도 코도 입도 모두가 다…. 그런데 그런 나를 딸은 이제 싫다고 합니다. 제가 많이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이번 주말에는 웬일인지 저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주더라구요. 단둘이서 영화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자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저는 좀 두려워요. 또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요.


저의 요즘 최대 고민은, 딸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 주차장에서 몇몇 친구들과 춤을 연습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거예요. 예전엔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 가서 숙제나 공부를 했는데요. 너무 걱정돼 담임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선생님도 날마다 보며 퇴근하시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시더라구요.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데 아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게 너무너무 안타깝고 속상하고 그렇답니다. 오늘은 그래서 한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짜서 내밀어볼까 하는데 솔직히 두렵습니다. 호응이 없을까봐, 절대 못 한다고 할까봐요. 이렇게 애가 타는 저 정상인가요? 우리 딸 정상일까요? 코끼리맘


A 코끼리맘님의 사연을 읽어보니 딸과 친구처럼 사시네요. ‘친구 같은 모녀 관계’는 요즘 엄마들의 로망입니다. 하지만 나는 ‘친구 같은 모녀 관계’의 이면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자식이라는 본능적인 관계에 친구 관계까지 더해지면 엄마와 딸의 상호의존성과 밀착 정도는 상상을 넘어섭니다. 특히 딸이 어릴 때부터 엄마와 이중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면 둘 사이의 관계 맺기에 혼란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실 친구 같은 모녀 관계는 어디까지나 엄마 편에서 그렇습니다. 딸과 친구처럼 지내면서 젊어지는 기분을 만끽하다가도 엄마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태도를 바꾸어 부모 노릇을 하면서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니까요.


모녀 관계가 밀착되어 있을 때는 딸아이가 친구를 잘 사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아이가 가족에게서 모든 관계 욕구를 해소하려 한다면 그게 오히려 걱정이겠지요. 다행히도 코끼리맘님의 따님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엄마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또래 친구와의 관계를 본격화했네요.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고 있으니 축하해줘야 할 일입니다.


 


딸에게 거절당해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니 모녀 관계가 역전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녀 관계가 역전되면 엄마가 딸을 부모처럼 생각해서 의지하고, 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그 또한 딸 편에서는 참 혼란스러운 일일 겁니다.


딸을,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해줄 존재로 보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그런 엄마들에겐 딸이 엄마의 내면에 잠재된 가능성이나 미래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딸과 일심동체가 되어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욕을 얻고, 딸을 통해 자존감을 느끼며, 시시때때로 그녀의 삶을 엿보면서 살아갑니다. 나중엔 그것이 딸의 삶인지 엄마의 삶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딸의 인생을 빼앗고, 무엇보다 엄마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치는 위험천만한 모습이지요.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을 외면한 부모가 그 공허함을 보상받기 위해 자식에게 매달리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우울함을 자식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대체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자식 문제로 전전긍긍하면서요. 그럴 때 자식이 느끼는 인생의 무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래 묵은 부모의 한, 부모의 꿈까지 짊어졌으니까요.


코끼리맘님, 물고 빨던 사랑스러운 자식이 당신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니 심장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허전하시지요? 한 시간 단위로 공부시킬 계획은, 제 눈에는 딸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자기 품에 가두고 싶어하는 엄마의 애절한 욕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이를 붙들려 한다면 당신의 우려대로 아이는 엄마의 요구를 거부할 거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실망할 겁니다. 그러니 딸과의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을 허용해주세요.


그리고 코끼리맘님은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신에게도 다양한 삶의 영역들이 있을 겁니다. 직장 일, 부부 관계, 그 밖의 수많은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의 취미, 미래 계획 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 삶의 영역들을 잘 가꾸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맛봐야 합니다. 딸의 사랑을 잃을까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당신 내면에 돌봐야 할 어떤 심리적 측면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미뤄두고 외면한 인생의 문제가 있는지 가만히 되돌아보세요.


그렇게 매시기 당신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과제, 다시 말해 발달과업을 해결하고 완수해야 합니다. 발달심리학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나름의 발달과업이 있다고 이야기하지요. 그 과업을 잘 완수했을 때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성숙한 엄마와 딸이 맺는 모녀 관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정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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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심신통합치유학 박사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여자와닷컴> 콘텐츠팀장을 지냈고, 마음치유학교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안내중이다. <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완벽하지않아도 괜찮아>등의 저서가 있다.
이메일 : bless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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