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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가고 싶다

홍성남 2018. 01. 15
조회수 4112 추천수 0


사막-.jpg


이집트에 갔을 때 영화에서나 보았던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노예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 만든 것일까?

하지만 가이드의 말은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피라미드는 무임금으로 노예를 부려 쌓아올린 잔인한 축조물이 아니라, 밥벌이를 하게 해준 고마운 공사였답니다. 나일 강이 범람하는 동안에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고,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한 돈을 마련하라고 피라미드 공사를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피라미드를 폭정의 상징물로 보았던 것은 편견이었습니다.

피라미드는 그 웅장함에서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볼 만한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지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집트를 떠올릴 때면 피라미드가 아니라 사막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사막으로 가는 길, 차 안에 탄 사람들이 한결 같이 궁금해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용변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이드가 간단히 말했습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 해결하시면 됩니다.

화장실이 없나요?

없습니다.


다들 웅성거렸습니다. 용변은 어떻게 하나, 밤에는 몹시 춥다는데 잠은 잘 수 있을까,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앞두고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버스로 사막의 유일한 도로를 세 시간 동안 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프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들어가니 목적지가 나왔습니다. 베두윈 족 청년들이 텐트를 쳐주고 모닥불을 피워주었습니다.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각자 용변도 해결했습니다. 걱정한 것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용변을 보고 나서 모래로 덮어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애꿎은 물을 사용할 일도 화장실을 따로 지을 필요도 없으니 오히려 편리한 시스템입니다.


밤이 되면서 몸 상태가 영 시원찮아졌습니다. 할 수 없이 먼저 이인용 텐트 안으로 들어가 옷이란 옷을 죄다 주워 입고 잔뜩 웅크린 채 잠을 청하는데 이건 도무지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텐트 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에 정말 오랜만에 살을 에는 추위를 느꼈습니다. 텐트 안이 더 추울 거라던 가이드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지요.

반면 베두윈족 청년들은 모래 바닥에 매트리스 한 장 깔고는 모포를 둘둘 말아 몸을 감싼 채 드르렁드르렁 마음껏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잘 자는지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베두윈족들의 삶은 너무나 간결합니다. 매트리스 한 장, 모포 한 장,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취사도구만 있으면 어디서든 만사 오케이입니다. 사막으로 오는 길에 군데군데 벽돌을 쌓아 벽만 세워놓은 집들을 보았습니다. 지붕이 없어도 사방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바람막이만 있으면 괜찮은 것입니다. 문명이란 이름의 기구들에 내가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 그런 것들에 얼마나 많은 돈을 소비하고 사는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추위에 떨다가 견디다 못해 텐트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닥불에 다가앉아 불을 쬐니 신기하게도 몸에서 냉기가 금세 빠져나갔습니다. 그렇게 모닥불 곁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지요.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모닥불 가로 나와 앉기 시작했습니다. 옹기종기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새벽이 왔습니다.

새벽의 찬 기운 때문인지 배가 살살 아파 와서 작은 돌 언덕 뒤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용변을 보려는 순간 너무나 환상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늘에는 밝은 둥근 달이 떠 있고, 그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사막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달빛 아래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사막, 백사막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볼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사막에 은둔하며 수도생활을 했던 수많은 수도자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했는데, 사막의 아름다움 앞에 서 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 사막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서 수도자들이 여기서 하느님 체험을 하고, 평생 도시로 돌아가지 않았구나.

사막은 황량한 곳이라는 그동안의 생각은 편견이었습니다. 오히려 문명을 자랑하는 도시들이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내 방에는 이집트에서 사 온 그림 한 장이 걸려 있습니다. 사막에 낙타 한 마리가 덩그러니 서 있는 그림이지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사막에 가야지.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사막을 찾아가 문명에 찌든 영혼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내 마음에 사막 하나 만들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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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저 높이 계신, 두렵고 경외스런 하느님을 우리 곁으로 끌어내린 사제다. 하느님에게 화내도 괜찮다면서 속풀이를 권장한다. <풀어야 산다>, <화나면 화내고 힘들 땐 쉬어>, <챙기고 사세요> 등이 속풀이 처방전을 발간했다.
이메일 : doban87@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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