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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46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一相無相分 第九

9-1.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9-1.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뇨?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강해] 이 제9분은 역사적으로 금강경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매우 중요한 분이다. 금강경은 소승과 대승이라는 구분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당대에 성립한 부파불교에 대한 통열한 반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바로 이 分은 금강경이 쓰여진 당대의 부파불교의 통념에 대한 매우 통열한 비판의 어조를 깔고 있다. 불교의 언어는 매우 밋밋하고 두루뭉실하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배면에 숨어있는 역사적 정황을 날카롭게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四向四果”라고 하는, 소승 부파불교가 인간수행의 과정으로 설정한 4개의 階位에 관한 것이다. ·····(사향사과의 계위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 ·····. 아라한은 ·····, 소승불교에서 인간이 수행을 通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이미 學道가 完成되어 더 이상 배움이 필요없기 때문에 無學位라 하고, 그 이하의 3位를 “有學位”라고 하는 것이다. ·····. 아라한은·····. 앞에서 말한대로 붓다의 위치보다는 아래로 설정된 것이다. “四向四果”라 할 때 “向”은 修行의 목표를 말하며 “果”는 도달한 경지를 나타낸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8位가 된다.

우선 소명태자의 分이름은 그가 만약 이 내용에 즉해서 얘기했다면, 이런 의미가 될 것이다: 이 四向四果의 어느 한 모습도 참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수행자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 한 모습도 근원적으로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본문의 “須陀洹果”는 수다원의 경지를 나태내는 말이다. 즉 수다원의 向(발심)을 가진 자가 수다원의 果(결과로써의 경지)를 획득했다할 때, 우리는 그 획득함을, 획득했다는 자부감대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 이 分의 내용은 읽어보나마나 소명태자가 붙인 제목이 보여주듯 相(서로의 因으로 마주보는 한 공간의 緣)으로써의 이 하나하나의 모든 존재와 현상인 이 제각각의 모든 성품인 一相은 총체적 인연·인과의 대·소승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므로 각각의 성품으로써의 이 相으로 실재하는 실체랄 것이 없는 無相으로써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도올이 말한대로 이 四向四果는 ‘어느 한 모습도 근원적으로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맞다. 그러나 ‘본문의 “須陀洹果”는 수다원의 경지를 나태내는 말이다. 즉 수다원의 向(발심)을 가진 자가 수다원의 果(결과로써의 경지)를 획득했다할 때, 우리는 그 획득함을, 획득했다는 자부감대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건 아직 이 금강경이 말하는 금강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어 애매함에 머물러있는 사유의 말이다. 이 사향사과는 실재의 실체로써 사람이 획득할 수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我는 이런 果 따위로 작동하는 삶으로써의 向임을 말한 것이다.

소명태자는 이 分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이 四向四果라는 相으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설명한 것으로 보고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이다. 즉 一相無相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이 사향사과의 선정지혜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인 相으로써, 이 四果로써의 관념적 허상인 시·공간적 부동태로써의 선정이며, 이 四果로써의 시·공간적 실제로 작동하는 四向으로써의 작동성인 지혜의 보리살타임을 말한 것이다.

9-1.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무엇이냐? 수다원이라는 이미 지어진 이 뜻의 생각은 내가 실재의 실체로써의 수다원과라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것이냐?” 당근, 수보리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 相이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사람의 이름 뒤에 붙어 존칭으로 쓰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를 우리가 흔히 쓰는 ‘씨’나 ‘선생’ 또는 ‘님’ 정도의 쓰임새라고 한다. 이런 정도의 이해라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일본인들이 이 相자를 이름 뒤에 붙이는 진짜까닭은 상대와 내가 각각 이 因의 보리인 선정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살타로써의 緣인 이 보리살타임을,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표현한 말이기 십상이다. 너무 나간 견강부회라고만 치부하지 마시라. 우리가 지금 근대교육에 의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 속에서 사니 삶의 내용이 다양한 것이지 단순한 하나의 이념을 종교적 국시로 하던 왕조시대에는 이 종교적 이념의 실천이 곧 실제 삶으로써 과거역사의 사실이었음을 안다면 이 일본의 相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分을 도올처럼 해석하고 설명해서는 ‘밋밋하거나 두루뭉실’하지 않고 분명한 이 금강경의 금강의 지혜가 뭐가 뭔가 일 수가 없다. 도대체 나는 맘속으로 사향사과 따위는 물론 다른 아무 생각도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내가 수행자라면 나의 이 몸뚱어리 모습뿐만 아니라 맘속의 생각 따위 ‘어느 한 모습도 근원적으로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되레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모순에 빠트리니, 대체 불교가, 이 금강경의 금강이 뭔지 감이 안 잡히게 말하는 건, 비록 도올의 이 말이 금강인 연기의 실상이긴 한데도 연기의 실상인 금강을 말한 말과는 아득한 금강의 말이다.

도올이 이 금강경을 보고 이런 해괴한 생각을 말하는 건 분명 이런 생각의 말을 낳은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말은 이 금강경이 말하는 금강인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 곧 무상정등각과는 아득한 생각의 말이다.

금강경은 말하는 것이다. 설령 사향사과라는 생각을 생각한대도 이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보리살타에 의한 반야바라밀, 곧 지혜작동이다. 즉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이런 四果로써의 관념적 허상인 부동태로써의 선정이며, 이 四果로 작동하는 四向으로써의 작동성인 지혜의 보리살타임을 말한 것이다. 이 금강의 지혜를 말하지 않고 다만 금강의 지혜로 말만 하는 도올은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과는 아득한 생각의 말을 하는 보살님이다.

이 분절의 四向四果는 도올이 말한대로 당시 역사적 상황에 대한 통열한 비판의 어조가 날카롭게 깔려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단 부파불교에 대한 것일 뿐만은 아니지 싶다. 이 사향사과 즉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이라는 이 과·향의 개념과 말은 부파불교도들은 물론 석가여래가 만든 말의 개념이 아니라 이미 先釋尊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의 말이지 싶다. 이 금강경이 생길 때의 인도엔 많은 불교학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四果는 단순히 이 학교의 학년제도이기 십상이다.

요즘이야 우리나라에 대학이 하도 많아 대학졸업을 해도 별로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을 졸업했다하면 당근, 엄지척이었었다. 아니다. 좀 변해서 그렇지 여전하다. 지금도 s y k나 외국의 유수한 대학 박사학위라면 다들 껌뻑이다. 저 때도 그랬었지 싶다. 학사·석사·박사 등 이름만 바뀌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지 않은가? 그때의 사회상황에 대한 통열한 비판이 이 금강경의 내면에 숨어있음은 분명하지 싶다. 앞에서 이미 거론한 四相인식도 이와 같은 것이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이란 대도, 학사·석사·박사란 대도, 1·2·3·4학년이란 대도, 어린이·소년·청장년·노년이란 대도, 불혹·지천명·이순··상수란 대도, 아·인·중생·수자상이란 대도, 이는 이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시·공간적 부동태인 선정으로 실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이런 상대적 인식의 실제 시·공간적 작동인 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이 분절은 말하여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금강의 지혜·반야바라밀을 날카롭게 분별해 내 말해야 진리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분별의 인식·지식이 없음을 ‘불교의 언어는 매우 밋밋하고 두루뭉실한 듯이 보인다’라는 말로 감추고 뭔 불교·불경의 과거 ‘역사적 정황’이나 날카롭게 분석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과는 아득한 손가락질이다. 도올과 같은 대지식인이 이런 식으로 불교인식을 표현하는 건 ‘매우 통열한 비판’의 말을 들어도 싸다.

이 분절의 내용은 여기서 다 한 것 같으므로 다음엔 도올의 영판 엉뚱한 말마디만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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