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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딸아이의 분노를 봐주세요

박미라 2018. 02. 04
조회수 2995 추천수 0


저에겐 고1 아들과 고3 딸이 있는데 딸아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딸 초1 때 주말부부를 했고, 남편은 아주 가부장적이고 아이들에 관해서는 관심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무섭게 키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남편이 많이 변해서 아이들과도 친해지기 시작했고 저와의 갈등도 거의 해소됐습니다.

제가 직장생활로 늦게 퇴근해서 아이 둘이 자주 싸웠습니다. 딸이 아들한테 매번 폭력을 행사했고 저는 그런 딸에게 폭력은 나쁘다고 강요했죠. 딸은 딸과 아들을 매사 엄마가 차별하고 아들이 말을 안 들음에도 매를 들지 않고 그냥 말로만 하지 마라 한다면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과 남편이 부딪쳐 아빠가 딸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집을 나간 딸은 4일 정도 친구 집에 머물다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딸과 아들의 갈등은 더 깊어졌고 아들이 커져서 방어를 시작해 싸움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저는 이러다간 둘 다 망치겠다 싶어 딸아이에게 집과 학교 중간 정도에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딸이 몇 년 전부터 혼자 나가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구요. 저는 아이가 먹을 음식을 주말마다 날라주고 청소도 해줬는데 딸은 제가 드나드는 걸 싫어했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외국에서 8개월 정도 일하다가 선물도 전해줄 겸 딸을 보러 갔죠. 딸을 만나고 나오는데 인사도 않고 문을 닫아버리자 순간 남편이 화가 나서 애한테 또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저도 남편을 말리고 있었는데 딸은 파출소에 가정폭력이라고 신고를 하더군요. 아이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한 것 같은데, 그때 딸은 엄마가 자기를 부끄럽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하고, 자기도 힘든데 엄마가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자기한테 그런다며 그때부터 저한테 더 심해졌고, 아예 가족들과 단절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담에서 딸은 아빠 같은 사람과 사는 엄마도 이해가 안 되고 엄마를 바보 같은 사람이라 했다네요. 하지만 애 아빠는 단순해서 잘 구슬리면 그지없이 편한 사람이에요.


친구도 없이 가족과도 단절한 채 혼자 살아가는 딸이 안타깝고, 어렸을 때 우리 부부의 갈등으로 원만한 가정에서 못 자라게 한 데 대한 미안함이 있기에 몇 번이나 사과하고 엄마도 잘 몰라서 그랬다고 했지만, 딸은 여전히 혼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쁜 친구들과 사귄다든지 하지는 않고 자기 생활은 야무지게 하고 있으나,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고 혼자만 잘났다는 생각에 사는 것이 정말 안됐고,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김연희


사진9-.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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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화해나 평화, 용서 같은 결과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차의 합당함과 옳고 그름을 공정하고 명백하게 밝히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관계가 좋아졌다면 과거의 불편한 일 따위는 문제 삼지 않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따져서 진지한 사과와 평가가 있어야 마음을 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추측건대 김연희 님은 전자에, 따님은 후자에 해당하는 분 같네요. 더구나 10대 후반의 청소년이라면 논리적인 사고가 발달하고, 원칙적으로 무엇이 더 옳은가를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또 이상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주변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일 수 있습니다.


따님의 관점에선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엄마의 태도도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부모의 불화와 부재로 딸의 가슴속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부모의 싸움은 아이들에게 지진이나 해일 등의 천재지변처럼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선 세계의 중심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어느새 아빠를 이해했고, 심지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따님이 엄마 편이었다면 배신감도 느꼈을 거예요. 딸아이는 아직도 아빠와 불화하고 있으며 아빠를 용서하지 못했는데,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가족들은 자신을 이상한 애로 손가락질합니다. 결과적으로 가족 내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겁니다.


우리 문화는 화해나 용서를 성숙한 태도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따지는 행동은 경직되고 미숙한 태도로 흔히 평가합니다. 김연희 님 역시 따님의 행동을 ‘혼자만 잘났다’고 하는 철없는 짓쯤으로 여기시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선 아이의 분노를 절대 풀어줄 수 없습니다.


딸의 행동이 나보다 미숙하고 철없다고 생각지 마시고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르다는 건 내가 함부로 추측하거나 평가할 수 없으며, 상대에게 직접 물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딸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사과조차도 엄마의 추측으로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지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그 아이만의 독특한 생각 회로에서 나온 자기만의 의견이 있을 겁니다. 책임 추궁을 당하는 느낌이라 힘드시겠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세요. 이해될 때까지 묻고 또 물으세요. 그러면 아이 관점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대목을 발견하실 겁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분노가 부모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사실 따님의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사람은 남편인 것 같습니다. 남편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지난 세월 가족에게, 특히 딸에게 가했던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진지하게 사과하시면 좋겠습니다. 추측건대 따님은 아빠와 성격이 닮았을 겁니다. 그래서 서열과 권위를 중시하는 아빠의 ‘무서운’ 태도를 가장 많이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없는 동안 아빠에게서 배운 힘이나 위압적 태도로 동생을 다루려 했겠지요. 아이의 그런 경직된 마음은 아빠의 분명한 사과와 엄마의 수용적 태도가 가장 빠르게 녹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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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심신통합치유학 박사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여자와닷컴> 콘텐츠팀장을 지냈고, 마음치유학교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안내중이다. <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완벽하지않아도 괜찮아>등의 저서가 있다.
이메일 : bless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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