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도올의 금강경 오해 51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0-2.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實无所得.”

10-2. “세존이시여! 여래께는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실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강해]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앞의 질문이 “여래가 연등불(디빵까라따타가타) 아래서 얻은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의 뉴앙스로 되어 있다. 여기 “所得”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즉 “얻은 그 무엇,” 바로 그 무엇이 실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보리의 대답은 실로 그 무엇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無化시키고 空化시켜 버리는 것이다. 여래가 전생에서 샤카의 성자(샤카무니=석가모니)가 됨을 확약받았기에 성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小乘的 발상이요, 대승적 발상이 아니다.

--- 도올의 오해는 심각하다. 여래를 오직 석가여래로만 보고, 석가여래는 자기의 삶만 얘기하고 수보리는 이를 듣고 석가여래의 삶만 얘기하는 것으로 이 금강경을 이해하는 건 심각한 오해다. 이들은 보리살타의 여래, 곧 반야바라밀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연기의 실상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본 분절에서는 연등이라는 부처가 연등이라는 지혜의 법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여래로써 연기의 실상이므로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0-2. “세상이 존경하는 이여, 여래는 아득한 과거의 연등불의 처소란 대도, 이 여래법으로써의 연등불이라는 실재의 실체랄 것으로 얻어진 것이 없는 것이지요.”

앞에서 석가여래가 연등불을 물은 것은 물론 도올이 극구 부정하는 실체로써의 연등불이냐고 물은 것이긴 하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물음은 여래로써의 연등불이 보리살타라는 법으로써의 연등불인데 이 연등불이라는 여래가 실재의 실체로 있냐는 물음이다. 아마도 당시에 여래나 연등불이나 보리살타라는 말이 뜻하는 걸, 오늘날의 우리들도 대부분 그렇게 알듯 실재의 실체로 알고 있었지 싶다. 석가여래는 이 인식의 고정관념을 혁파하고 있는 것이다. 맨 먼저 무상정등각·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부터 시작하여 四相이며 四向四果며, 여기 연등불 등이, 이런 이것으로 작동하는 반야·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므로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으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반야·지혜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이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까닭에 실재의 실체랄 게 없는 ‘無’, ‘空’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을 대책없이 ‘無化시키고 空化시켜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대체 이 금강경이 금강경이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 금강경은 또 말하지만 뭔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추구해야 한다는 인간의 삶의 윤리를 거론한 것이 아니다. 이 인간의 삶뿐만이 아니라 삼천대천세계로써의 중중무진인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온통 이 대·소승적 보리살타의 승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여래로서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이런저런 대·소승적 개념이며 이 개념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설령 석가여래 자기가 저 까마득한 과거의 연등불이라는 뭔 처소에서 얼라로 있을 때, 뭔 성자가 될 거라고 예언을 받았다면, 이는 지금 내가 이 지혜의 무상정등각으로써의 진리인식이라는 깨달음의 한 생각이 일어선 까닭은 단순히 내 머릿속의 뇌만 작동한 일이 아니라, 저 까마득한 과거조차도 이 한 생각의 인연으로 작동한 예언적 여래로써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말한 것이다.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0-3.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10-3.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뇨?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말이 되느냐? 아니 되느냐?”

10-4.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

10-4. “아니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까?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 하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장엄하다 이름하는 것이오이다.”

[강해] 여기에 나오는 “莊嚴”이란 말은 “vyuha”에 해당되는 말인데 그 원의는 “건립”(formation) “수식, 장식” “구조물” ·····, “성취하다, 완성시킨다, 성숙시키다”의 뜻이다. 따라서 “莊嚴佛土”라는 말에 해당되는 산스크리트 원문은 “佛土의 건립을 성취한다”라는 뜻이며, “莊嚴”이라는 한문의 동사적 형태는 “···의 건립을 성취한다,” “···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완성한다”의 복합적 뜻을 내포하고 있다.

漢字의 “莊” “嚴” 모두 “엄숙하고 질서정연하게 정돈한다”의 뜻으로, 佛國土나 佛의 說法의 場所를 아름답게 꾸민다, 또는 부처나 보살이 福德·智慧로써 자기 몸을 꾸민다는 등의 뜻으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인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문구 “是名莊嚴”을 모두 한국의 번역자들이 애매하게 오역하고 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 원문의 의미와도 합치하지 않게 번역하고 있다.

그 이름이 장엄하기 때문입니다.(이기영) 이 이름이 장엄하기 때문입니다.(석진오) 그 이름이 장엄입니다.(무비)

이 번역들이 한결같이 “是名莊嚴”의 “是名”을 “이(그) 이름”으로 명사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한문의 고유한 문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두루뭉실 학문”의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주 결정적인 오류는 그 문맥이, “장엄”이란 이름뿐이며, 그 이름으로서의 장엄은 부정된다는, 부정적인 맥락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스크리트 원문의 의미는 용수가 말하는 中論적인 언어적 표현의 부정을 말하고 있질 않다.

우선 “是名莊嚴” ·····. “이것을 장엄이라 이름한다”의 뜻이다. 여기에는 장엄이라 이름하는, 그 이름하는 행위에 대한 부정의 의미가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은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즉 장엄하게 내가 불토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 我相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것을 장엄하게 한다고 표현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우리의(보살의) 현실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궁극적으로 긍정되어야 할 사태며, 부정되어야 할 것은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는 나 보살의 의식이다. 다시 말해서 장엄하게 만든다고 ‘진정하게 이름할 수 있는 우리의 행위는 철저히 긍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제일 마지막 구절 “是名莊嚴”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장엄은 이름뿐이다”의 뜻이 전혀 아니다. 금강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의 오류가 모두 이 “是名”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스님들이 너무 쉽고 안일하게 “알음알이”니 “헛된 이름뿐”이니 하는 식으로 ‘보살의 사회적 행위를 내쳐버리는 空病’에 빠져있게 되는 병폐가 바로 이러한 해석의 오류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라오쯔는 말한다.

길을 길이라 이름하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길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 진리·연기가 있어 진실·실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실상이 있어 진리·연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진리가 있어 내가, 네가, 천지만물이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이 진리의 진실이며 연기의 실상이라고 알뿐이다.

먼저 라오쯔의 말을 보자. 도올의 해석문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길을 길이라고 이름하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길이 아니라니, 그냥 대충 우리가 길을 길이라고 이름하지만 그 길은 항상 변하는 길이라 항상 똑 같은 길이 아니란 건가 부다라고 알아들으면 되는 건가? 그야 뭐 당연한 것 아닌가? 아무리 콩크리트로 단단하게 포장한 고속도로라도 큰 홍수가 지거나 겨울 지나면 망가져 흠집투성이라 고치기 일수고, 뭐 또 돈 궁하면 멀쩡한 것도 파제껴 길을 길로 가만 두지 않아 노상 같은 길이 아닌데 항상 변하지 않는 그 길이 어디 있겠는가?

맞다. 이런 작동의 법인 도가 맞다. 법도의 실제인 이 길은 노상 변하는 길이다. 법도라는 관념적 부동태인 이름은 불변이지만, 그 실제 시·공간적 작동은 노상 작동하는 변화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이름의 이 법은 관념적 부동태로써 불변이지만, 이 법의 실제는 구테타 주역들을 감옥에 보내기도 하고, 어리버리한 대통령은 아작 내기도 하며, 또 이 법의 확장을 위하여 죽은 이들을 선양하기도 하며 단 한순간의 시·공간으로도 실재하는 살체랄 것이 없는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법이다. 우리가 법을 법이라고 하지만 이 법의 실제는 단 하나도 같은 유형이 없는 그침없는 변형작동이다. ‘은행강도는 10년 형을 살아야 한다’는 법이라고 꼭 같은 유형의 은행강도가 있을 것이며, 꼭 같은 10년의 옥살이 형태가 있을 것인가?

라오쯔는 이를 말한 것이다. 道可道, 非常道. “길을 길이라고 하지만, 실재의 실체라는 길이 아니다”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관념적 부동태로써 실제 끊임없는 시·공간적 작동으로써의 法道임을 말한 말이다.

본 분절은 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여래의 법은 저 까마득한 과거의 연등불법 때도 작동하는 실제인데, 이런 법으로써의 여래며 연등불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냐고 묻고 실재의 실체랄 게 아니라고,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불토도 장엄도 다만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부동태로써 실제 시·공간적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라는 이 금강을 석가여래와 수보리의 문답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0-3. “수보리야, 보살을 뜻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냐? 보살이 장엄불토라는 것이냐?”

10-4. “아닙니다. 세존. 왜냐면요, 장언불토란 건, 보살에 의한 여래의 법이지 장엄이 아닙니다. 이 여래의 법을 장엄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도올이 산스크리트 원문이나 한문에 대해서 완전 해박인 건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문자의 뜻을 정확히 알고 문장의 의미를 꿰고 있다고 해도, 이 문자나 문장의 뜻이 가르키는 저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진리인식이 없다면 이 금강경의 금강을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이 금강으로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도올은 이 ‘장엄불토’라는 산스크리트 원문이며 이 한문에 대한 이런저런 뜻들을 자세하게 궁구하여 밝히고 있지만, 이는 낱말이며 단어며 문장의 뜻일 뿐 정작 이런 낱말이며 단어며 문장이며 그 뜻의 까닭을 밝힌 진짜의 금강을 말하지 않고, 단지 이 단어며 문장의 뜻 따위가 표상하는 것들을 생각하지도 말고 ‘無化시키고 空化시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이는 이 금강경의 금강인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바르게 알지 못한 까닭이다.

‘장엄불토’는 장·엄·불·토로 써든, 장엄·불토로써든, 장엄불토로써든 각각의 언어며 그 뜻으로서의 관념적 부동태며, 실제 시·공간적 작동의 지혜인 반야바라밀로써 보리살타의 여래다. 보리살타는 여래, 곧 부처의 작동태로서 그 시·공간적 실제로 작동하는 삶을 표상한 말이며, 여래의 부처는 이 보리살타의 부동태로서의 관념을 표상한 말이다.

장엄불토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삼세를 일컬은 말로써, 이 삼세의 과거 현재 미래는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장엄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불토의 부처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장엄이라는 지혜작동을 이름하여 ‘장엄’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是名莊嚴이란 말은 이 뜻이다. 이를 말하지 않고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은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즉 장엄하게 내가 불토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 我相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것을 장엄하게 한다고 표현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우리의(보살의) 현실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궁극적으로 긍정되어야 할 사태며, 부정되어야 할 것은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는 나 보살의 의식이다. 다시 말해서 장엄하게 만든다고 “진정하게 이름할 수 있는 우리의 행위는 철저히 긍정되어야 한다”’고 해괴한 인간의 삶의 형식을 제시한 말로 이 분절을, 아니 이 금강경 전체를 이해한 말을 하는 도올은 분명 “금강”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여기 ‘장엄불토’라는 말도 불토를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는 뭔 我相의 내가 없어야 한다고, 그래야 이걸 뭔 장엄한다라고 표현‘해 줄 수 있다’고 엉뚱깽뚱한 말을 하는 건, 당연히 我라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생기고 사라지는 이 작동의 지혜로 이 불토의 삼천대천세계를 장엄하는 것인데, 이런 내가 없어야 ‘장엄’이라고 표현해 줄 수 있는 거라고, 이 뜻이 이 ‘장엄불토’라는 말이라면, 설령 이렇단 대도, 이 ‘장엄불토’라는 말이, 뜻이 가르키는 ‘금강’은 대체 어디 있는가?

지금,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과는 엉뚱한 생각의 말을 하는 도올이나, 여기에 토를 다는 나나, 이를 보고 손뼉을 치거나 삿대질을 하는 이들이나, 무반응이거나 아예 이런 일조차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이들은 물론 온갖 사물들조차도 온통 이 불토를 장엄하는 불토들이다.

도올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우리의(보살의) 현실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궁극적으로 긍정되어야 할 사태며, 부정되어야 할 것은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는 나 보살의 의식이다. 다시 말해서 장엄하게 만든다고 “진정하게 이름할 수 있는 우리의 행위는 철저히 긍정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보살’로써 진리의 진실임을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지 싶다. 이는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우리의(보살의) 현실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애매한 말로 현실로써의 삶인 자기를, 우리를 無化, 空化시키는 자살을 하지 못하게 하는 변명에 불과한 말이다. 이는 앞에서 까마득한 과거의 ‘연등불’조차도 여래로써의 지혜작동인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이라는 설명을 바르게 알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이 변명은 마침내 ‘부정되어야 할 것은 “장엄하게 만들고 있다”는 나 보살의 의식’이라고, 멀쩡한 ‘의식’의 이 생각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듭의 자가당착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운 좋은 보살님인 도올과 같은 이들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의 보리살타를 바르게 알아보지 못하고 보살로써의 인간은 사회적 행위의 현실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윤리로나 이 금강을 말한단 대도, 이런 생각의 말조차 진리의 진실인 보리살타로써 금강임을 밝힌 석가여랜 참말 죽은 이도 살려내는 약사여래가 분명하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게시판 글쓰기에 관한 안내입니다 [3] admin 2011-07-08 631828
2444 일반 봄이 좋은 건... imagefile yahori 2018-03-30 878
2443 일반 도올의 금강경 오해 54 seolbongchang 2018-03-25 493
2442 일반 도올의 금강경 오해 54 seolbongchang 2018-03-25 742
2441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인간의 矛盾은 인간의 한계성-45 joochang 2018-03-25 847
2440 일반 봄비 어서 오세요 imagefile yahori 2018-03-19 1180
2439 일반 도올의 금강경 오해 53 seolbongchang 2018-03-17 771
2438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시간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44 file joochang 2018-03-17 1042
2437 일반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imagefile yahori 2018-03-14 1106
2436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초월은 행복과 성숙의 교환품-43 joochang 2018-03-11 881
2435 [이벤트] 용서 도올의 금강경 오해 52 seolbongchang 2018-03-10 498
2434 좋은 글 행복한 사진 겸손 imagefile wonibros 2018-03-09 837
2433 일반 내리는 비가 이렇게 좋습니다. imagefile yahori 2018-03-06 566
2432 일반 티벳 큰스님 초청법회(켄뽀졸덴스님) image binhanl 2018-03-06 773
» 일반 도올의 금강경 오해 51 seolbongchang 2018-03-02 588
2430 일반 평화, 평화 이기를... imagefile yahori 2018-02-27 527
2429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인간의 불완전성-42 imagefile joochang 2018-02-26 484
2428 일반 도올의 금강경 오해 50 seolbongchang 2018-02-24 552
2427 일반 안녕 성화, 안녕 그리스~ imagefile wonibros 2018-02-21 898
2426 일반 우수지나 우리 그 길로 imagefile yahori 2018-02-21 1114
2425 일반 도올의 금강경 오해 49 seolbongchang 2018-02-18 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