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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61

14-4의 말미 是人則爲第一希有를 ‘이 지혜의 사람이야말로 제일희유한 사람인 ‘제일희유’의 이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입니다.’라고 해석했는데, 암만 봐도 영 맘에 안 든다. 여기의 是人은 앞에서 말한 오온이 공하므로 공한 시·공간으로써의 과거 현재 미래가 지혜라는 이 空法을 듣고 이 空법으로 받아 지녀진 자신을 信解·아는 중생으로써의 사람을 가르키는 ‘이 사람’이다. 則은 ‘卽’이라고 알아 ‘이 사람인 즉’이라거나 ‘이 사람이야말로’라고 푼대도, 이 則은 ‘지혜의 當來世後五百歲’라는 이 空法으로 드러난 인간이라는 한 법칙, 곧 하나의 지혜, 하나의 반야바라밀임을 가르키는 말이다.

인간을 포괄하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모든 성품은 이 空法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반야바라밀多로써 연기의 실상이다. 인간을 인간의 객체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인식하는 주체로 보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 인간성품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아닌 이 모든 존재와 현상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깨달은 앎은 구태여 선 이 불교의 깨달음과는 아득한 오해의 깨달음일 뿐이다.

第一希有는 도올이 말한 대로 ‘이 경을 얻어 듣고, 믿어 깨달아 이를 받아지닌’ ‘이 사람’이 제일희유하다라는 뜻이긴 하지만, 이 까닭의 깊은 의취를 바르게 알아보아 말하지 않는다면 자칫 인간중심적 고정관념만 고정시키는 말이기 십상이다. 이 ‘제일희유’란 말은 當來世後五百歲라는 이 空法으로 격의한 보리살타라는 법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오직 보리살타라는 이 하나의 理法으로 꿴 다시없었고 다시없고 다시없을 미증유의 희망으로 있는 희유의 理法인 이 진리의 법이므로, 이 보리살타라는 이 진리의 법에 담긴 석가여래가 깨달은 뜻을 이 ‘제일희유’라는 말의 格으로 格義한 것이다. 그러니까 是人則爲第一希有란 말은 사람이 보리살타에 의한 보리살타임을 말하여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온통 이 보리살타로써의 대·소승적 작동인 연기의 실상임을, 이 진리의 진실임을 뜻하는 말이다. 是人則은 지혜의 반야바라밀을, 爲第一希有는 보리살타를 격의한 것이다. 사람이 인식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온통 이 보리살타의 바라밀로서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이 실상·진실의 相으로써 이 상은 寂滅의 이 보리살타에 의하여 노상 다른 상으로 떠나는 離相寂滅인 연기의 실상임을 이 分은 설명하는 것이다.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4-6.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14-6.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14-7.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14-7. 만약 또 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 듣고, 놀라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이야말로 심히 희유의 사람이라는 것을.

14-8.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

14-8.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여래는 설하였다.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고. 그래서 비로소 제일바라밀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14-9.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14-9.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은, 여래가 설하기를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강해] ·····. “a는 a가 아니다. 그러므로 a라 이름할 수 있다.”라는 구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장은 “a는 a가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a라 이름할 수 있다”는 “a는 a가 아니다”라는 논리구조에서 도출되는 부분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a는 a가 아니다”라는 역설의 주장만으로 종결이 되어도 “그러므로” 이후의 종속적 구문은 때로 더 강력하게 함의될 수 있는 것이다.

--- 이 分은 분명 여래인 보리살타의 바라밀이라는 법을 설명함에 있어 어떤 존재와 현상, 예컨대 ‘相’이란다면, 이 ‘상’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 아니라 이 ‘상’이라는 언어문자로써의 형상이며 그 뜻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써의 법인 여래, 곧 보리살타의 바라밀임을,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한 分이다. 이를 단순히 뭔 “a는 a가 아니다.”라는 역설의 주장이라고만 한다면, 이 分으로 가르킨 여래의 불법이 뭔 역설의 썰이나 푼 것으로 알아 이를 말한 것밖에 더 되는가. 분명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상대적 인식으로써의 관념적 부동태며 동시에 실제 시·공간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지혜로써 역설의 법칙임은 맞다. 그러나 이 까닭이 석가여래가 깨달은 법, 곧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로써의 역설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이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의 지혜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바라밀다며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부처라는 이 불법을 바르게 사유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고, 이 ‘인’이나 ‘과’로써의 “a는 a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것이라는 주장만 한 것으로 이 分을 이해해 말한 건 완전 오해의 말이다. 이런 바른 설명조차 도올이 주장하는 대로 이 分의 주장인 ‘역설의 논리구조에서 두출되는 부분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저 “그러므로 a라 이름할 수 있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란다면, 구태여 도올이 하는 이런 강해, 금강경의 금강을 설명하는 강해 따위를 할 일이 없다. 구마리집의 표현이 시적이라서 좋다면 그건 도올의 취향이지, 누가 이 금강을 구구절절한 산문으로 서술했다고 이 금강에 대한 함의가 약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구마라집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분명 금강의 법을 설명하는 법집으로써 산문이다. 마땅히 산문집임에도 불구하고 구마라집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이 금강의 법집을 집필할 때, 이를 설명하는 어휘가 부족해 한 音의 말이나 한 음절의 말에 많은 의미를 함의해 썼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일언이폐지하고 도올이 ‘第一波羅蜜, 非第一波羅蜜’이나 ‘是實相者, 則是非相’ 따위의 구문을 단순히 역설로만 이해하니 뒤따르는 “그러므로 a라 이름할 수 있다”는 말을 ‘종속적 구문’이라고 설명을 해도, 아니, 설령 “a는 a가 아니다.”라고 한다고 한대도 어째서 이 ‘a’를 왜 이 ‘a’라고 이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아니면 아닌 것이지, 아니므로 이름을 할 수 있다니, 이게 대체 뭔 말인가? ‘도올’은 ‘도올’이 아니므로 ‘도올’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니, ‘도올’은 역설인가? 왜? 어째서? 당근 도올여래로써의 역설이다. 어째서? 왜?

수보리가 이 分의 앞, 14-1~5에서 相, ‘서로보다’라는 뜻의 말로 상대적 인식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보리살타의 바라밀이라는 여래의 법임을 설명했다면, 뒤에선 석가여래가 보다 구체적인 이 相으로써의 개념을 가진 언어를 들어 이를 설명하여 이 相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보리살타의 여래임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相이라는 말은 범어의 바라밀을 격의한 말이다. 이 相을 우리가 흔히 알듯 그냥 ‘모습·모양’이라고만 안다면 뒤의 寂滅이란 말을 바르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相이란 말의 깊은 의미만 바르게 알아도 이 ‘이상적멸’이란 말이 곧 보리살타의 바라밀이며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법을 표상한 말임을 금방 눈치 챌 수가 있다.

이 相은 사실 ‘모습, 모양’이란 의미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단지 ‘共:서로, 質:바탕·꾸미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성질, 扶:붙잡다’ 등등의 뜻이지 ‘모습, 모양’으로써의 形狀이란 개념은 없다. 이 相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의 존재와 현상으로 서서 바라보는 상대적 인식을 표상한 범어의 바라밀이란 말의 이 의미를 격의한 말이다.

이 바라밀을 흔히 그물망에 비유하니 그물코로써의 부처와 그물선으로써의 보리살타를 상상하여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하나의 세계로 작동하는 相으로써 보리살타의 부처임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相은 이를 표상한 언어문자이다.

이 分의 제목인 離相寂滅은 이런 의미의 相자 앞에 離자가 붙고 寂滅이란 말이 붙어 이 상대적 인식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실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으로 寂滅하여 또 다른 존재와 현상으로 중중무진 작동하는 중인 중도·여래·열반으로써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이라고 깨달은 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표상한 말이다.

寂滅은 진리, 곧 보리살타라는 이 생각으로써의 진실인 바라밀을 격의한 말이다. 寂은 靜의 뜻과 같다는데, 이는 ‘고요하고 적막’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긴 하지만,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이 뭐가 온통 다 소멸된 이런 ‘고요한 적막’이 최상일 거라고, 이런 거나 으뜸의 宗이라고 가르치는 것이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하고 왕성한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작동중이라는 이 이치가 진리로써의 진실인 宗이라고 가르키는 것이다.

靜은 謨의 뜻과 같아 끊임없이 뭘 ‘꾀하고 계획고 도모하는’ 작동을 표상한 말이다. 이는 이미 있는 相으로써의 이것을 끊임없이 멸하여 새로운 相을 꾀하는 작동력으로써의 보리살타를 표상한 말이다. 또 이 보리살타인 진리며 연기 즉 어떤 작동을 하려는 의지로써의 작동의지력이랄 이 보리살타는 相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으므로 마치 이 적멸의 ‘고요한 적막’으로 소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이 寂滅의 모양세로 이 보리살타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격의한 것이다.

離相寂滅은 ‘상을 떠나 영원으로’라는 시적 표현이라 대도, 이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작동중으로써의 보리살타라는 이 금강을 표상한 말이다.

이 금강경의 금강인 진리의 보리살타라는 진실은 어떤 특정의 언어문자나 형식 등의 바라밀로 격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이 금강으로부터 나온 금강이므로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온통 이 금강을 표상하는 금강이다. 온통 이 금강이므로 어떤 언어문자로도 이 금강의 뜻을 격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격의의 말이 이 금강‘을’ 진술한 것인가, 금강‘으로’ 진술한 것인가의 미세한 차이일 뿐이다.

금강경의 이 分은 물론 이 금강경 전체는 진리의 진실인 이 금강을 진리의 진실인 금강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 14-6. 세존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여래의 이것이 여래의 이것이다.

如是如是란 말을 ‘이와 같다. 이와 같다’라거나 ‘그렇다. 그렇다’라고 이해하여 해석한 대도, 이 분의 전체 문의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 일이 없다. 그러나 구태여 이 ‘如’자를 붙인 까닭을 의심하여 이 뜻이 아니라 이 말의 형상이며 뜻이 가르키는 것을 바르게 보지 않는다면 구태여 일어선 이 불교의 금강경의 금강을 이런 말 한마디나 한 문자에서 곧바로 아는 깨달음은 미루고 미룰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如是’라는 문체를 흉내 낸 것이 소위 선불교의 공안이라는 것들이다. 헐! 노상 말하지만 ‘如’는 보리살타인 진리며 연기의 법을 표상한 것이며, ‘是’ 등 이 ‘如’의 뒤에 붙은 말들은 대개 바라밀로써의 진실이며 실상의 法則으로써 육근이며 오온의 작동으로 비쳐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표상한 말이다. 이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법에 실린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아는 이 진리인식의 깨달음으로 구태여 불교는, 이 금강경은 서있는 연기의 실상이다.

수보리가 석가여래의 설명을 알아듣고 말하는 일체제상인 四相이 대·소승적 작동의 보리살타임은 이 하나의 相인 如是로써의 소승이 곧 대승으로써의 이 하나의 相인 如是로써, 이 如是의 금강이 거듭하는 연기의 실상이라고 석가여래는 동의하여 ‘여시여시’라고 응대한 것이다.

14-7의 若復란 말은 이 ‘여시여시’의 다른 표현이다. ‘여시’는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인 지혜로써 이를 표상한 말이 若이며, 이 ‘야’는 단수개념의 소승을, ‘야부’는 복수개념의 대승을 표상하여 이 대·소승적 작동인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다, 곧 보살마하살을 격의한 말이 ‘야부’이다. 그러므로 ‘야부유인’이란 말은 독립적 개체로써의 소승이나 대승으로써의 어떤 한사람을 의미한 말이 아니라 이 대·소승적 작동의 보리살타인 사람성품을 의미한 말이다.

14-7. 지혜의 거듭으로 있는 이 여래법의 사람은 이 여래법을 알아듣고도 놀랄 것도 떨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당연한 것을 안 것이다. 이 여래의 사람은 온통 희유한 이 ‘온통희유’로써의 보리살타인 여래이다.

바라밀인 이 지혜의 거듭 작동을 표상한 여래법에 의한 여래법칙인 이 모든 성품들 중에서 이 사람성품은 마땅히 이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마땅하고도 당연한 것을 안 것임에야 뭔 희노애락의 감정이 일어날 것이야 있겠냐고, 수보리의 눈물을 위로하는 분절이다. 수보리도 석가여래도 인간성품으로 작동하는 여래로써의 삶을 살고 있음을 보이는 대목이다.

14-8은 이런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개념으로써의 생각조차도, 즉 사람이나 알 수 있다는 전무후무한 여래며 보리살타라는 이 법의 생각조차도 이 여래로써 보리살타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14-8. 왜 그런고 하니 수보리야. 여래의 이 법은 제일바라밀이란다면 이 까닭을 설명하는 것이지, 이 제일바라밀이 실재의 실체랄 제일 바라밀이라는 건 아니다. 이 여래로써의 제일바라밀이라는 이 이름이 제일바라밀인 것이다.

이 분절은 당시 여래라는 생각의 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써의 무상정등각이라는 이 제일바라밀을 실재의 실체로 알아 이것이 되고자 이것을 찾는 이들을 향한 말이다. 이것은 실재의 실체랄 것으로써 사람이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것으로 사람의 맘속에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써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여래를 이름하여, 이 이름으로 여래를 설명하는 것이란 말이다.

바라밀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중무진이다. 이 ‘제일’도 다음의 ‘인욕’이며 ‘가리왕’이며 이런저런 개념의 말도 여래로써의 바라밀인 관념적 부동태로써 실제 시·공간적 작동태로써의 여래, 곧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말이다. 모든 말로써의 언어문자는 온통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다.

14-9. 수보리야, 인욕바라밀은 인욕바라밀로써의 여래를 설명하는 것이지 실재의 실체랄 인욕이랄 것은 없어 인욕바라밀이 아닌 것이다.

인욕바라밀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보리살타에 의하여 오직 이 존재와 현상으로 인욕작동하는 작동성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인 이 모든 성품들은 끊임없이 다른 성품의 삶이 아니라 오직 이 성품의 삶을 의지하는 이 인욕으로 작동하는 여래로써의 삶이다. ‘미움이며 분노’란 말은 여래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 작동한 인욕의 삶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를 두고, 사람은 뭔 인욕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람윤리로써의 인욕으로 이 인욕바라밀을 이해하는 건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의 이 부처인 금강을 모른 오해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4-10.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嗔恨.

14-10.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그것은 내가 옛날에 가리왕에게 신체가 낱낱이 버힘을 당한 것과도 같다. 나는 그 때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다. 어째서인가? 그 옛날에 마디마디 잘림을 당했던 그 때에, 내가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코 분노와 미움을 냈으리라.

[강해] 이러한 끔찍한 가리왕의 이야기는 결코 설화가 아니다. 보스니아를 보라. 씨에라 레옹을 보라. 라이베리아를 보라. ·····. 서로 사지를 자르고 도끼로 해골을 패 죽이는 이 처절한 모습들을! 과연 이 모습에서 우리는 정치이념을 말할 것인가? 종교이념을 말할 것인가? ·····. 그것은 단순한 인간의 무명의 모습이 아닌가? ·····. 무시이래의 아라야 종자의 훈습을 더 더럽힐 뿐인 그런 짓을 하지 말라. ····· 모두 끝없는 무명의 굴레이러니, 깊게 깨달을 지어다. 이념의 역사는 영원히 이념의 業障을 깨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우리에게는 혁신도 없고 보수도 없다. 오로지 무명이 있을 뿐이다.

--- 여기 가리왕을 인간의 폭력성이나 잔인성을 상징한 이로 보고 이 분절을 이해하는 건 도올이 여전히 이 금강경의 금강을 인간의 도덕적 윤리로 보는데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윤리의식이 있는 유식한 사람은 이런 폭력성이나 잔인성을 노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인간은 인간성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써 이런 잔인·폭력성뿐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만큼이나 많은 작동성으로 작동했고, 작동할 수 있고, 작동하고 있는 중으로써의 중도·여래·열반인 보리살타의 바라밀다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부처다.

무명은 단순히 인간이 도덕적 윤리의식이 없는 무식함을 이른 말이 아니다. 소위 12연기라고 하는 도식의 첫 번째에 이 무명이란 말이 위치하는 까닭은 독립적 개체로써의 소승인 한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성품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성품인 통합적 전체로써의 대승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작동중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무명을 뒤로 거론되어져 나오는 행·식·명색· 따위들은 이 무명이라는 한 폭의 그림속으로써의 인연·인과를 도식적으로 나열해 놓은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이 12가지의 대표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작동중인 보리살타의 바라밀다이므로 어떤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부처로도 드러나지 않은 무명의 중도·여래·열반임을 표상한 말이 무명이란 말이다. 이를 말하지 않고 사람이 뭔 좌·우며 역사며 종교 따위 큰 이념(?)은 아닐지라도, 소위 아라야라는 이 종자로써의 훈습인 보수며 혁신 등, 이 모든 존재와 현상만큼이나 많은 생각의 이념으로 마땅히 사는 사람의 삶을 무명·무식의 삶이라고 매도하는 건, 이 금강경의 금강을 몰라도 한참 모른 생각의 말이다.

이런 헤아릴 수 없는 대자유의 작동성인 보리살타의 사람이 저런 잔인·폭력성을 행사하지 않고 인간적 윤리의식을 지키며 살겠다면, 이건 전혀 이 사람의 절대자유의지로써의 삶으로써 보리살타의 바라밀이며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것이다.

이 분절뿐만 아니라 이 금강경 전체, 아니 모든 佛跡들, 예컨대 불경은 물론 온갖 불서며 수많은 불교적 예술품들은 오직 이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다. 이 분절은 이 진리라는 진실인 보리살타의 여래가 작동하는 작동태를 가리왕이라는 잔인·폭력태로 설명하는 것이다.

14-10. 왜 그러냐면, 수보리야. 여래의 나는 오랜 옛날이라고 하는 시간의 가리왕이 신체를 낱낱이 베고 자르는 공간으로써의 시·공간인 나이므로, 이 시·공간으로써의 나는 아·인·중생·수자상이랄 것은 없다. 왜냐면, 여래의 나는 아주아주 옛날부터 순간순간으로 흩어지는 시·공간적 작동의 여래인 지혜이므로 어떤 아·인·중생·수자상의 이 대·소승적 작동태에도 ‘분노와 미움’으로 응하여 또 다른 四相을 낳는 ‘분노와 미움’의 보리살타이다.

14-10을 단순히 석가여래의 전생의 일로만 아는 것 역시 오해다. 가리왕은 뭔 세존의 전생 때 흉악한 임금이 아니라 과거로써의 시·공간을 총칭한 말이다. 이 과거 시·공간으로써의 모든 시·공간인 가리왕은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부처다. 이 보리살타의 ‘가리왕’은 시·공간인 이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바리밀인 이 부처에 분노하고 성을 내어 또 다른 시·공간인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바라밀인 부처로 변화시켜 버리는 瞋恨, 성내고 분노하는 보리살타이며 동시에 이 ‘진한’을 인욕하여 가라앉힌 이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바라밀인 부처를 이루기도 하는 이 가리왕이다. 이는 보리살타로써의 연기며 진리가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작동태로써의 부처며 실상이며 진실임을 설명한 말이다.

여기서의 我는 세존 개인을 가르킨 것이 아니지만 설령 그렇단 대도, 이 我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我, 곧 대·소승적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가르킨 표상의 말이다. 이 我의 대·소승적 작동이 거듭하는 보리살타의 바라밀다인 지혜를 표상한 말이 ‘여시여시’며 若復이다.

인욕이며 가리왕이며 瞋恨 등의 언어는 보리살타의 작동태를 역설적으로 표상한 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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