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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무의식이 물들이는 일상의 ‘폭력’

최철호 2018. 05. 29
조회수 3610 추천수 0
최근 이뤄지는 동북아 평화 만들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다. 반전 지점마다 그동안 상대를 일방적 악으로 규정했던 적대의식과 감성에 균열이 생긴다. 역사가 새 시대를 살아갈 인식능력과 정서를 훈련시키는 듯하다.

왜곡된 정서와 관습은 집단무의식이 되어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를 물들인다. 합리적 소통과 평화를 가로막는 것은 우리 일상과 내면에서도 작동하고 재생산된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떠오른 게 있었다. 나는 어릴 때 프로야구를 좋아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부산 연고 팀인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다른 경기는 그냥 재밌게 봤는데, 해태 타이거즈(기아)와의 경기는 달랐다. 꼭 이겨야 했다. 해태와의 경기에서 지면 후유증이 컸다. 내 친구들, 응원 온 부산 사람들 대부분 비슷했다. 빙그레 제품은 먹었는데 해태 제품은 먹지 않았다. 그렇게 하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대부분 그랬다. 모르고 먹은 친구를 배신자라고 놀리기도 했다.
03053606_P_0.JPG » 야구장.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야간 자율학습(실제는 강제학습)을 빠지고 야구장 간 친구들이 다음날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 “공부 안 하고 도망가서 뭐 했어?” “어제 해태하고 붙은 경기는 꼭 이겨야 되는 중요한 거라서 응원 갔는데예.” 우리는 함께 외쳤다. “와! 선생님 한 번 봐주입시다. 어제 정말 중요했는데, 얘들 때문에 이겼다 아입니까.” 선생님도 웃음이 터졌고, 그 친구들은 의리있는 사람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와 정서가 이상한 집단의식 속에서 통용되고 재생산된다.

나는 오비 베어스(두산) 어린이 회원이었다. 프로야구 영웅들이 첫해 우승팀인 오비 베어스에 있었다. 롯데도 좋고, 다른 팀이나 선수도 좋아했다. 친구들도 서로 다른 팀 홍보물을 가지고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지역주의에 갇히지 않고 야구경기를 즐겼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이상한 정서가 생긴 거다. 고향 팀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해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지역주의에 집단적으로 물든 거였다. 그저 야구를 좋아한 거였는데, 일상의 놀이와 문화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왜곡된 지역주의에 물들어갔다.

나중에 고향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다. 한국 사회 모순을 극복하려는 열망을 지닌 친구들이지만, 극복해야 할 것이 우리 내면과 일상의 집단무의식을 통해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 니 잘났다. 서울 가더니 변했네. 이제 너는 부산 사람 아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 장난기 섞인 말이지만, 왜곡된 집단무의식을 건드리면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걸 배웠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라놓는 거짓된 의식과 정서들은 많이 극복되었다. 이제 70년 분단체제 속에서 대립과 갈등을 조장했던, 조선과 미국에 대한 거짓된 집단무의식과 일상의 정서들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역사는 계속 그것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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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1991년 생명평화를 증언하는 삶을 살고자 ´밝은누리´ 공동체를 세웠다·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 마을공동체를 세워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삶을 산다· 남과 북이 더불어 사는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를 앞당겨 살며 기도한다· 청소년 청년 젊은 목사들을 교육하고 함께 동지로 세워져 가는 일을 즐기며 힘쓴다.
이메일 : suyu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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