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과 나

혜민 스님 2012.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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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은 나보다 키가 10센치는 더 컸다. 아마도 지금 기억에 초등학교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도 제일로 키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공부도 무척 잘 했는데 반에서 내가 3등에서 4등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때 반장은 주로 1등이나 가끔식 2등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던 우리집과는 달리 반장네는 집도 좋고 가지고 놀 장난감도 많다고 반장 집을 놀러갔던 애들이 말해 주곤 했다. 아버지가 대학교 교수님이라고 하시고 어머님도 전문직 종사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또 운동도 무척 잘 했는데 운동회날 반별로 계주 경기가 있으면 우리반 맨 마지막 선수로 출전해서 극적인 역전을 만든 일도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키고 크고 집안도 좋으니 담임 선생님도 그를 무척이나 신임하셨고 그래서 또  여러가지 일을 반장에게 맡기셨다. 예를 들어 방과후 청소를 선생님 대신 반장이 검사를 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거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 채점을 선생님과 함께 반장이 주로 했으며, 선생님께서 교무 회의로 좀 늦게 조회에 들어오시면 반장이 앞에 나아가 떠든 아이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으면서 반 전체를 자습 시켰다.

 

여러가지 일을 선생님을 위해서 하는 만큼, 반장이 선생님께 보고 하는 일들은 그것이 무슨 일이던 무조건 백프로 선생님께서 믿으셨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 안에서 반장은 담임 선생님에 버금가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반장말을 거이다 고분고분하게 잘 들었던 것 같다.


반장 주위엔 그와 같이 어울리는 소위 말하는 반장 그룹 애들이 있었는데 왠만한 남자애들은 다들 그 그룹 안에 끼고 싶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장은 자기 그룹 애들을 유독 잘 챙겼다. 다른 반 애들이 자기 그룹 애를 괴롭힌다 그러면 바로 나서서 반장의 카리스마로 눌러 보호했으며 반에서 좀 잘못해서 선생님한테 혼날만한 일도, 자기 그룹 아이의 일이라면 반장의 힘으로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듣기로는 그 애들을 종종 반장 집으로 데리고가 반장 어머니가 해 주시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오락 게임기를 가지고 논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반장 집에 초대받는 것이 반장의 그룹에 속하는 첫번째 관문이라고도 했다.


나와 반장과의 관계는 내 천성이 원래 좀 순한 편이여서 그런지 크게 문제 없이 평탄했다. 그렇다고 반장 그룹 아이들처럼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였는데, 그저 가끔식 방과후 운동장에 금을 그어서 오징어라고 하는 놀이를 같이 하거나, 고무공을 가지고 야구를 하는 짬뽕이라는 게임에 같이 끼어서 노는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런 평탄한 반장과의 관계가 엉클어지는 일이 있었다. 방과후 우리 분단의 아이들이 청소를 한후 반장으로부터 검사를 맡은후 집으로 가려다 짬뽕 야구 한판을 하고 가자고 반장이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나는 우연히 반장과 같은 편이 되어 재미있게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운 좋게도 나의 수비덕에 우리편이 이기게 되었다. 그래서 반장은 나와 자기 그룹 애들을 게임이 끝나자 자기 집으로 초대했는데 문제는 그날이 하필이면 집안 제사가 있어서 큰집에 가기 위해 빨리 집에 돌아가야 되는 날이였다. 그래서 난 반장말을 듣지 않고 그냥 바로 집으로 와벼렸는데 그것이 화근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교실에 수업시작하기 20분 전쯤에 도착해서 옆자리 앉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장과 그룹애들이 들어오더니 뒤에서 고무공으로 내 등을 향해 마구 던지는 것이였다. 이유는 내가 자기말을 어제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였는데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러면서 반장은 이제부터 나랑은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반 전체 아이들에게 명령을 했다. 갑자기 나를 왕따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반 친구들은 그애들 또한 어리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선생님이 오셔서 그날 수업이 시작 되었는데 수업을 받는 내내 반장의 말과 행동에 큰 상처를 입고 수업을 하는둥 마는둥 했다.


워낙 반장의 권한이 막강했으므로 아이들도 반장 눈치를 봐 가면서 그애가 없을 때 나에게 말을 슬쩍슬쩍 걸었는데 평소에 친했던 애들이 나를 조금씩 멀리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무척 힘이 들었다. 나는 반장의 화가 풀리기만을 기다렸으나 이틀 삼일 사일이 가도 공부 잘하는 애들 특유의 집요함으로 나와 말하지 말것을 매일 반 아이들에게 명령했다.

 

그래서 일주일째 되는 날 나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반장 때문에 지금 왕따당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주 난처한 표정을 하시더니 알았다고만 짧게 응답을 하시곤 종례 때 그냥 친구들 간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대강 얼버무리셨다. 


열흘, 이주가 흘러도 왕따는 계속 되었으며 나는 참다 못해 방과후 반장을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반장이 교문 밖으로 나오자 나는 그에게 무조건 미안하다고 했다. 너의 말을 무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고 집안 제사가 있었다고 설명을 하고, 또 너를 반장으로써 옛날부터 좋아했었다고 별로 마음에도 없는 말도 했다. 나의 갑작스런 이런 말들에 반장은 조금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냥 “알았어” 라는 말로 답을 했다. 그 다음날 등교를 했을 때 반장은 특별히 나에 대한 언급이 전과 다르게 없었으며 일주일정도가 지나자 옛날의 상황으로 점점 복귀가 되었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늦가을이 되어 반장과 또 다시 고무공 야구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편이 되어 의기투합을 해 게임을 이겼다. 게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내가 물었다. 그때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냐고? 그랬더니 반장은 의외의 답을 했다. 사실 그날 어머니께 공부 잘 하는 같은 반 친구 한명을 데리고 오겠다고 이미 그 전날에 이야기를 해 놓았는데 내가 그렇게 아무말 없이 사라지니까 화가 났었다고.

 

그리고 사실은 옛날부터 나랑 더 친해지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할 용기나 기회가 이상하게 나지 않았다고. 나는 그후 다음 학년이 될 때까지 고무공 야구게임을 서너차례 더 했었는데 그때마다 반장과 나, 우리 둘은 같은 팀이 되어 게임을 했고 그럴 때면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무적의 팀이 되었다.




본 글은 혜민스님 블로그(http://blog.naver.com/monkhaemin)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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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조계종 승려이자 미국 메사추세츠주 햄프셔대 종교학과 교수. 미국 UC버클리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방향을 바꿔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 석사를 받고 출가했으며,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를 받았다. 종교계 최고 트위터리언이자 아픈 청춘들을 위로하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메일 : monkhaemin@naver.com       트위터 : @haeminsunim      
블로그 : http://blog.naver.com/monkha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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