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당’ 사랑이 왜 이리 불편한가
»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홈페이지.
[김원의 리얼몽상] 고아수출국 출생의 비밀과 결혼
그들 부부는 드라마 방영 초반에는 온전히 남자와 여자로 살았다. 서로에게 서로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서로의 감정과 꿈, 가치관을 존중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22회까지 방영된 지금, 그들은 단지 귀한 아들과 그 아들에 딸려온 ‘듣보잡’ 며느리일 뿐이다.
이유는 남편의 이름이 ‘테리 강’에서 ‘방귀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 입양아로 자란 고아 출신 외과의사에서, 상종하기도 싫던 (예의 없는) 앞집 대가족이 30년을 오매불망 찾아 헤맨 잃어버린 아들로 판명 난 까닭이다. 아내의 처지는 돌연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 게다가 다시는 애초의 설계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눈을 뜨면 두 걸음 앞 마주보는 시댁으로 곧장 달려가야 한다. 밥도 웬만하면 앞집 대식구가 둘러앉는 상에서 먹어야 하고, 앞집에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자기네 안방 침대 위까지 다 내주고 해결에 매달려야 한다. 니 집 내 집이 없는 속에서 사생활은 고스란히 앞집에 반납이다.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 분)-차윤희(김남주 분) 부부 얘기다. 누적 고아수출 1위국 한국의 역사가 출생의 비밀이라는 시청률 제1법칙을 만나, 공영방송 주말드라마에 이런 식으로 귀환하다니!
한국 결혼의 심연 ‘시월드’
홈페이지 등장인물 소개를 보자. 여주인공 윤희의 직업은 드라마 제작사PD다. 고되고 힘들고 사생활 없기로 유명한 직업이다. 게다가 별명은 쌈닭. “불의를 보면 안 참는다. 절대 시집살이 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다. '능력있는 고아'가 이상형. 귀남을 만나 그 꿈을 이루게 된 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시댁을 만나게 된다.”
이런 ‘앙큼한’ 여자가 개인주의가 몸에 밴 남자를 믿고 결혼이라는 걸 했는데, 한국 드라마의 단골인 출생의 비밀에 발목이 잡힌다. 사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다. 결혼을 결심케 했던 제1조건이 깨진 것이다. 불의(不義)도 이런 불의가 없다. 남편의 처지가 안 됐고 그의 잘못도 아니지만, 자칫 삶의 방향성이 달라질 위기다. 아이 없이 살기로 했던 두 사람의 약속도, 대가족 틈바구니에서 손자 타령에 시달릴 일만 남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의 층층시하 시집살이지만, 시작되고 나니 윤희는 기다렸단 듯이 척척 문제를 해결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전문직 부부가 졸지에 70년대식 시댁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는 게 당연해진다. 게다가 유능한 며느리는 기지와 재치로 상황을 엉뚱하게 ‘반전’시키고 모든 식구들 및 친척들까지 ‘감화’시킨다. 혀를 내두를 윤희의 기발한 대사와 용인술로 집안의 평화는 이룩되고 남편의 사랑까지 딸려온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질문조차 무시되고 있다. 어려서 잃은 아들을 30년만에 찾았는데, 과연 ‘전통적 시집살이’가 가능하기나 한가? 이 어색한 ‘혈연관계’가 평범한 가족애로 한 밥상에 둘러앉는 것조차 한낱 꿈이 아닌가?
너무 잘 굴러가 오히려 역할극 같은 이 드라마는, ‘시월드’(시댁)로 대변되는 결혼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불편부당함을 코믹활극으로 손쉽게 무마한다. 윤희는 이 세상에 다시없을 비상한 능력자다. 자기와 접하는 모든 상황과 관계를 뜻대로 지휘하고 정리하는 대단한 ‘연출자’다. 단, 조건이 있다. 상대방들도 모두 일사분란하게 딱딱 맞춰줘야 한다. 윤희의 의도대로. 순진하고 단순하게.
고아수출 1위국의 ‘개인’의 정의
초반부에 남편 귀남의 지나치게 멋진 모습, 이상적 태도가 집중적으로 나와 불안하긴 했다. 장모로부터 “우리 퍼사(퍼펙트 사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귀남의 모습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덮쳐오기 전 잠깐의 행복은 아니었을까. 아직 출생의 비밀이 다 밝혀지지도 않았고, 어린 시절 상처가 많았을 귀남이 급격히 ‘한국형 마초’로 급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남편복이 넝쿨째 굴러왔다고 좋아하던 윤희는, 감당할 수 없는 신파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나마 윤희같은 능력자도 못 되는 대다수 젊은 여성 시청자들은 걱정스럽다. 국적이 아무리 딴 나라일지라도 한국인의 유전자를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한, 아무것도 안심하지 말란 뜻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고아수출국이었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대부분 한국전쟁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70년대 급격히 늘어난 국가시책이었다. 그 또한 ‘외화벌이’ 수단이었다. 우리가 도저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힐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여서 타국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 왜냐면 지금도 계속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천사 같은 외국인이 잘 키우고 공부시켜 줄 거라 믿는다면, 제 자식도 키우기 힘들어 벌어지는 비극적 뉴스들을 보라고 하고 싶다. 한국은 아기 수출 누적통계로는 단연 1위이며 인구비율로도 1위다. 그런데 최소한의 죄의식조차 갖지 않아도 되게끔, 방귀남처럼 좋은 외국인 부모 만나 성공한 스토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고?
극중 어버이날 귀남은 지난 30년의 영상편지를 작성해 “제가 없는 동안에도 저는 이 집에서 늘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늦게 돌아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가족들은 모두 ‘감동’한다. 버림받고 이 땅에서 팔려간 자에게 자기를 버린 그 모든 환경과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책임까지 지운다. 힘겹게 살아 돌아온 그가 이쪽의 관습에 무조건 맞추는 게 ‘적응’이다. 30년 간 살아온 개인으로서의 특성은 온데간데없다.
윤희가 결혼 전 바랐던 남편감은 ‘개인’으로 살 수 있는 사람, 아내를 개인으로 살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 속에서 이는 요원하다. ‘능력있는 고아’라는 발칙한 기대감을 가장 인습적인 스토리로 귀결시킨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그 현주소다.
김원(로사, 문화평론가)
데일리 서프라이즈, 위클리 경향, 월간 말, 경향잡지, 성서와 함께, 디다케, 민중의 소리, PD저널 등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드라마 보고 글 쓰며 산다.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서 담아왔습니다.
관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