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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꺼내지못하게 한 성철스님

조현 2018. 10. 21
조회수 11516 추천수 0

1-.jpg » 성철 스님이 원영(맨왼쪽) 법정(오른쪽에서 두번째) 원택(맨오른쪽) 스님과 서있다.

 

표지-.jpg 

 성철 스님1912~93)이 열반에 든지 25년이 됐다. 성철 스님은 팔공산 성전암에서 철조망을 치고 정진하고,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온 신자들에게 3천배를 시키는 등의 신화적인 일화들이 주로 전해진다.

그런데 성철 스님 열반 25주기를 맞아 성철 스님의 새로운 면모들이 나타난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성철 큰스님을 그리다’<성철>(장경각 펴냄, 유철주 지음)이다. 이 책은 성철 스님을 가깝게 모신 16명의 출가자들과 성철 스님과 인연이 있는 20명의 재가자들을 인터뷰한 것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은 “큰스님이 열반한 뒤 다른 상좌들이 텔레비전에 인터뷰한 것을 보고, 다들 ‘큰스님이 무서웠다’고 얘기하지않고 ‘자상하고, 공부 길을 잘 일러주셨다’고 해 ‘큰스님이 두 분 계셨나. 나는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다른 상좌스님들은 다르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철 스님을 모시고 산 제자들간에도 경험이 다르고, 스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 놀랐다는 것이다.

이 책엔 1953년 성철스님에게 출가해 맏상좌가 된 천제 스님과 만수 스님 등 초기 제자들이 나와서 성철 스님이 1960년대 후반 백일법문을 하면서 불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하기 전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천제 스님은 6남매 출가자로 유명하다. 속가 장남인 그가 성철 스님에게 출가한뒤 5명의 동생들도 모두 출가한 것이다. 그는 부친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경남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49재를 모시면서 그곳에 주석해있던 성철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천제 스님은 성철 스님이 당시엔 신자들에게 3천배를 시키지는 않고, 1천배를 시키거나 상황에 따라 절을 시켰다고 한다. 또 성철 스님의 부친이 방문했을 때 부친이 좋아하는 수박도 대접하면서 나름대로 효도를 다했지만 스님의 권위를 위해 속가 부모에게 하심할 수는 없다고 해 부친이 불편했을 때도 자신을 대신 문병 보내고, 장례식 때도 자신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천제 스님은 성철스님이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었던 점을 전했다.

 

천제6남매-.jpg » 모두 출가한 맏상좌 천체스님 6형제와 함께 한 성철 스님

 

요새도 그렇지만 전에도 돈이 있는 분이나 권력 있는 분이 절에 와서 예불을 드리면 스님들이 목탁을 치고 불공을 드린다. 기도하러 온 사람들은 대접을 받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큰스님은 이런 방식은 불공이 아니라고 했다. 불공하러 온 사람은 반드시 공양간에서 음식을 해 나르도록 하고 직접 예배를 해 자기 신심을 돈독하게 해서 부처님께 성의를 보여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자기변화와 발전이 있는 것이 진정한 불공이 되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스님들을 고용한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2-.jpg » 가야산 정상에 오른 성철 스님과 상좌 원택 스님

 

통상 6개월간 한다는 예비승려 단계인 행자를 무려 10년간이나 하며 성철 스님을 시봉했던 만수 스님은 “큰스님은 책방인 장경각에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 동안은 꼼짝도 안했고, 또 어린 행자들과 함께 직접 목탁을 잡고 예불을 올리고 108참회와 능엄주 독송을 했다”고 회고했다.

또 성철 스님은 한문 경전을 읽으려면 문리를 터득해야한다며 처음 대학-중용-논어-맹자 순으로 사서를 보게 했다고 한다. 만수 스님의 회고다.

“<논어>를 다 읽고 큰스님께 말씀을 드리니 ‘子曰 可以行而行 不可行而不行 (자왈 가이행이행 불가행이불행) ’을 풀이해 보라 했다. 글자 그대로 ‘가히 행할 만하면 행하고 행하지 못할 것 같으면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더니,큰스님께서는 ‘좀 더 분명히 대답하라’고 하시더니 ‘그렇게 해석하면 안 돼. 반드시 행할 것만 행하고 안 해도 될 것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행자로서 하지 않아야 할 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한 것 같다. 요즘 보면 스님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다녀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가. 큰스님은 그런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셨다고 생각한다.”

 

3-.jpg » 제자들과 경주 남산에 오른 성철 스님

 

1950년대 성전암에서 성철 스님을 찾아간 이래 평생 성철 스님을 사표로 수행해온 김덕이 보덕화 보살(2015년 별세)은 백수를 앞둔 나이에도 성철 스님의 철저한 삶의 자세를 전했다.

“성철 스님은 쌀을 한톨이라도 버리는 것을 용납하지않은만큼 근검절약했다. 그리고 성전암에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에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은 절대 땅에 놓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신도들이 성전암에 올라갈 때는 공양물을 땅에 놓지않고 무릎 위에 올려놓고 쉬었다. 또 성철 스님은 당신 앞에서 절대 돈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평생 돈을 멀리했기 때문에 신도들에게도 이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성전암 살림이 어려운 것을 알았던 신도들은 할 수 없이 성철 스님 몰래 시봉하는 스님들에게 시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쓴 유철주 작가는 “지금까지 성철 스님이 스님들에게 ‘책을 보지 마라’한 것으로 전해져왔지만, 실제 성철 스님은 제자들이 처음 입산하면 나름의 커리큘럼에 따라 처음 2년 정도 경전 공부를 시키고, 불교에 대해 안목이 생기면 선방에 가도록 했다”면서 “인터뷰에 응한 성철 스님의 제자들의 얼굴이 참 깨끗한 것을 보고 수행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성철 스님의 맏사제 천제 스님이 돈을 받지 말고 법보시용으로 만들 것을 제안해 서점에서 판매하지않은 비매품으로 출간해 성철 스님 열반 25주기 추모기간에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는 추모객들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성철 스님 25주기를 맞아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해인사 백련암에서 4일4야 추모 참회법회, 27일 해인사 사리탑에서 추모 삼천배 정진, 28일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25주기 추모재가 봉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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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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