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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86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一合離相分 第三十

30-1.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天世界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寧爲多不?”

제30분 모이나 흩어지나 한 모습

30-1. “수보리야! 만약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힘껏 부셔 티끌로 만든다면, 네 뜻이 어떠하뇨, 그 티끌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강해] 여기서 合이란 매크로(거시)의 세계다. 離란 마이크로(미시)의 세계이다.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合의 세계이다. 매크로의 세계인 것이다. ·····.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거시적 세계의 인식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세계는 항상 마야 즉 幻의 가능성으로 지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사물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매크로에서 마이크로로 들어가면 반드시 인식론이 개재된다. 인식론적 반성이 없이는 마이크로의 세계를 논구할 수가 없다. ·····. 불교는 모든 인식론적 가능성을 수용한다. 불교는 어떠한 명제에 어떠한 분석을 가해도 그 결과가 조금도 그 종교적 진리와 어긋남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인식론적 반성의 철저성 위에 서있기 때문에 철학이나 과학과 전혀 대립한 필요가 없다. 아니, 불교에서는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심오성인 동시에 그 한계인 것이다. 불교전통에서는 그것이 합일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과학의 발전이 저해된 그러한 아이러니를 인류의 역사는 露呈시킨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역사에 있어서, 과학의 성과가 인류의 보편적 자산이 되어가는 지금, 과연 그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인류사를 바라봐야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 저기 잔디밭이 있다! 저기 잔디밭이라는 존재가 있다! 저기 잔디밭이라는 존재의 실체가 있다! 과연 그러한가? 잔디밭은 거시적 세계이다! 그러나 미시적 세계로 들어가 보면 그것은 많은 풀들로 이루어져 있다. 갠지스강의 모래수 만큼의 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과연 잔디밭은 있는가?

아이쿠! 이놈의 지겨운 잔디밭이여! 남의 집 잔디밭을 보여주면 아주 아름다웁게 보인다. ·····. 그러나 그것을 가꾸는 주인집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칠 노릇이다. 매주 잔디를 깍아주어야 하고 ·····, 잡초를 뽑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짓을 안 하면 잔디밭은 곧 흉물이 되어 버린다. ·····. 잔디는 과연 존재(我)인가? ·····.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이 잡초에게 얼마나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 무엇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뽑아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불교에서 매우 본질적인 질문이다.

지금 나라는 존재를 한번 잔디밭이라고 생각해 보라! 과연 “나”가 있는가? “나”라고 생각하는 어떤 존재의 형태는 ····· 이러한 잔디밭과도 같이, 수없는 세포가 모여 어떤 역동적 동일성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 무엇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 유지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잔디밭의 유지가 하나의 폭력이라면, 그대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나의 존재는 하나의 폭력이다! 나의 생명은 신의 폭력이다! ·····. 나의 몸의 호미오스타시스(평형) 체계는 분명 잔디밭의 유지와 같은 폭력적 사태임이 분명하다.

이 分의1.2절은 離 즉 미시의 세계를 말한다. 3.4절은 合 즉 거시의 세계를 말한다. 여기서 말한 “티끌”이란 곧 離 미시적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실체의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가 잔디라는 合의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 假合의 픽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학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거시적 가합상태는 실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가합상태를 구성하는 최소단위 그 자체는 실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과학적인 세계관의 원자론은 대강 이러한 생각위의 서있다. 이 구성 최소단위를 소승불교에서는 바로 法 즉 다르마라고 불렀다. 이러한 소승부파불교의 입장을 우리는 “我空法有”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나라고 하는 실체는 없지만 나를 구성하는 법은 實有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 그런데 바로 우리가 읽고 있는 금강경은 이러한 有論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하는 매우 래디칼한 사상인 것이다. “我空法有”라고 한다면 결국 “無我論”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잔디밭은 풀 한포기로 구성되어 있다. 잔디밭은 없어도 풀은 있다. 과연 그런가? 풀 한포기는 또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또 다시 갠지스강의 모래수 만큼의 식물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또 그 세포 하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핵과 세포질과 세포막과 미토콘드리아, 골지체, 리보좀 ··· 그럼 또 핵은? dna는? ···

無我論의 궁극은 法有를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이 세계는 공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대들 각자가 찾아 보라!

이 30分의 해석에 있어서 산스크리트 원문은 매우 애매한 곳이 많다. 나는 최소한 한문의 “微塵衆”은 단순히 “微塵”의 복수형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산스크리트 원문의 뜻은 “原子의 集合體”로 되어 있고(나카무라 번역), 콘체는 “a collection of atomic quantities”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가루로 부셔만든 결과가 또 다시 “集合體”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석연치 않다. “集合體”라든가 “collection”이라는 표현은 이미 假合의 매크로한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原子”와 “集合體”는 동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도인들은 原子 그 자체가 시공을 점유하는 미세단위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덩어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는 “먼지라는 덩어리” 즉 “먼짓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 먼짓덩어리가 많으냐 적으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나 漢譯의 “微塵衆”이라는 번역은 그러한 복합적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이 分은 산스크리트 원문을 무시하고 그냥 羅什의 漢譯의 뜻에 충실하게 읽는 것이 좋다.

이 삼천대천세계를 마이크로한 세계로 부셔버리면 티끌이라는 法이 남지 않겠는가? 바로 이 법조차를, 30分의 철학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 도올의 이 分節 해석 역시 오해의 엉터리다. 도올의 [강해]의 끝 부분을 먼저 말하겠다. 한역이든 산스크리트 원문이든 法이라는 이 말을 쓴 까닭은 도올이 생각하여 말하듯 어떤 물질의 최소단위를 지칭한 말이 아니다. 이는 도올이 설령 소승부파불교에서 이 법을 어떤 물질의 ‘구성 최소단위를 法 즉 다르마라고 불렀다’고 한 대도(사실은 이것이 아닐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아는 건 분명 소승부파불교의 전적을 오독한 것이기 십상이다.), 이러한 소승부파불교의 입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어서, 이 분절의 뜻을 [강해]하여 ‘이 삼천대천세계를 마이크로한 세계로 부셔버리면 티끌이라는 法이 남지 않겠는가? 바로 이 법조차를, 30分의 철학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는 생각의 말은 오해다.

소승부파불교도, 대승통합(?)불교도, 이 法이란 말을 쓴 뜻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原子든, 集合體든, 假合이라든, 實合이라든,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이 상대적 인식이 총체적 인연·인과의 이 논리적 法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므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으로써의 법작동인 진리의 진실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분절의 제목인 一合離相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보리살타의 여래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로써의 ‘동격’으로써, 총체적 인연·인과로 모이고 흩어지는 이 논리적 법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하나의 相인 一相으로써의 동격임을 표상한 제목이다. 이 법을 뭔 물질의 최소단위라고 아는 건 오해다.

이 분절은 이 상대적 인식으로써의 一相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써의 보리살타인 여래로써의 남녀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천대천세계의 삼세인데, 이 삼세로써의 과거 현재 미래는 온통 총체적 인연·인과로써 남·녀라는 이 상대적 인식의 미세한 티끌로 부서지는 생멸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이므로, 이 말의 뜻은 이 미세한 티끌들 같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삼천대천세계가 중중무진으로 많다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알겠냐고 뻔한 걸 물어 어떤 까닭으로 많다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30-1. “수보리야, 보리살타의 여래인 남녀는 삼천대천세계로써 미세한 티끌로 부서지는 것이다. 이를 뜻으로 말하면 어떠냐? 이 미진중인 삼천대천세계는 많은 것인가, 많지 않은 것인가?”

도올이 [강해]에서 ‘合이란 매크로(거시)의 세계다. 離란 마이크로(미시)의 세계이다.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合의 세계이다. 매크로의 세계인 것이다. ·····.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거시적 세계의 인식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렇다 치겠다. 그러나 이 ‘거시적 세계인식에 만족하지’ 않는 까닭이, 이 ‘거시적인 세계는 항상 마야 즉 幻의 가능성으로 지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뭔 소린가? 그렇다면 미시적인 세계는 뭔 ‘幻의 가능성’이 아니라, ‘환·상대적 인식으로써 관념적 허상의 부동태’랄 것이 아니란 말인가? ‘불교는 사물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거시적인 것이란 대도, 미시적인 것이란 대도, 이 거시적이며 미시적인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여래로써 연기의 실상이라고 바르게 알아 말하는 걸 좋아하지, 결코 어떤 존재와 현상에 대하여 미시적인 분별·분석을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도올이 말하는 ‘매크로에서 마이크로로 들어가면 반드시 인식론이 개재된다. 인식론적 반성이 없이는 마이크로의 세계를 논구할 수가 없다.’란 말의 뜻은 뭔가? 이 생각의 말 역시 분명 연기의 실상이긴 한다지만, 내가 무식해서 뭔 뜻의 말인지 모르겠다. 어떤 존재와 현상으로서의 매크로를 마이크로로 분석하자면, 매크로의 인연·인과적 논리가 세워진다는 뜻인가? 이런 뜻의 말이라면 분명 불교적 세계인식으로써의 과학적 논리성을 설명한 말이긴 한다지만, 이렇게 불교가 과학적 논리의 작동성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번연히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이게 한계라, 이러한 불교를 ‘과학의 발전이 저해된 그러한 아이러니를 인류의 역사는 露呈시킨 것’이라고 말하는 건, 긍정할 수 없다. 이는 도올처럼 구태여 불교의 금강경이 선 까닭을 오해하여 안 이들이 득세하므로 빗어진 인류역사의 오류이다. 인류의 역사라고 다 옳을 것인가? 인류의 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수많은 옳고 옳지 않은 사실이 감춰진 작은 옳고 옳지 않은 사실로써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부동태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이 때문에 요동치고 있는 것 아닌가? 헐!

도올이 말한 대로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인류사를 바라봐야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인류사로 기록되어지는 사람들이 기록되지 않을 사람들의 말을 바르게 알아보는 진리인식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부처의 진실이 아니라 이 부처에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 보리살타의 진리를 바르게 알아보아야 한다.

[강해]의 잔디밭에서 연기할 살상은 담으로 넘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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