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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 아닌, 과거가 미래를 만든다

손관승 2018. 11. 04
조회수 2788 추천수 0

점.jpg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알다가도 모를 존재가 사람이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어디 용한 점쟁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꿈을 꿨는데, 어떤 의미인지 해몽을 한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어디 되는 게 있어야죠? 이번에 뭔가 제대로 걸릴 것 같은 분위기여서요….”

 

평소 빅데이터, 4차 산업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설파하던 그였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빅데이터와 점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그는 중요한 사업 결정을 앞둔 듯했다. 평소 같으면 치밀한 사업 분석과 시장 전반에 대해 두루 살펴본 뒤 결단을 내렸을 그였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고 사업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본인의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그리고 나머지 70%는 운이 지배한다고 믿는 경우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감(느낌)에 확실한 응원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점의 계절이 돌아왔다. 수능시험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탓인지 자녀의 대학 진학을 앞둔 엄마, 결혼 배우자 결정을 앞둔 젊은이, 부부관계에 위기가 온 중년, 연말연초 인사를 앞둔 공무원과 기업 임원, 요동치는 부동산시장에서 거래를 앞둔 투자가들, 직장을 잃은 이들이 남모르게 운명철학관이나 점집 같은 곳을 찾는다. 앞날의 운세와 길흉을 예언한다는 곳 말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은 일이다. 개인의 불안한 심리와 간절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는 곳이 바로 점집이고 운명철학관이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을 말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성업 중인 이유다. 평소 점집이라면 소 닭 보듯 지내왔던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약 10년 전쯤의 일이다. 대학 입시를 앞둔 손자를 걱정한 어머니께서 지인의 강권으로 용하다는 점집을 찾았던 모양이다. “손자는 흰색은 피해야 해. 무조건 속옷은 붉은색을 입으라고 해!” 그 점쟁이는 노인보다 훨씬 나이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 반말로 명령했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색깔이 당락을 결정한다고 했다. 수학능력시험 당일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불쌍한 나의 아들은 평소에 입지 않던 팬티를 입어야 했다. 그것도 붉은색으로 말이다. “꼭 이거 입어야 해요? 안 입던 거라 불편한데….” 그러면서도 할머니의 뜻에 따라서 빨간색 팬티를 입고 시험장에 갔다.

온종일 초조히 기다리다가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녀석에게 결과를 물었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혼자 있게 내버려두세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내심 손자의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할머니는 실망과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왜 그랬는지는 거의 1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점 얘기라고 하면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런 배경도 모르는 나는 평소처럼 흰색 차량에 태워 시험장에 보냈던 것이다. 흰색을 멀리하라는 주의사항을 전달하지 않았음을 ‘아차’ 하면서 어머니는 혼자 끙끙 앓고 자탄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점쟁이에게 어머니는 아들의 직장 운도 물어봤던 모양이다. “걱정 마! 아들은 70살까지 월급쟁이 할 운세야.” 그토록 용하다는 점쟁이의 단언과는 달리 나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직장을 나왔다. 입사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말이다. 기가 막혔다.

 

이처럼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소원 성취, 성공을 운명에 의지하는 기복적인 심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인간에게 나타난다. 혹은 선뜻 본심을 털어놓기 어려운 개인 간의 소통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형제간의 재산 분쟁, 집 나간 딸, 매일 구박하는 엄마, 남편의 바람기, 사이코 같은 직장 상사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토로한다. 물론 교회나 절을 찾는 사람도 있고 정식으로 심리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자격증도 없는 전혀 모르는 대상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까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복채란 어떤 의미에서 익명의 대상에게 본심을 털어놓은 비밀 유지 비용일지도 모른다.

 

데런 브라운이란 사람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유명해진 영국인이다. 그가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 <기적을 팝니다>(miracle for sale)를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근심이 많고 불안해하며, 별거 아닌 것을 쉽게 믿고 의지하는지 알 수 있다.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선진국이란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정말이지 불안한 동물이다.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고, 그 불안을 먹이로 요행의 심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점(占)이라면, 작고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다른 의미의 점(點)을 강조했다.

“여러분은 미래로 향하는 점을 연결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점들은 연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과거의 점들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저 유명한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문의 한 부분이다. ‘점을 연결하라’는 이 연설에서, 그가 말하는 점이란 작은 인연, 작은 땀방울, 작은 성취, 작은 가치, 그런 것들이 연결되어 큰 것을 이룬다는 말이다. 그렇다. 나의 과거에 해답이 분명히 숨어 있다. 요행이 아니라 과거 내가 투자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점(占)이 아니라 점(點)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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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
직장인의 마음을 주제로 글 쓰고 강연 하고 있다. 언론인과 iMBC 대표이사, 세한대학교수, 중앙대학 겸임교수를 거쳤다. <투아레그 직장인학교>, <그림형제의 길>,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탑 시크릿 그림자 인간>,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노마드> 등의 책을 썼다.
이메일 : ceonom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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