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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87

도올은 자신의 정원 잔디밭을 예로 들어 존재의 존재성을 설명한다. 석가여래의 깨달음이 담긴 보리살타의 여래로써의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법을 아주 정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올이 말한 대로 존재는 폭력이다. 보리살타의 여래라는 법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이 법의 폭력으로 소멸하며 생성하는 시·공간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법이다. 나(我)라는 시·공간적 자기동일체로써의 평형체계를 유지하는 건 분명이 神性으로써의 법에 의한 폭력적 사태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 법작동성을 神性으로 본다면 맞지 않을 것인가?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도올이 이 법을 뭔 거시적인 假合상태를 구성하는 최소단위의 實存体라고 전혀 비논리적인 생각의 말을 하는 건, 이조차 분명 연기의 실상이긴 한다지만, 이 금강경의 금강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란 말에 함의 된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도올은 본절을 보고 삼천대천세계에는 관심이 없고, 비록 ‘만약’이라고 거정은 하였지만, 전혀 물리적 가능성이 없는 착한 남자와 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힘차게 부신 먼지의 수 따위에나 관심을 갖는 것이다.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으로 선 이 부처로써의 금강이 가르키는 건, 설령 이런 비과학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생각의 말일지라도, 이 부처며 금강으로써의 진리의 진실임을 가르킨 것이긴 하지만, 이를 설명함에 있어 도올처럼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말로 이 금강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 분절의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天世界碎爲微塵은 ‘보리살타의 여래는 남녀로써의 상대적 인식인 삼천대천세계로써 미세한 티끌로 부서지는 것’이라는 논리로써의 법인 진리의 진실을 묻고 있는 것이다.

도올은 또 實有論의 我空法有라는 문장을 ‘나라는 실체는 없지만 나를 구성하는 법은 실유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라며, 이 금강경은 이러한 有論을 부정하는 아주 레디칼한 사상이라고 한다. 이 實有論이며 我空法有라는 문장이 이 뜻이란 대도, 이 말을 한 소위 ‘說一切有部’ 사람들이나, 이 설의 내용은 따질 것도 없이 분명 진리의 진실이긴 한 거지만, 도올이 말한 대로 불교의 핵심 언어인 無我論과 배치되는 말이라, 이 무아논리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바르게 진술한 말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같은 뜻에 대한 다른 말들일 뿐이다. 도올은 ‘실유론’이나 ‘무아론’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한문실력을 따지자면 도올의 발꾸락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實有論의 我空法有라는 말은 도올이 해석한 뜻이 아니다. 無我라는 말이야 누차 ‘내가 나를 없애는 보시행으로써의 윤리’를 말한 말이 아니라 보리살타의 여래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표상한 말이라고 했으므로 거듭 재론할 것은 없겠지만, 이 ‘실유론’은 물론 이 我空法有라는 말도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설명한 말로 이해해야 한다. 즉 ‘실유론’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서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我·實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논리적 법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므로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 등, 상대적 인식의 작동성으로 작동중이라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無我로써의 이 空의 법으로 있는 我空法有임을 논한 것이다. 나는 나로써의 실재의 실체랄 것이 아니라 이 법작동성의 작동으로 있는 空이므로 나라는 것으로 있을 것이 없는 無我임을 설명한 말이다. 무슨 소승철학불교란 대도, 대승불교란 대도, 오직 이 무아논리를 가르켜 이를 바르게 아는 진리인식의 깨달음을 기도하는 것이다. 이 진리의 진실로써의 空法을 바르게 생각하여 바르게 말해야지, 소승불교철학이 미토콘드리아 따위의 최소립자랄 것으로 있는 我라는 것을 법이라고 하는데, 이조차 인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無我가 뭔 空이랄 것이라고, 이를 지향하는 게 대승불교란다고 엉뚱한 생각의 말을 하여, 이 공을 각자 찾아보란다면, 그럼 나를 죽여 나가 없는 공이 되는 게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이란 말인가?

실유론이나 아공법유나 무아라는 언어문자는 이 문의로 진리의 진실인 보리살타의 여래법을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불교적 언어문자랄 것만이 진리의 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를 표상한 것이므로 모든 언어문자는 당근 진리의 진실을 표상하는 것이다.

본절의 微塵衆을 ‘原子의 集合體’로 보든, ‘먼지들’로 보든 ‘먼지와 먼지들’로 보든, 이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四相인 아·인·중생·수자라는 인연·인과로서의 연기적 작동성으로 작동중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분절을 ‘이 삼천대천세계를 마이크로한 세계로 부셔버리면 티끌이라는 法이 남지 않겠는가? 바로 이 법조차를, 30分의 철학은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도올은 이 금강경의 금강철학인 30分을 전혀 모른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30-2.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實有者, 佛則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則非微塵衆. 是名微塵衆.

30-2.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만약 그 티끌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티끌들이라 설하지 아니하셨을 것이오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오니이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들이란 티끌들이 아니기 때문이오이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들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이다.

[강해]여기서 분명하게 “我空法有”의 “法有”를 부정하고 있는 大乘정신의 철저성이 드러나고 있다. 存在는 無다. 과연 이 無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조선의 젊은들이여! 평생을 두고 두고 곱씹어 보라!

--- 도올의 해석이 문법적으로 딱 맞는 해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도 어떤 애매한 문장은 산스크리트 원문을 대조해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고 실토하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경전의 佛이나 如來를 무조건 석가여래를 지칭한 것으로 보고 해석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석가여래는 부처로서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여래로써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이라는 법이라고 설파한 이이므로, 모든 경전의 말은 이 불법이며 여래법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에 보편하는 논리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설명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위경이기 십상이긴 하지만, 흔히 佛說父母恩重經을 ‘석가부처님이 부모님 은혜의 소중함을 설한 경’이라고 해석하여 석가여래가 부모의 은혜를 소중하다고 말한 경전이라고 이해하는 건, 이 경전의 내용이 어떻든 전혀 엉뚱한 이해의 해석이다. 이는 ‘부처를 부모은혜의 소중함으로 설명한 경’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부모의 은혜가 소중하다’는 이 상대적 인식도 부처로써의 불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여래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금강이기 때문이다.

이 分은 도올의 잔디밭과 같은 논리로서의 법인 불법을 석가여래가 설명하여 묻고 수보리가 대답하는 연기의 실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30-2. “엄청 많습니다, 세존. 왜냐면요, 뜻으로 말하면 지혜인 이 삼천대천세계로써의 미세한 티끌이며 티끌들로써의 열매로 있는 것은 이 열매로써의 부처로 작동하는 법칙을 뜻하는 것이지, 이 삼천대천세계라는 미세한 티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쩐 까닭이냐면요, 부처라는 것은 미진중을 설명하는 법칙이지 미진중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 법으로써의 부처의 이름이 미진중인 삼천대천세계인 겁니다.

대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저 도올의 잔디밭처럼 미진중의 인연·인과로 이루어지는 작동성으로 작동중이라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란다고, 이 잔디밭이 잔디밭인 까닭을 석가여래가 설명하지 않았단 말인가? 잔디밭이나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설령 삼천대천세계가 부서져 미세한 먼지가 될지라도, 이 먼지조차 인연·인과의 적동성으로 작동하는 불법임을 말한 것이다. 이 법으로 작동하는 작동태로써의 부처가 티끌이며 삼천대천세계로써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과거 현재 미래며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라는 이런 이름의 부처로 불린다는 것이다.

분명 모든 存在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實有論적 我空法有로써의 無我인 無다. 이 바른 앎을 하필 조선의 젊은이들은 평생 곱씹어야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30-3.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天世界, 則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實有者, 則是一合相. 如來說一合相, 則非一合相, 是名一合相.”

30-3.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오이다. 그러므로 세계라 이름하오이다. 어째서이오니이까? 만약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의 큰 전체상일 것이오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의 큰 전체상은 하나의 큰 전체상이 아니오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 이름하오이다.

[강해] ·····. 세계속에 티끌이 있는 게 아니라, 티끌의 合의 궁극은 세계 그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cosmos)다. 그러나 여기 一合相이라는 표현은 그 우주보다 더 추상적인 표현이다. 惠施가 말한 至大無外로 본다면, 그것은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연장적 연속체”(extensive continuum)를 연상 시킨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현재적 사유로써 상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이 연장적 연속체의 하나의 具現이다. 그런데 물론 이 연장적 연속체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사유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마저 우리의 집착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연장적 연속체는 실체가 아닌 영원한 가능태일 뿐이다. 그것은 구현의 자리(場)인 것이다.

--- 설령 석가여래가 ‘티끌의 合의 궁극은 세계 그 자체’이므로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고 말했단 대도, ‘그래서 세계라고 이름’한단다면, 대체 이게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 말일 것인가? 세계가 아니라서 세계라고 이름한다니, 뭔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가? 석가여래는 이런 대책없는 말을 말한 이가 아니다.삼천대천세계가 부서져 먼지가 될지라도, 또 이 먼지가 쌓여 삼천대천세계가 된달 지라도, 이는 상대적 인식으로써의 이름인 남녀라는 인연·인과의 논리적 연속작동성으로 중중무진 연장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인 이 법을 석가여래가 설명하는 말을 듣고, 이를 바르게 안 수보리가 이 법을 설명하는 대답이다.

30-3. 세존, 여래는 삼천대천세계를 설명하는 바의 법칙이지 삼천대천세계가 아닙니다. 이 법칙의 이름이 삼천대천세계지요. 왜냐면요, 지혜의 세계라는 열매로 있는 것은 법칙이므로, 이 법칙의 하나로 합해진 모양의 삼천대천세계이기 때문이죠. 여래는 이 일합상을 설명하는 법칙이지 일합상이 아닙니다. 이 법칙으로써의 여래를 이름한 것이 일합상으로써의 삼천대천세계지요.”

이 보리살타의 여래법으로 드러난 상대적 인식의 관념적 허상을 이름한 것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삼천대천세계로써 과거 현재 미래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며 이 모든 성품의 삶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30-4. “須菩提! 一合相者, 則是不可說. 但凡夫之人貪着其事.”

30-4. “수보리야!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 하는 것은 곧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범용한 사람들이 그것에 탐착할 뿐이다.”

[강해] ·····. “뿌커수어, 뿌커쓰이”(不可說, 不可思議). 그대들이여! 모든 것을 말하려 들지 말라.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것, 그것이 곧 우주요 인간이다.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지어다.

--- 다 생각하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컷 생각하여 말해 놓고는, 뭐가 생각할 수 없어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 대체 이미 논리적 개념으로 성립한 말이나 기억해 말하란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생각의 말은 다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이 영원한 궁금증에 대하여 생각도 말고 말도 말라니, 그럼 뭘 생각하고 말하란 말인가? 돈 벌 궁리나 하란 것인가?

인간은 이런 궁금증을 생각하여 말하는 삶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성품이다. 일합상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논리인 법칙은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인 금강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여래며 보살이며 부처로써의 금강법을 실재의 실체로 아는 앎에 집착하여 욕심낸다는 것이다.

30-4. “수보리야, 일합상이란 것은 법칙이므로, 이 법칙은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범부의 사람이 이 법칙의 일을 여래며 부처라는 실재의 실체로써의 일로 탐하여 욕심내는 것이다.

이 법칙은 이미 있는 개념의 언어나 이름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 곧 부처며 여래며 보리살타며 법이며 도 등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온통 이 법칙인 보리살타의 여래이므로, 이렇게 생각하여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위 중국불교의 공안이라고 하는 건, 이 수많은 개념의 언어로 이 법칙을 실증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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