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옥씨 품에서 나온 참이슬 한 병

서영남 2012.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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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992740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명옥씨는 나이가 예순 둘입니다. 아들은 서른 다섯이고, 딸은 서른 하나입니다. 셋이서 허름한 집에 삽니다. 기름 보일러인데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 난방을 해 본 기억이 없답니다. 겨울에는 방 안 보다 방 바깥이 더 따뜻하다고 합니다. 아들과 딸 모두 지적 장애가 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명옥씨도 비슷합니다. 거리에서 고물을 줍습니다. 폐지도 줍습니다. 하루 몇 백 원을 겨우 겨우 법니다. 명옥씨 명의로 언니가 집을 사서 명옥씨 가족이 살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니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집 명의를 언니에게 돌려주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알려주어도 마이동풍입니다.

세 가족이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왔습니다. 오자마자 명옥 씨가 품에서 참이슬 한 병을 꺼내어 저에게 내밉니다.

명옥씨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신호입니다.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달 먹을 쌀을 선물로 드립니다. 세 가족인데 한 달에 쌀 20킬로 두 포는 있어야 합니다. 아들이 밥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군것질 할 것이 없으니 밥을 많이 먹게 된다고 합니다.

명옥씨가 오늘은 한탄을 합니다. 아들과 딸이 벌써 서른이 넘었는데 결혼시킬 길이 없다고 합니다.

  *   *   *   *   *   *   *   *   *   *   *     

오늘 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상담을 좀 하고 싶다고 합니다. 국수집에 오전 여덟 시 반에 도착하니까 그 때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국수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아침식사 준비를 해놓고 커피 한 잔을  타 드리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젯밤에 포항에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나이는 마흔 여덟이라고 합니다. 혼자 살고 있는데 지적장애 3급이고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합니다. 매달 20일에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집세를 내고 나면 밥을 해 먹는 것이 참 어렵다고 합니다.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봤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방도 얻어주는 것을 보고 무작정 인천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달랩니다. 밥은 국수집에 와서 먹겠다고요. 
아침을 먹고 다시 포항으로 돌아가시라고 말씀드렸더니 배는 고프지 않다고 합니다.  
방을 얻어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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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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