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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하지 못하고 진부한 진보에게 공자 가라사되

이남곡 2012.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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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3-.jpg

                       사진 박종식 기자



요즈음 한국의 진보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려고 ‘통합’을 하고 ‘연대’를 했는데 오히려 큰 위기를 만났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절과 실망을 느끼고, 합리적 보수주의자들도 건강한 파트너로 반드시 필요한 진보진영의 난맥상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을 잘 보면 언젠가는 한국의 진보가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을 지금 통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고 시대정신이 바뀌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라도 변하는 것이 순리다. 더구나 진보가 무엇인가?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 시대정신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위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이 진보가 아닌가?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답보하였다. 업그레이드해야할 때 하지 못하면 낡은 것이 되고 만다. 낡은 것은 진보가 아니다. 이제 민주주의가 보편화되는 것이 인류역사의 추세라면 정치는 ‘권력쟁탈의 장’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조화의 기술’로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길이라면 ‘시장의 인간화’가 시대정신으로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선두에서 견인하는 것이 진보다.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문명에 대한 비전과 함께 그것을 달성할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진보의 새로나기’ 노력 마저도 나에게는 과거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폐습, 도덕적 해이, 전략적 결함 등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질적인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하다. 사람 그 자체의 진보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나 목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간을 향한 대장정이 결합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것은 과거 한 세기의 세계사의 실험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진보의 업그레이드의 근본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것도 공자의 말을 빌려서. 수구보수주의자로서의 공자가 아니라 빛나는 축의 시대에 출현한 인류의 선각자의 한사람인  공자의 말을 빌리려고 한다. 


적어도 진보는 다음의 세가지 면에서 과거 성인이 추구했던 것을 보편화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1.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를 위하여 

 

요즘 화두처럼 들리는 말이 ‘소통’이다. 인터넷 특히 SNS등의 발달 등으로 소통을 위한 기술적 수준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소통은 진리에 대한 탐구를 전제로 한다. 기술 수준의 엄청난 발전이 진정한 소통과 결합하게 되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비약할 것이다.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논어의 두 구절을 소개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마침내 밝혀 보리라.”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子罕 第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옳다고 하는 것이 따로 없고 옳지 않다고 하는 것도 따로 없이, 오직 의를 좇을 뿐이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里仁 第四)>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리라고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인간의 인식에 대한 메카니즘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금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단정(斷定)하는 것은 진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인간은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무지(無知)는 이것을 이야기한다. 각자의 감각기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잡힌 것을 이미 자신의 뇌에 입력된 정보•지식•기억•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을 일상적으로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인 인간이며 진보적인 인간이다. 물론 어떤 것이 사실에 보다 근접하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지적능력으로 끊임 없이 탐구해야 한다.


비록 절대다수의 사람이 그렇다고 동의하는 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집단주관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제 진정한 진보는 어떤 단정(斷定)에서도 벗어나 오직 이 시대의 정의(正義)가 무엇인가를 모두의 지혜를 모아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누가 옳은가’를 서로 따지는 지금까지의 토론문화로부터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탐구하는 토론(?적당한 명칭이 없어서)문화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진보의 몫이 되었으면 좋겠다.


2.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하여


요즘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그 바탕에는 자유라는 이름 아래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비인간성, 야만성이 있다. 이것을 양극화의 주범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높은 생산력의 근저에는 ‘경쟁’이 있다. 결코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쟁 대신에 자기실현의 즐거운 노동에 의한 적절한 생산력이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나 비판은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요즘 ‘협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마을 공동체’에 대한 꿈들이 넓어지는 것은 정말로 진보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준비되어야할 인간의 의식(意識)과 삶의 태도가 함양되지 않으면, 협동이라는 가치관만으로는 지금까지의 실패 즉 ‘동업’이나 ‘협동생산’ ‘공동체운동’은 실패하기 쉽다는 경험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논어의 다음 구절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철되어 있다.”

증자가 말했다. 

“예, 그러합니다.”

공자가 나가시자 제자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니라.”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 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 


 서(恕)는 자신과 다른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자신 앞에 놓인 일이나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될 때 ‘자발적이고 즐겁게’ 어떤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충(忠)이다. 이 서와 충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낡고 불의한 사회와 결합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벗어나 이상사회를 향한 진정한 동력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세상을 실현하려는 진보가 담당해야할 몫이 아닐까. 물론 이름이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현대의 최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대 인류는 전쟁, 양극화, 지구생태계의 위기 등의 난제 등에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상의 위기에 주로 주목하지만,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 모순은 인간의 엄청난 행위능력과 그다지 변치 않는 자기중심적 가치체계의 모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달라진 시대의 조건이다. 예컨대 광개토왕이나 징기스칸의 시대의 전쟁이 인류의 종말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인류의 종말을 예견케 하는 것이다. 인간 소외, 양극화, 생태위기 등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할 것인가? 행위능력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의식의 진보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공자가 제시하는 군자(君子)상(像)이 그런 점에서 새로운 진보적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특히 다음 두 문장이 요즘의 세태에서 다가오는 것 같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子曰, 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긍지를 가지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편을 가르지 않는다.”                           


子曰, 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 >


이제 한국의 진보운동이 군자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면 너무나 역설적인가?

군자라는 말을 공인(公人)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여기서 공인이라 함은 이 세계 즉 자연과 인류가 한 몸임을 자각한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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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곡
서울대 법대 재학 때부터 민주화에 투신 4년간 징역을 살고 나온 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으로 진리를 향한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토회 불교사회연구소장을 거쳐 경기도 화성 야마기기마을공동체에 살았으며, 2004년부터 전북 장수의 산골로 이주해 농사를 짓고 된장·고추장 등을 담그며 산다. 서울에서 매주 ‘논어 읽기’ 모임을 이끈다.
이메일 : namgo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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