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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한 교황이 신선한 까닭은

조현 2020. 01. 08
조회수 4976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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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벽두 외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버럭했다는 가십으로 시작됐다. 새해를 몇시간 앞둔 지난 12월31일 밤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새해 전야미사를 위해 모여든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한 동양인 여성이 교황의 팔을 강하게 끌어당기자 교황이 화가 난 표정으로 여성의 손등을 두 번 내리치며 붙잡힌 손을 떨쳐내고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긴 동영상이 퍼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교황이 엄살쟁이’라는 등의 비판과 ‘교황이 83로 고령인데 너무 세게 팔을 잡아 당겼다’여성의 경솔을 질책하는 글들이 맞섰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이런 행동을 했다면 뉴스가 안됐을 것이다. 그런데 2년 전 한 아이가 모자 주케토를 낚아채는데도 활짝 웃으며, 늘 자애롭던 모습만 보여온 그였으니 ‘버럭’하는 모습이 가십거리가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이튿날 사과했다. 그는 “우리는 자주 인내심을 잃으며 나조차 그렇다”라며 “어제 있었던 나쁜 본보기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사죄 표명을 하기 전 교황은 새해 첫 미사에서 “여성을 향한 모든 폭력은 여성에게서 태어난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사안은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게 아니기에 민망한 소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자는 의견이 적지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주로 권위있고, 힘있는 쪽의 방식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폭력’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조그만한 정당화도 봉쇄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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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에선 교황이 잘못을 시인하면 마치 가톨릭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교황은 (교리 선포 등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교황무오류설’을 지켜왔다. 가톨릭이 십자군 전쟁과 이교도 강제개종, 유대인 핍박 방조 등을 사죄한 것은 2000년 요한바오로2세 교황에 의해서였다. 한일강제병합과 위안부 등 온갖 해악에 대해 제대로 잘못을 시인하지않는 일본의 행위가 우리를 2번 죽이듯이 가톨릭도 2000년 전까지는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하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투꺼운 갑옥을 내던졌다.
 교황은 지난 2015년 남미 볼리비아를 방문해 ‘아메리카 정복’ 기간에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겸손하게 용서를 구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앞서 2014년엔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 피해자들과 만나 “교회 어디에도 이런 짓을 저지른 자들이 숨을 곳은 없다. 사제이든 아니든 약자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결코 인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잘못을 되풀이하는데 있다. 공자는 애제자 안회의 성품을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라고 했다. ‘화를 옮기지않으면,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군자됨의 표본으로 든 것이다. 교황도 새해전야미사를 끝내고 돌아와 제대로 경호하지못한 경호원들에게 불똥을 옮겨 징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화를 옮기지않고, 스스로 잘못을 시인해 사과했다. 예수께서도 회개할줄 모르는 율법주의자 바리새인들을 가장 많이 꾸중했다. 자신만 옳다는 사람들의 완고한 성벽 사이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교황의 모습이 산소처럼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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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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