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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래의 모습, 히말라야

휴심정 2020. 02. 07
조회수 4316 추천수 0


존재의 의미를 찾아 떠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대자연을 바라보며 너그러울 관(寬)을 새기고,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통해 순수와 이상을 품고,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설산 같은 사람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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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처음 오른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산에 왜 가느냐?"는 물음에 "거기 산이 있으니 간다."고 했다. 나는 세계의 지붕, 신들의 고향 히말라야에서 설산을 바라보며 걸으면서, 내 존재 의미를 찾고 싶었다. 하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난해 12월 24일부터 경자년 새해 1월 1일까지 네팔을 다녀왔다. 9일 여행 일정 중 절반은 8천 미터가 넘는 고봉 열네 개를 갖고 있고 불교와 힌두교 발상지인 히말라야 산속을 걸었다. 많이 걸은 날은 10시간 정도를 걷기도 했다.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으로 오랫동안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하얀 만년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가슴 설렘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10여 년 전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지인이 "이 세상 사람을 먼저 두 부류로 나눈다면, 안나푸르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 다시 네 부류로 나눈다면 알고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그곳에 잠들고 싶다."라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게 하는 여신' 안나푸르나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은 준비하고 떠난다는 안나푸르나. 50대 후반인 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안나푸르나를 더 나이 들기 전, 내 가장 젊은 날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한겨레테마 여행 일정이 나오자마자 신청했다. 여행안내 문구 중 '트레킹'이라는 문구에 안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자주 하지 않지만, 평소에 걷기는 조금씩 했기에 높은 곳이라도 급격한 경사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면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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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증이나 일행에게 누가 될지도 모를 천천히 걷는 내 스타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설산을 바라보고 싶은 간절함이, 다른 요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여행은 비일상적인 일상이어야 한다."고 했던 것과 같은 의미의 떠남이었다.


이번 여행 대장은 탐험가로 세계 최초 사하라사막 도보 횡단, 대한민국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탐험첼린지학교 최종열 대표였다. 일행은 멀리 광주, 제천 외에 대전, 안산, 동두천, 의정부, 파주, 서울에서 열네 명이 참가했다. 직업은 사업가, 교수, 간호사, 공무원 등 다양했다. 이 외 여행사 직원과 현지 안내인, 히말라야 산속에서 짐을 옮겨준 버리야들(현지 안내인이 '포터'는 영국식 하인 개념이므로 '버리야'로 불러달라 함),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 등 총 35여 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열네 명의 여행자 한 명에 한두 명의 도운이가 함께 한 셈이다.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 눈(雪) '히마'와 거처 '알라야' 가 합쳐져 '만년설의 집'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라운드 코스, 로얄 트레킹 코스, 무스탕 코스 등이 있다. 이번 한겨레테마 여행 코스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비행기로 이동, 포카라(페와 호수)에서 좀솜까지 이동 후 좀솜, 칼로파니, 가사, 따또빠니, 고라파니, 푼힐, 랄리그라스 숲길 등을 걸은 후, 중간에 지프로 포카라에 도착, 비행기로 카트만두로 이동하여 구왕궁 하누만도카, 더르바르스퀘어와 살아있는 여신 5세 꾸마리, 쉬바신의 사원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견학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여행 일정 중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두 번 경험했다. 한 번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경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네 시간이나 대기하다 날 수 있었을 때이다. 최 대장은 공항에서 대기 중에 일행들에게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무슨 일이 발생하면 뼈도 추스르지 못할 높은 산 위를 날고 있는 경비행기 제일 앞자리에 앉은 나는 속으로 '누군가에게 유언이라도 남기고 왔어야 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포카라에서 좀솜까지 가는 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결국 뜨지 못했을 때이다. 비행기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지프를 타고 낭떠러지와 황량한 자갈길(중국이 자본을 대서 인도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함), 때로는 설산을 마주하며 돌고 돌아 10시간 정도 걸려 밤늦게 히말라야 약 2700여 미터 산속 놋지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 중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포카라 페와 호수에서 바라본 인간이 오를 수 없는 미개봉 중 하나인  마차프치리(6,997m), 안나푸르나 3봉(7,575m) 등 남쪽 안나푸르나 고봉의 설상을 조망할 때, 페와 호수에 위치해 보안상 안전해서 외국 정상들이 묵는다는 놋지형 피스탈호텔에서 묵었을 때이다.


또 여행 3일째 좀솜에서 묵고 첫 트레킹을 나서던 날, 길을 걷다가 설산의 고봉을 만났을 때, 삼면이 설산에 둘러싸인 채 히말라야 바람 소리가 밤새 울어대던 칼로파니, 노상 온천 따또빠니, 계단식 밭이 넓게 펼쳐진 치트레, 새벽에 헤드 랜턴을 켜고 올라간 3210미터의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과 다울라기리(8,167m)와 안나푸르나 설산의 고봉들을 바라볼 때도 설렜다.


그 외 귀국 시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동경에서 국제무역을 공부하고 있다던 네팔인 부제루 안즈 씨와의 대화도 여행의 설렘을 더했다.

함께 한 이들의 배려, 온천에서 개운하게 씻은 뒤 저녁 식사로 닭백숙을 먹으며 현지 안내인 고파르가 흥에 겨운 듯 분위기에 취한 듯 부르던 구슬픈 곡조의 네팔 민요 등도 여행의 기쁨을 배가시켜줬다. 불편했던 먼지 자욱했던 자갈길, 씻기 불편했던 놋지형 숙소, 트레킹 마지막 날 찾아온 감기 기운, 귀국 전 탑승 수속 후 김밥을 함께 먹는다는 공지를 듣지 못해 탑승구로 가게 되어 생긴 일 등은 흐릿하게 지워져 간다.
 
여행 중 숙소와 트레킹 코스 고도는 2천에서 3천 미터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이번 트레킹 중  가장 높은 고도는 여행 7일째 고대하고 고대했던 안나푸르나 만년설 고봉(7천~8천m 전후)들을 조망할 수 있는 푼힐 전망대로 3210미터였다. 걱정했던 고산증과 추위는 생각보다 덜 했다. 고산증 예방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과 트레킹 출발 전에 준비한 약을 미리 챙겨 먹은 덕분인지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온 후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며칠 갔다. 뼛속까지 스며든다는 히말라야 산 속 추위도 여행사에서 준비한 침낭과 미리 준비한 핫팩, 온수팩, 내복, 방한 모자·양말·신발 덕분인지 걱정했던 것보다 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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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늙기 전에 힘든 곳을 다니자는 생각으로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등을 다녀왔다. 그때마다 느낀 점인데 '어디나 그곳 나름의 방식대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같은 소감이었다. 해발 2천에서 3천 미터 사이의 높이에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과나무, 귤나무, 상추를 심고 소, 돼지, 닭 등을 키우며 돌과 나무 등으로 만든 집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도 꿈을 꾸는 미래 세대인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고, 여행객이 건네주는 사탕을 받으며 고맙다고 눈인사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살며시 귤을 꺼내 건네주는 우리네 할머니도 있었다.


떠났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경비행기를 탔다. 경비행기 안에서 히말라야 산맥과 털로 만든 것들을 구할 수 있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네팔의 산과 들을 조망할 수 있었다. 멀리 인간이 오르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고봉의 설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설산 앞쪽 2천~3천 미터의 산 중턱과 정상에는 실선 같은 길들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비행기가 카트만두 도심 가까이 오자 상공에는 검뿌연 먼지가 자욱하다. 그 아래에 헤아릴 수 없는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나는 상공에서 30여 분 동안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세상을  셋으로 나눈다면, 인간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설산인 신의 영역과 2천 내지 3천 미터 산속에서 불편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가장 자연에 가깝게 살아가는 순수·이상의 영역과 검뿌연 먼지 아래 지구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있더라도 인간이 자연 본래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살아가는 순수·이상의 영역을 꿈꾸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 국가적, 인류적으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 안나푸르나 설산을 대학모임 단톡방에 보냈다. 개인 사업을 하는 회원이 자신은 창고에서 재고 조사한다면서 "히말라야는 체력, 시간, 돈 삼박자가 맞아야 간다는데, 버킷리스트 하나 지웠겠네요?"라고 했다. 나 자신은 이 삼박자가 넉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체력은 의지와 집념, 시간은 내 마음이 가는 간절함, 돈은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른다고 본다. 

인생과 같은 여행은 떠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네팔인은 부처의 고향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므로 천천히 갑니다."라고 한 현지 안내인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천천히 가면서 검뿌연 먼지 가득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순수와 이상을 품고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인 설산 같은 사람을 꿈꿔본다. 내 마음이 가는 곳에 간절함을 품는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 글은 국제아동발달연구원 최순자 원장의 안나푸르나 순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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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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